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또 대신 변호사 찾은 귀신들... '원귀 서사'의 진화가 씁쓸한 까닭

드라마 <전설의 고향>부터 <신이랑 법률사무소>까지... 대중매체가 귀신을 활용하는 법

최근 10%대 시청률(3월 28일 기준)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SBS 드라마 <신이랑 법률사무소>는 '귀신 보는 변호사'라는 독특한 설정을 내세운다. 법정물에 오컬트적 요소를 결합한 이 작품의 흥행은 단순히 코믹한 연출 덕분만은 아니다. 이 드라마의 기저에는 한국 대중매체가 오랫동안 변주해 온 고전적인 '원귀(怨鬼) 서사'가 현대적으로 진화한 씁쓸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장화홍련전> 같은 고전 설화,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을 대중적으로 그려낸 납량특집극 <전설의 고향>에서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이 찾아가는 곳은 언제나 관아였다. 소복을 입은 귀신은 새로 부임한 '사또' 앞에 나타나 자신의 원한을 토로했다. 당시 사또는 행정과 사법을 통괄하는 절대적인 권력이자 정의의 상징이었다. 귀신의 호소를 들은 사또가 진실을 파헤쳐 악인을 처벌하는 권선징악의 구조는 억울한 민초들의 목소리를 국가 권력이 해결해 주길 바라는 시대적 열망이 깃들어 있었다.

법률사무소 찾은 귀신

 드라마 <신이랑 법률사무소>
드라마 <신이랑 법률사무소>SBS

시간이 흘러 2026년의 귀신들은 더 이상 사또를 기다리지 않는다. <신이랑 법률사무소>의 귀신들이 찾아가는 곳은 '법률사무소'이며, 이들이 매달리는 대상은 '변호사'다. 원귀들이 호소하는 창구가 관아에서 로펌으로, 사또에서 변호사로 이동한 이 팩트는 현대 사회의 권력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과거의 정의가 사또라는 개인의 공감과 권위에 기대어 구현되었다면, 오늘날 시시비비를 가리는 핵심은 철저한 증거주의를 바탕으로 복잡한 '법전'을 해석해 내는 '법률 대리인'의 능력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귀신들이 처한 상황은 전통적인 원귀들보다 훨씬 복잡하고 교묘해졌다. 3~6화에 등장한 아이돌 연습생 및 천재 과학자 에피소드에서 보듯, 현대의 가해자들은 과거처럼 직관적인 악당이 아니다. 이들은 가장 가까운 지인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질투와 열등감으로 범행을 저지른 뒤 철저하게 알리바이를 조작해 법망을 빠져나간다. 이들은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완벽한 정상인으로 위장한다. 귀신이 단순히 가해자의 꿈에 나타나 목을 조르는 고전적인 복수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이유다. 그렇게 보면 현대의 귀신들에게는 자신의 억울함을 '합법적인 증거'로 번역해 줄 법률 대리인이 필수적이다.

<신이랑 법률사무소>가 시청자에게 통쾌함과 동시에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억울한 자를 구제하기 위해 고도로 발달한 사법 체계를 갖추었음에도, 극 중 피해자들은 살아서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죽어서 '귀신'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변호사의 조력을 얻는다. 가해자가 쳐놓은 완벽한 법적 방어막을 뚫기 위해 결국 '빙의'라는 초자연적이고 비합리적인 수단이 동원되어야만 하는 아이러니는 현실 사법 체계의 무력함을 정면으로 비웃는다.

한국 드라마 속 귀신의 활용법은 시대에 맞춰 진화해 왔다. 과거의 귀신이 공포의 대상이자 권선징악을 실현하는 도구였다면, <신이랑 법률사무소> 속 귀신은 고도화된 법의 사각지대에서 철저히 소외된 현대 사회의 무력한 약자를 대변한다.

귀신이 변호사에 빙의해 악인을 단죄하는 '사이다' 전개에 우리가 열광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현실의 법정은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기에 너무 높고 딱딱한 벽이라는 사실만 선명해진다. 과거 사또의 엄포 한 마디에 해결되던 원한이 이제는 복잡한 법적 다툼과 초자연적인 빙의를 거쳐야만 겨우 풀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귀신의 등장이 여전히 대중의 심장을 파고드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이곳이 여전히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홀로 눈물 흘리는 이들이 존재하는 사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드라마 <신이랑 법률사무소>
드라마 <신이랑 법률사무소>SBS


덧붙이는 글 이 칼럼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글쓴이(이인혜)는 12년차 대중문화 에디터입니다.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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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 에디터로 활동하며, 오랫동안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온 사람. 잡지와 온라인 매체, 브랜드 콘텐츠 등 다양한 채널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획하고 다듬는 일을 해왔다. 퇴근 후에는 늘 드라마를 보며 하루를 정리하는 시청자이자, 장면과 장면 사이에 남은 감정을 오래 붙잡아두고 싶은 에세이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