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극우도 이렇게 탄생했을까?

[안지훈의 연극 읽기] 연극 <맵핑히틀러>

2026년 취업준비생이었던 '한들호'가 2036년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취임한다. 4월 5일 막을 내린 연극 <맵핑히틀러>는 한들호의 대통령 취임식 연설 직전에서부터 시작한다. 다니던 지방 대학이 문을 닫는 마당에 대학 졸업장 없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실패를 거듭하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만 이 역시도 쉽지 않았던 그다.

그러다 우연히 아파트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던 할아버지와의 다툼을 영상으로 촬영하게 되고, 유튜브에 업로드한 해당 영상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집 구석에서 눈치를 보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한들호는 얼떨결에 얻은 인기에 흥분하고, '무개념' 사람들을 촬영한 영상을 토대로 유튜브 채널을 키워간다.

한들호는 유튜브라는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분노를 조직한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한들호 주변에 몰려드는데,변변치 않은 연극배우 '고보슬', 서울대 로스쿨 재학생 '최래민', 유도선수 출신으로 머리보다 몸이 앞서는 행동파 '정가람'이 그들이다. 인기를 얻은 이들의 행동은 나날이 거칠어진다. 무개념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의 관상을 운운하며, 그들을 유대인을 거꾸로 뒤집은 '무소인'이라고 지칭한다.

한들호 일당의 유튜브 채널은 곧 정치투쟁의 장으로 변질된다. 분노와 혐오를 조직해 세를 키운 그들은 '공격개시당'이라는 정당을 창당하고, 구독자는 곧 지지자로 변한다. 별 거 아닌 듯했던 한들호 일당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즘이 탄생했듯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한들호가 탄생한다.

 연극 <맵핑히틀러> 공연 사진
연극 <맵핑히틀러> 공연 사진예술창작공장 콤마앤드

한들호와 히틀러의 연결고리

맵핑(mapping)은 컴퓨터공학 용어로, 특정 정보를 다른 정보 형태로 변환해 대응하는 것을 일컫는다. <맵핑히틀러>에서 히틀러의 서사는 한들호의 서사로 맵핑된다. 인물들의 이름은 나치의 주요 인물들의 이름을 연상시킨다. 고보슬은 나치의 프로파간다를 담당했던 정치전략가 괴벨스를 연상시키고, 최래민은 나치 돌격대 고위 간부를 지냈으나 훗날 숙청당한 룀, 정가람은 세계대전을 주도한 군인으로 나치의 2인자 자리에 오른 괴링을 연상시킨다.

히틀러가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맞이한 국가적 불안과 경제 위기를 이용해 사람들의 분노와 혐오를 조직한 것과 같이, 한들호는 주변국의 전쟁과 각종 사회 문제로 인한 혼란을 이용한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모든 불안과 위기의 원흉으로 지목한 것처럼 한들호는 무소인을 배척과 정화의 대상으로 지목한다.

오늘날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미디어의 파편화로 히틀러의 시대와 비교할 때, 미디어의 영향력이 훨씬 커졌다. 제도의 통제를 받지 않거나 통제가 느슨하게 적용되는 플랫폼이 증가했다. 이로 인해 제도권 외부에서 최소한의 원칙마저 무너뜨리는 세력의 등장이 용이해졌다. 한들호 일당은 바로 이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셈이다.

연극을 보는 내내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다. 당시 독일인은 히틀러의 등장이 비극의 서막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그리고 오늘날의 한국인은 한들호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2036년 한들호의 대통령 당선이 야기할 비극을 알고 있을까? 이들은 단번에 극단주의와 권위주의의 특징을 전부 보여주지 않는다. 차근차근 대중의 동의를 얻고, 점차 극단주의와 권위주의의 면모를 드러낸다.

위험성을 알아차릴 때면 이미 늦었다. 최래민은 한들호가 이끄는 공격개시당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제도권 내 여당을 통해 공격개시당의 성장을 막으려 한다. 하지만 이미 공격개시당은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했으므로 최래민도, 여당도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다.

 연극 <맵핑히틀러> 공연 사진
연극 <맵핑히틀러> 공연 사진예술창작공장 콤마앤드

한국의 극우를 생각하며

'과연 오늘날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연극과 오늘날 한국 사회를 집요하게 연결하다 보면 개연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맵핑히틀러>가 나치즘과 실제 역사에서 착안해 상상한 허구적 이야기가 실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한들호는 연극적 장치인 독백을 통해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휴전선 인근에서 북한을 도발해 교전이 발생하면 이를 빌미로 계엄을 선포해 국회를 해산하겠다고. 무인기 도발을 통해 계엄을 정당화하고자 했던 윤석열의 음모가 드러난 시점에, 한들호의 포부는 실제적인 섬뜩함을 자아낸다.

신기한 건 <맵핑히틀러>가 윤석열의 내란 이전에 쓰인 작품이라는 점이다. 3년 전에 쓰여진 <맵핑히틀러>에는 국회의사당 폭동이 등장한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헌법기관을 무력으로 공격하는 장면은 윤석열 지지자들이 벌였던 서부지법 폭동을 연상케 한다. 국회의사당 폭동을 주도한 혐의로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된 한들호는 <나의 복음>이라는 책을 출간한다. 히틀러가 감옥에서 쓴 <나의 투쟁>을 연상시키지만, 필자는 그보다 윤석열과 전광훈을 비롯한 한국의 극우주의자들이 옥중서신을 통해 지지자들에게 강경한 목소리를 주입하는 양태가 연상되었다.

연극과 현실의 연결고리들은 조건만 갖춰지면 언제든 히틀러와 같은 악이 한국에서도 태동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미 여러 징후들이 포착되고 있다. 혐오를 조장하는 극우 담론이 뿌리깊게 자리 잡았고, 그들을 중심으로 각종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으며, 종교와 결탁한 극단주의 미디어는 혐오와 분노를 정치 투쟁의 원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는 히틀러의 탄생이 야기한 비극을 알고 있다. 역사적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연극 속 한들호의 이야기는 2026년부터 시작된다. 아직 관객에게는 한들호를 멈춰 세울 힘이 있고, 멈춰 세워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 그리고 시민에게도 아직 힘이 있고, 그 힘을 사용해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

 연극 <맵핑히틀러> 공연 사진
연극 <맵핑히틀러> 공연 사진예술창작공장 콤마앤드
공연 연극 맵핑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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