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조직의 붕괴... 이 영화가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

[김성호의 씨네만세 1305] <두 검사>

이제야 한국이 고문과 사건조작, 사법살인 등 국가폭력을 범죄로 규정하고 전수조사에 돌입했다.
악질적 고문경찰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졌던 이근안이 공교롭게도 한국사 최악의 국가폭력 중 하나로 꼽히는 제주 4·3사건 78주기를 앞두고 숨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3월 30일 '제주의 마음을 듣다'를 주제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국가폭력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소멸시효를 완전히 배제하겠다"며 "영구적으로 대한민국에서는 국가폭력으로 국민들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그런 일이 생기면 나치 전범 처벌과 같이 영구적으로 책임지도록 반드시 만들어 놓겠다"고 확언했다.

제주 4·3사건,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 5·18 광주 민주화항쟁, 사북사건, 군부독재 시기 끊이지 않은 용공조작 사건, 그리고 민주화된 세상에서 이뤄진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에 이르기까지, 국가폭력은 한국의 지난 역사 가운데 끊이지 않은 참극이다. 경찰과 군대, 검찰과 정보기관 등에 의한 인권유린도 지속적으로 발견됐다. 그러나 이중 어느 기관도 제가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 총체적인 사죄를 한 일이 없다. 국가폭력에 대한 전수조사 또한 이뤄진 바 없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표 이후 이뤄진 경찰의 전수조사가 그래서 특별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한국이 비로소 과거와 결별하고 역사를 바로 세울 것이라 기대된다.

두 검사 스틸컷
두 검사스틸컷M&M 인터내셔널

인류 역사상 최악의 국가폭력

때맞춰 도착한 신작 <두 검사>는 한국의 오늘에 시의적절하다. 우크라이나 출신 명감독 세르히 로즈니차의 장편 극영화로,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최초 공개됐고, 부산국제영화제 아이콘 섹션에 초청되며 한국서 첫 선을 보였다. 여성주의, 또 동시대 사회적 연대에 대한 지향이 두드러졌던 지난해 칸영화제서 빈손으로 돌아서야 했단 건 아쉬운 대목이다.

어떤 영화인가. 배경은 1937년 이오시프 스탈린에 의해 이뤄진 이른바 '대숙청' 시기다. 1937년부터 약 2년 간 소련 전역에서 무려 100만 명이 죽어나갔다 평가받는 대참극은 인류 역사상 손에 꼽는 국가폭력으로 기록됐다. 공식적인 사형집행만 68만 건을 넘고, 그 대다수가 NKVD라 이름 붙은 비밀경찰에 의해 조작된 사유에 따른 것이었다. 요컨대 완전한 국가폭력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대숙청은 어디까지나 이후에 붙여진 이름이다. 숙청이 한창 시작되던 당시엔 이것이 숙청인지조차, 누구에 의해 주도되고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스탈린 주도의 철저히 계획된 사건이며, 통치방식의 일환이란 것도 알 길이 없었다. 오로지 스탈린과 조직 내 규율에 충실한, 그러나 그 조직의 체계마저도 베일에 싸여 있던 비밀경찰 NKVD는 숙청에 따른 공포가 심화될수록 막강한 힘을 얻었다. 경찰과 검찰, 심지어는 군까지, 실정법 아래 운용되는 정부기관 요인들조차 NKVD의 눈 밖에 날까 전전긍긍했다.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며 저 하나 살고자 숨죽이는 시대, 영화는 바로 그로부터 출발한다. 주인공은 젊은 검사 코르니예프(알렉산드르 쿠즈네초프 분)다. 수련을 마치고 이제 막 임지로 부임한 초임 검사는 지방 교도소에서 법이 공정하고 절차에 맞게 집행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교도소장 이하 교도관들, 또 지역 당직자며 암약하고 있을 게 분명한 NKVD 요원들 사이에서 독자적인 업무영역을 갖고 일할 예정이다.

두 검사 스틸컷
두 검사스틸컷M&M 인터내셔널

법과 질서가 무너진 걸 목격한 초임검사의 선택

영화는 코르니예프가 제 임지에서 마주한 문제를 인상 깊게 보여준다. 교도소엔 청원, 그러니까 제가 처한 상황이 부당하다며 중앙 정부에 사건을 들여 봐 달라 요청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이들의 청원서는 절차에 따라 교도소에 제출되고, 교도소장은 이를 모아 중앙 정부로 발송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법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영화는 황당무계한 장면으로 이어진다. 어쩐 영문인지 그 청원서들이 바구니에 담겨 감옥소 어느 방으로 옮겨진다. 간수가 나이든 죄수를 그 방으로 데려와선 청원서를 태우라고 명령한다. 그를 지켜보는 것조차 귀찮았는지 간수가 자리를 비운 사이 죄수가 청원서 하나를 몰래 숨긴다. 코르니예프가 그 청원서를 입수하게 되는 건 운명의 장난일까.

<두 검사>는 제목이 보여주듯 검사와 다른 검사의 이야기다. 한 검사는 주인공인 코르니예프고, 다른 검사는 그가 모스크바 검찰청으로 달려가 마주하는 검찰청장이다. 용기 있게 청원서를 빼돌린 노인으로부터 교도소 내 죄인들이 처한 참혹한 실태를 마주한 코르니예프는 곧장 모스크바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탄다. 약속도 없이 제 조직의 수장인 검찰청장을 만나 지방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고발하려 한다.

그럴 밖에 없는 것은 이미 제가 있는 지역이 모조리 부패하지 않고서야 존경받는 볼셰비키, 무죄가 확실한 법학교수까지를 잡아다가 고문하고 사건을 조작할 리가 없는 때문이다. 검찰총장이, 소련의 위대한 지도자 스탈린이 이 사실을 안다면 문제는 바로잡힐 것이다. 코르니예프는 그렇게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두 검사 스틸컷
두 검사스틸컷M&M 인터내셔널

90년을 건너 오늘의 한국에 울리는 경종

1930년대 후반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90년 가까이 된 옛 이야기다. 우리는 역사가 어떠한지를 안다. 코르니예프가 누군지를 알지 못하지만, 그 운명을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저 유명한 유발 하라리는 제 근작 <넥서스>에서 대숙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1930년대 후반 스탈린주의 대숙청 기간 동안 14만4,000명의 적군 장교 중 약10퍼센트가 NKVD에 의해 총살되거나 투옥되었다. 여기에는 사단장 186명 중 154명(83퍼센트), 제독 9명 중 8명(89퍼센트), 원수 5명 중 3명(60퍼센트)이 포함되었다.

당 지도부도 끝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1917년 혁명 이전에 입당한 존경받는 구 볼셰비키 중 약 3분의 1이 대숙청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1934년에 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 위원 139명 중 98명(70퍼센트)이 총살되었다. 1934년 제17차 소련공산당 대회에 참가한 대의원 중 2퍼센트만이 처형, 투옥, 제명, 강등을 면하고 1939년에 열린 제18차 당 대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245, 246p

폭력과 인권유린, 고문이 상시적으로 이뤄졌다. 비밀경찰이 모든 이를 감시했고, 저 스스로도 예외는 아니었다. 군대와 당 내 절대 다수라 해도 좋을 인사가 혐의를 받았고, 최고 수뇌부라 해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오로지 스탈린만이 안전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토록 많은 이들이 반란을 꾀할 리가 없단 걸 모두가 알았다. 그러나 모두는 침묵할 밖에 방법이 없었다. 영화가 코르니예프를 하룻강아지 초임 검사로 그리는 건 그렇지 않고서는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없었으리란 걸 알았기 때문일 테다.

두 검사 포스터
두 검사포스터M&M 인터내셔널

누구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과 제도의 이야기다

모든 건 독재, 한 사람이 국가체제를 사유화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권력의 유지가 지상과제가 된 상황에서 국가 체제며 국민의 안녕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많은 권력자가 그를 훼손하길 꺼려하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독재자가 지배하는 모든 국가에서 비슷한 양태가 나타난 까닭이다.

권력을 쥔 독재자, 그에 부역하는 조직과 사람들, 그 모두가 빚어낸 현실이 문제다. 주목할 건 고문하는 어느 경찰만이 아니다. 그를 가능케 한 체제, 법과 질서가 무너진 상황을 봐야만 한다. 오래도록 제 죄상을 사죄하지 않았던 조직은 민주화된 대명천지에서도 증거를 조작하여 없던 간첩을 꾸며내길 꺼려하지 않았다.

<두 검사>는 스탈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악질적 고문경찰 또한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검찰이란 조직이 붕괴해 있음을 보이는 두 검사의 대화를 공들여 잡아낼 뿐이다. 이 영화의 탁월함이 또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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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