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크 톰슨은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성공이 보장될 만한 실력의 야구 유망주였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무릎을 크게 다친 후 야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1998년 현재는 뉴욕 변두리의 작은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있다. 그뿐이라면 크게 나쁘지 않겠지만, 그는 알코올 중독자의 삶을 살고 있다. 비록 뉴욕에 살고 있지만 집안 대대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과거 오랫동안 '뉴욕 자이언츠'였으나 1950년대 샌프란시스코로 연고지를 옮겼다)의 팬이기도 하다.
불의의 사고 당시를 악몽으로 자주 꾸지만, 큰 문제 없이 살아가던 어느 날 옆집 친구 러스가 급히 집을 비우며 고양이 버드를 맡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러스의 집에 수상한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하고, 상황은 점점 심상치 않게 흘러간다. 급기야 그는 사건에 휘말려 크게 다치기까지 한다. 사실 그는 우연히 '열쇠'를 손에 넣었고, 그것만 그들에게 주면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술에 취해 열쇠의 행방을 잊어버리고, 그를 찾아오는 이들의 잔인함은 점점 더 심해진다. 일이 걷잡을 수 없이 꼬여 버린다. 행크는 자신과 아무 관련 없는 이 사건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새 이 일은 그의 문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정신을 차려 보니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피해를 입기 시작하는데…
▲영화 <코트 스틸링>의 한 장면.
소니 픽처스 코리아
범죄와 블랙코미디 사이, 뒤엉킨 사건의 쾌감
베니스 영화제의 단골 손님이라 할 수 있는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은 <더 웨일> 이후 3년 만에 <코트 스틸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기대만큼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한 분위기다. 흥행은 물론이고 평단에서도 압도적인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그의 작품 중에서는 '평작' 정도로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국내에서는 극장 개봉이 아닌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꽤 괜찮은 범죄 액션 스릴러다. 블랙 코미디적 성격도 짙어 장르적 재미가 풍부하다. 오스틴 버틀러를 중심으로 레지나 킹, 맷 스미스, 조이 크래비츠 등 굵직한 배우들이 열연을 펼친다. 대런 애러노프스키의 기존 작품에 비하면 비교적 밝은 톤이지만, 폭력 수위는 여전히 높은 편이라 묘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영화는 종횡무진 전개된다고 할 수 있는데, 행크가 겪는 연쇄적인 사건들이 산만하게 흩어지지 않고 최소한의 개연성을 유지한다. 그와 얽히고설킨 인물들만 해도 최소 다섯 명이다. 서로 관계망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이 다시 서로 얽히며 긴장감을 키운다.
한편 영화의 숨은 주인공은 다름 아닌 러스의 고양이 버드다. 압도적인 존재감과 사랑스러운 외모로 등장할 때마다 시선을 사로잡는다. 잔혹한 범죄 액션 속에서도 블랙 코미디적 요소와 함께 버드의 존재는 긴장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야말로 장면을 장악하는 캐릭터다.
▲영화 <코트 스틸링>의 한 장면.소니 픽처스 코리아
사고가 아닌 사건, 그리고 마주한 진실
영화의 표면은 행크가 우연히 휘말린 범죄 사건이다. 사실 그에게는 직접적인 잘못이 없다. 단지 사건에 '당했을' 뿐이다. 그래서 일종의 사고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그는 가까스로 살아남는 반면 주변 인물들이 허무하게 죽어 나간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부터 이 일은 더 이상 단순한 사고로 볼 수 없게 된다.
영화의 본질에는 행크의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은 그 사고. 친구와 함께 차를 몰다가 그는 크게 다치고 친구는 즉사했던 그 사건 말이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부상만 인정했을 뿐, 친구의 죽음은 외면해 왔다. 그 사고의 원인이 자신이었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현재 벌어지는 사건 속에서 주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는 깨닫는다. 이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며, 자신은 피해자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과거의 죽음과 현재의 죽음이 연결되며, 그는 자신의 책임을 직면한다.
영화의 제목인 '코트 스틸링'은 야구 용어로 도루를 시도하다가 태그 아웃당하는 상황을 뜻한다. 즉 훔치다 들키는 것이다. 이 제목은 영화의 내용과 맞물려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타인의 것을 빼앗거나 회피하려 했을 때 결국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점, 그리고 기억과 삶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함께 전하고 있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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