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영화의 시작과 끝, 이소룡-양조위 잇는 한 편의 영화

[리뷰] 영화 <일대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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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컷일대종사

배우 양조위가 처음으로 출연한 유럽 영화인 <침묵의 친구> 홍보 차 내한했다. JT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신작의 주인공이 은행나무라고 소개했다. 나무를 중심으로 1900년대에서 2020년대의 사람들의 삶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정식 개봉 전이라 영화에 대한 감상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설명만 들으면 그가 20년간 함께했던 왕가위 영화들의 '시간'이란 테마와도 깊이 맞닿아 있는 느낌이다. 왕가위의 2013년작 <일대종사>도 한 가지 소재가 인연이 되어 현실과 가상의 인물들 삶이 교차한다. 바로 이소룡이다.

<일대종사>의 기획은 1996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해피투게더> 촬영으로 아르헨티나에 체류하던 중에 기차역 신문 가판대에서 이소룡 얼굴이 표지로 쓰인 잡지를 왕가위가 발견한 것이다. 어린 시절 팬이었다는 기억을 잊고 살던 왕가위의 마음속에서 이소룡이 되살아났고, 그의 진짜 모습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다만 이소룡에 대해서는 사실과 거짓이 합쳐진 너무 많은 이야기가 난무하는 탓에 멘토인 엽문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를 만들게 된다.

왕가위는 엽문의 고향인 포산으로 가서 이후 3년간 중국을 여행하며 100여 명이 넘는 고수를 만나고, 엽문의 이야기가 단지 한 사람의 일대기가 아니라 '일대종사'의 여정임을 깨닫는다. 일대종사란 무엇인지, 어떤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를 담아내기 위해 영화의 제목도 <일대종사>로 결정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일대종사는 당사자가 죽고 한참 지난 후에 주어지는 명예이며 후대에 유산을 남기지 못했다면 받을 수 없는 칭호라는 것. 무술보다 영화에 더 많은 유산을 남겼기에 이소룡조차 일대종사의 타이틀을 받지 못한다. (존 파워스, '왕가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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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종사의 의미를 찾아서

'한 시대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위대한 스승'이란 일대종사를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일까. 이소룡의 스승이기도 한 그의 무술이 맨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빠른 길을 두고도 에둘러가는 게 왕가위의 미학이다. 이 작품도 예외 없다. 엽문이 왜 일대종사가 되었는지 표현하기 위해 왕가위는 오히려 엽문의 존재감을 흐리게 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견자단의 <엽문>으로 대표되는 것처럼 일본제국과의 대결과 승리를 통한 민족 영웅으로서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인간관계나 가족사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결투 장면도 여러 차례 등장하지만, 호쾌한 액션의 쾌감보다는 엽문의 사상을 표현한 쪽에 가깝다. 오프닝에서 엽문은 '실력이 얼마나 좋은지, 사부가 얼마나 대단한지, 문파가 잘 나가든지 상관없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쿵푸의 진리 또한 간결하다. '수평과 수직'. 지면 수평으로 쓰러지고 서 있는 자만 말할 자격이 있다. 무술에서도 일관성이 드러난다. 남파 무술계의 대표를 증명하는 자리에서도 팔괘장, 형의권, 홍가권의 고수와 싸워 이기지만 본인의 영춘권은 팔을 올리고, 내리고, 뻗는 동작이 다라고 할 뿐이다.

북파 무술계의 대표인 궁보삼과의 대결 역시 그렇다. 초고수끼리의 치열한 비무가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궁보삼은 엽문의 지혜를 시험하겠다고 한다. 그는 전병을 하나 집어 들고 무술에는 남북이 있지만 국가에는 남북이 없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엽문에게 묻는다. 엽문은 세상에 남북만 있는 게 아니라며, 남권이 북방에만 전해져서야 되겠냐고 짧게 답하고 공격 없이 투로만으로 궁보삼이 손에 들고 있는 전병을 부순다. 전후좌우, 동서남북에 개의치 않는 오직 수평과 수직만이 엽문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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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과 수직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엽문을 세상은 가만두지 않는다. 중일전쟁 발발 후 포산을 점령한 일본제국군은 엽문의 집과 땅을 포함해 모든 재산을 몰수한다. 40세까지 자기 손으로 돈을 벌어본 적 없던 부잣집 도련님은 어떤 고수보다 강력한 생활고를 마주한다. 금루를 중심으로 모였던 무술계의 동지들은 일제에 반항하다가 차례로 목숨을 잃는다. 7~8년간 이어진 중일전쟁은 그를 극심한 기아로 몰았고 결국 두 딸이 죽고 만다.

동북성에 가기 위해 마련한 코트에서 몰래 떼어내 간직한 단추 한 알이 엽문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전쟁은 끝났지만 모든 것을 잃은 그는 가족을 남겨둔 채 고향을 떠나 홍콩으로 향한다. 남과 북의 무술계가 인정하는 최고수지만 아무도 그의 존재를 모르는 낯선 땅. 무술 사범으로 취업을 위한 면접 자리에서 싸움은 해본 적 있냐는 질문을 듣는 치욕스러운 상황을 겪지만, 그는 수평과 수직, 팔을 올리고 내리고 뻗는 것만을 생각하며 차근차근 후학을 키워내며 훗날 일대종사로 불릴 명성을 다시 쌓기 시작한다.

얼핏 전쟁의 참화로 고난을 겪고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건조한 중국의 역사 드라마로 멈췄을지 모를 작품에 왕가위의 인장을 박아 넣는 건 장쯔이가 연기한 궁이다. 궁보삼에게 궁가64수를 전수받았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정식 후계자가 될 수 없는 시대적 한계. 아버지를 해친 사형 마삼에게 복수하기 위해 약조된 혼약까지 파기하고 평생 독신을 맹세한 집요함. 엽문의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궁가의 자부심을 꺾지 않고 그에게 도전해 결국 승리를 가져오던 투쟁심. 그런 그를 마음에 품었음을 뒤늦게 고백하는 모습은 당당했지만 결국 후회로 가득한, 그래서 익숙하고 반가운 왕가위 영화 속 인물들을 함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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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일대종사들이 남긴 유산

왕가위는 무술 고수들과 대담하며 '쿵후의 의미'에 대해 물었을 때 대부분 '시간'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한 가지에 몰두하는 게 어렵고 때로 멍청하게 여겨지는 시대지만 한때는 그 몰두와 헌신에 긍지를 느끼던 사람들이 있었다. 오래된 고수를 존경스레 보는 이유도 첫 공화국이 들어서고 무술가들이 핍박받던 때에도 자신의 유산을 지켜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존 파워스, '왕가위'중에서).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일대종사>가 유산에 관한 영화라는 사실은 극 중에서도 꾸준히 중요하게 언급된다.

기차역에서 마삼을 쓰러뜨리고 궁이는 궁가64수의 절기 노원괘인의 정수를 되찾는다. 정수는 놀랍게도 타격이 아니라 뒤를 돌아보라는 것. 궁이는 엽문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무술에는 자신을 보는 단계, 천지를 보는 단계, 중생을 보는 단계가 있음을 설명하며 마지막 단계까지 가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중생을 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깨달음을 나누는 일이다. 달리 말하면 유산을 남기는 일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도장을 차린 엽문이 제자들과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 사진에는 홍콩의 영화를 세계에 알린 이소룡으로 보이는 꼬마도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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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는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하며 내한해 <무간도> GV에 참석했다. 양조위는 "당신의 화양연화는 언제였나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왕가위 영화는 과거의 한순간에 사로잡힌 인물들이 나오지만 내게는 20대에는 20대의, 30대에는 30대의, 40대에는 40대의 화양연화가 있었다. 과거의 한순간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행복할 수 없다. 이 순간의 화양연화를 찾길 바란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30년 가까이 됐고 근래에는 정치적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우리의 기억 속에 홍콩이란 혼란스럽지만, 자유로웠던 공간도 점차 역사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공간을 가득 채웠던 이름들.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 주성치, 임청하, 장만옥 등으로 대표되는 배우들도 하나둘 스크린을 떠났다. 그래서 홍콩 영화의 시작인 이소룡과 마지막 홍콩 배우로 불리는 양조위가 함께하는 <일대종사>의 마지막은 더욱 각별하다. 홍콩 영화를 대표하는 '일대종사'들이 남긴 유산이자 이 순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또 다른 화양연화이기 때문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영화 왕가위 양조위 일대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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