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듣고 명확하게 말하는 소통의 법칙

[리뷰] 뮤지컬 < ROGER >

무대가 아름다운 건,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믿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함께 있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뮤지컬 <ROGER>는 이런 무대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린 작품이다. 관제사라는 직업을 다루는 이 작품은 스카일러와 디디를 등장시키며 소통의 의미를 되새긴다.

관제사는 비행기나 선박 등의 안전과 흐름을 통제하는 직업이다. 스카일러는 비행기 사고로 죽은 아버지의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디디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고향 '오가르'를 지키기 위해 '관제사'라는 직업을 선택한다. 공연의 이야기는 우연히 연결된 무전을 통해 디디가 스카일러로부터 '관제'를 배우며 진행된다.

관제사라는 직업을 다루는 것에 걸맞게 무대는 관제탑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다. 왼쪽에는 디디의 공간이, 오른쪽에는 스카일러의 책상이 놓여 있다. 공연 진행 내내 필요한 부분에서는 영상으로 상황을 표현한다. 관객을 끌어들여야 할 때는 조명을 이용해 객석에 비춘다.

스카일러와 디디는 같은 듯 다르다. 두 사람 모두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고, 각각 돌봐야 할 가족이 있다. 하지만 스카일러가 앞뒤 막힌 원칙을 고수하는 항공관제사라면, 디디는 고향을 찾아오는 배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해양관제사 지망생이다.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난 사이지만, 결코 떼어낼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스카일러가 디디에게 뜻하지 않게 닿은 기회라면, 디디는 스카일러에게 유일한 단서에 접근할 기회다.

 '스카일러' 역할의 배우 고상호가 뮤지컬 < ROGER >에서 열연한다.
'스카일러' 역할의 배우 고상호가 뮤지컬 < ROGER >에서 열연한다.창작하는공간

감정을 뒤로 하고 선택한 대가

스카일러의 아버지인 카이퍼는 비행기 추락 사고로 죽은 피해자지만,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살인자의 가족'으로 고통을 받아온 스카일러는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 위해 당시 현장에서 관제를 담당했던 관제사를 찾아 헤맨다. 최종 재판을 앞둔 그는 결국 아버지의 잘못이 아님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찾게 된다.

오랜 시간 '가해자의 가족'으로 낙인찍혀 살아온 스카일러는 분노에 휩싸이고 디디는 그런 스카일러의 모습에 묘한 감정을 느낀다. 디디 역시 부모를 정비사 '네슬리'의 잘못으로 잃고 그를 원망했던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분명 디디도 네슬리를 죽이고 싶을 만큼 힘들어했지만 그는 타인을 미워하는 게 본인에게 더 큰 상처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오명을 바로잡을 수 있는 재판 당일, 허리케인이 몰아치고 재판 참석을 위해 관제탑을 벗어나려던 스카일러는 디디와 함께 비행기의 비상착륙을 준비한다. 스카일러의 명확한 지시와 디디의 해양 관제가 만나 비행기는 승객 전원 무사히 구조되는 결과를 얻는다. 더욱이 스카일러의 소식에 감동받은 사고 당시의 관제사가 진실을 전하며 아버지의 오명도 벗게 된다.

이야기를 지켜본 관객은 스카일러가 재판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고 있다. 어머니의 만류나 아내와의 이혼도 스카일러의 집념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당일 관제사의 잘못으로 오랜 시간 오명으로 얼룩졌던 아버지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재판'이었음에도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모습은 무엇보다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디디의 부모가 죽은 배 사고의 정비사는 네슬리로, 그는 복역 후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 이처럼 <ROGER>는 의도치 않은 실수로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야 했던 이들도 조명한다. 과거 침묵했던 관제사도 위급한 상황에서 실수한 대가로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전한다.

 5월 31일까지 NOL 서경스퀘어 스콘 2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 ROGER >의 공연사진이다.
5월 31일까지 NOL 서경스퀘어 스콘 2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 ROGER >의 공연사진이다.창작하는공간

솔직하고 명확하게, 진심을 담아 말하기

<ROGER>는 스카일러와 디디라는 인물의 상황을 전달하며 관객에게 그 판단을 맡긴다. 살아가며 억울하거나 슬픈,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갖게 되는 다짐에 대해 전한다. 최선을 다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칠 수 있고, 슬픔과 분노를 헤쳐나갈 힘은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표현한다.

동시에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나눈 두 사람을 통해 이야기의 핵심을 전한다. 스카일러와 디디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와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 과정에서 이해하지 못해 갈등도 겪지만,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서로에게 필요한 조언을 건넨다.

디디가 연인 일레인의 아버지를 대면하기 전 불안해하자 스카일러는 평소 디디의 모습대로 솔직하게 말하라며 응원한다. 스카일러가 사건의 진상을 깨닫고 흥분한 상태로 분노에 사로잡히자 디디는 네슬리를 통해 얻은 교훈을 전하며 조언한다. 이 과정에서 스카일러와 디디는 서로의 말을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법을 배운다.

이를 통해 <ROGER>는 다른 사람끼리의 이해와 공감을 전달한다. 예스 대신 '롸져'라고 대답하는 관제사들간의 소통은 지금 현실의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제대로 듣고, 나의 생각과 판단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https://blog.naver.com/burn_like_a_star에도 실립니다. 필자 블로그와 인스타그램(@a.star_see)에 취재 후기와 함께 공유됩니다.
롸져 ROGER 창작산실 관제사 창작하는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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