이세돌·페이커가 말하는 AI 시대 인간의 가치

[리뷰] MBC <손석희의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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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AI와의 대결에 나설 것이다. 제가 응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대결을 하게 될 테니까. AI와의 대결이나 마케팅이나 데이터 수집의 일환이라고 볼수도 있지만, AI는 현재 시대의 흐름이고 거역할수 없다고 본다. 만일 AI가 게임으로 인간을 이긴다면, 많은 분야에서 사람을 능가하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게임만큼은 AI가 아직 인간을 이길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있다."(페이커)

"예전에는 인간이 바둑의 기술발전을 주도했다면, 이제는 AI 프로그램을 보면서 바둑을 배운다. 과거에는 바둑을 '연구'한다고 했는데, 이제는 '공부'하는게 됐다. 보통 정답이 있는 것을 예술이라고 하지 않는다. 바둑은 본래 문화이자 예술이었고 승패는 창작에 뒤따르는 부산물이었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데 집중하는 사람이 승패에서도 승리하는 경우가 많다."(이세돌)

8일 방송된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서는 바둑기사 이세돌과 프로게이머 페이커(이상혁)가 출연하여 AI(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세돌과 페이커는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인간으로서는 전설의 반열에 오른 인물들이다. 두 사람은 인류의 대표로서 인공지능과 '세기의 대결'로 화제가 됐다.

페이커는 최근 인공지능 기업이 제안한 '그록5'와의 리그 오브 레전드(LOL) 게임 대결을 수락하여 화제가 됐다. 페이커는 AI가 과연 인간에 대적할만한 기술적 수준에 도달했는지 궁금하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저는 대결 자체를 좋아한다. 또한 AI와의 대결은 큰 의미가 있으니까. 저도 AI가 얼마나 강할지 궁금하다. 솔직히 롤 게임은 바둑보다 복잡한데, 과연 빠른 시간내에 인간과의 게임이 실현될 정도로 기술이 가능할까 의구심이 있다(페이커)."

한편 이미 AI와의 대결을 먼저 체험해본 이세돌은 "AI에 어느 정도 제한을 두지않는다면 아무리 페이커라도 가능한 게임인가 싶다"며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았다. 이세돌은 2016년 구글 '알파고'와의 대전을 앞두고 인간의 5대 0 완승을 자신했으나, 결과는 1대 4로 크게 패배했다. 이는 인간의 두뇌를 위협하는 AI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전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1국은 AI와의 대결이 처음이다보니 제 실력을 발휘못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2국은 정상적으로 최선을 다했음에도 완패해서 충격이 컸다. 2국과 3국의 패배는 또 느낌이 달랐다. 2국이 '내가 정말 질줄 몰랐다'면 3국은 '이길 방법이 없구나'라는 느낌이었다."(이세돌)

하지만 이세돌은 4국에서 78수만에 알파고를 무너뜨리며 마침내 첫승을 거뒀다. 그런데 이세돌은 상대가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었기에 가능한 수를 썼다는 뒷이야기를 털어놓았다.

"68수가 승부수였다. 사람과 대국이었다면 암수이자 꼼수다. 바둑에서 상황에 맞지않는데 가장 안전한 수를 골랐다. 정상적인 수로는 이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서 알파고의 오류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30년 넘는 바둑인생에서 정수가 아닌 꼼수를 둔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세돌)

하지만 5국에서는 다시 정상적인 바둑을 두다가 패배했다. 이세돌은 이미 3연패로 열세는 확정된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세돌이 거둔 값진 1승은 인류의 자존심을 구한 신의 한수가 됐다.

페이커는 "바둑도 경우의 수가 많기는 하지만 게임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세돌은 공감하면서 "인간의 관점에서 바둑은 무한한 경우의 수가 있다. 하지만 AI에겐 계산이 가능하다. 게임도 AI에게 계산이 가능할까. 분명한건 인간의 관점과 AI의 관점은 다르다는 것이다. AI 관점에서도 게임이 훨씬 더 어렵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AI와 인간의 중요한 차이는 '감정'의 유무다. 페이커와 이세돌은 모두 극적인 승리와 뼈아픈 패배, 혹독한 슬럼프를 모두 경험해봤고 그때마다 다양한 희노애락의 감정을 표출하기도 했다그런데 만일 인공지능처럼 감정이 없이 승부에 임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감정이 없으면 게임에 유리하겠다는 생각은 해봤다. 감정보다는 이성적인 판단이 중요하다. 하지만 프로경기에서 인간과 인간의 경기가 감정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걸 보지 않을 것이다."(페이커)

"인간의 승부에는 개성, 감정, 스토리가 있다. 그런 것이 없다면 사람들이 재미나 감동을 느낄 것 같지 않다. 서사가 없는 승부는 특별할수 없다."(이세돌)

제아무리 인간 최강 페이커라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AI와의 대결이 불안하지는 않을까. 페이커는 AI의 발전을 인정하면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패하더라도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페이커는 AI와의 공정한 대결을 위한 사전 조건으로 '반응속도'를 꼽았다. 인공지능과 달리 인간은 두뇌에서 판단에서 몸으로 반응하여 행동하기까지 어쩔수없는 시차가 발생한다. 페이커는 "인간과 AI가 같은 반응속도로 제약을 두어야 공정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반응 속도외의 판단이나 움직임으로 승부를 봐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AI는 페이커를 이기기 위하여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상대의 공포를 어떻게 감지하고 이용하는가?' '상대가 실수할 것 같은 느낌은 어디서 오나' 등의 질문들은 모두 AI가 가지고 있지 못한 인간의 '직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페이커는 "직관은 인간이 경험으로 쌓아온 방대한 데이터의 합이다. 그래서 빠른 판단을 내려해야하는 상황에서는, 복잡한 과정없이 결론부터 도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으로 인공지능 기업들이 페이커나 이세돌같은 각 분야 세계최고의 인간들에 도전하는 것은, 단순한 승부보다 마케팅이나 데이터 수집으로서의 의미도 크다. 그럼에도 페이커는 도전을 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페이커는 "AI는 거역할수 없는 시대의 흐름"으로 정의하면서도 "만일 AI가 게임에서 인간을 넘어서게 된다면 E스포츠 선수들도 AI를 통하여 공부해야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세돌은 AI의 발전이 곧 인간의 발전으로 이어질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알파고와의 대국이 하나의 이벤트로 끝났다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이제는 누구나 쉽게 바둑프로그램을 다운받을 수 있게 됐다. AI의 발전으로 바둑계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프로기사들이 AI를 보고 따라하는 상황인데, 그것이 과연'인간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을까"

반면 페이커는 "AI를 통하여 학습하더라도 게임은 결국은 인간대 인간의 경기다. 예술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세돌과 페이커는 각각 바둑과 게임의 차이에 대하여 인정하며 "두 분야에서 AI의 활용영역이 다르다"고 인정했다.

한편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인공지능과의 대결을 시도해봤다고 고백했다. 하나의 대국을 한달반이나 걸려서 치르기도 했다고. 이세돌은 또다시 AI에게 패배하게되자 실력차를 절감하고 "벽같은 기분을 느꼈다. 무슨 수를 써도 평생 못이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부터는 바둑을 두지 않았다"고 밝혔다.

'천재 게이머'로 불리우는 페이커는 어린 시절에는 넉넉하지 못했던 경제적 사정이 오히려 프로게이머가 될수있는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게임 외에도 고를수 있는 선택지들이 많았을 것이다. 다른 취미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돈이 덜 드는 e스포츠에 집중할수 있었다. 제가 만들어간 것보다는 운이 많이 좋았다. 제가 일군 것도 있지만 받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해서 감사하다."

페이커는 이세돌에게 '바둑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하여 질문했다.

"바둑은 인간의 관점으로 여전히 무한하다. 바둑은 자신의 개성과 기술로 기풍을 완성하는 과정이다. 나다운 한 수를 찾는 노력이 예술이 아닐까 생각한다."(이세돌)

'예술로서의 바둑'으로 추구해온 이세돌은 다소 이른 은퇴의 배경으로 알파고에게 당한 패배도 영향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이세돌은 AI의 영향으로 변화하는 현대 바둑을 우려하면서도, 여전히 현장을 누비는 후배 바둑기사들에 대한 응원도 전했다.

"프로바둑기사는 바둑의 기술발전에 영감을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대처럼 AI 의존도가 높아진 시대에 바둑의 발전은 말이 안된다. 저는 바둑기사로서 제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는데 AI로 인하여 의미가 희석됐다. 새로운 의미를 찾는게 저에게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제가 배웠던 바둑의 의미 부여일뿐, 지금도 많은 프로바둑기사들이 존재하고 그들만의 의미부여가 존재할 것이다. 너무 제 이야기를 크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이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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