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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를 잡으려면 범죄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한다."(FBI 프로파일러 존 더글러스, 저서 <마인드 헌터> 중에서)
프로파일링(Profiling)은 범죄의 증거와 행동 패턴을 수집하여 범인의 성격, 특징, 행동 방식, 심리상태 등을 추론하는 수사 기법을 의미한다. 1970년대 FBI(미국 연방수사국)에서 시작된 프로파일링은, 범죄 사건은 물론이고 오늘날에는 국제정치와 외교전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30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살인마의 심연을 꿰뚫어보다. 프로파일링'편이 그려졌다.
범죄 분석은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시도되었으나 당시만 해도 대부분 추측에 머물렀고 실제 수사에서 범인 검거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20세기 중반 미국을 강타한 '뉴욕 매드바머 폭탄 사건'은 프로파일링의 시초가 된 역사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대도시 뉴욕에서 극장, 도서관, 뮤직홀 수많은 시민이 오가는 공공장소에서 연이은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범인은 뉴욕시 전역에 최소 33개 이상의 폭탄을 설치했고 그중 22개가 폭발해 15명이 부상을 입었다. 정체불명의 폭탄 테러범에게는 '매드 바머'라는 별명이 붙여졌지만 진범을 찾지못한채 폭탄 테러는 무려 16년간이나 이어졌다.
고뇌하던 뉴욕 경찰은 어떻게든 수사의 실마리를 찾기 위하여 뉴욕주 정신위생국 부국장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제임스 브루셀에게 범죄자 심리분석을 의뢰했다. 당시만 해도 범죄수사에서 정신과 의사에게 자문 요청은 파격적이었다.
브루셀은 경찰로부터 받은 자료를 통하여 테러범의 편지와 필체, 성격 등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그는 테러범이 동유럽계 이민자 출신의 40-50대이며, 권위와 격식을 선호하는 더블브레스트 정장을 선호하고, 극도로 강한 완벽주의 성향을 지닌 인물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놀랍게도 범인이 체포될 당시의 모습과 특징은 실제로 브루셀이 분석한 것과 거의 일치했다.
범인의 정체는 조지 메테스키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리투아니아계 이민자 2세 출신으로, 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산업재해로 생긴 폐 부상에 대한 보상을 받지못하자, 분노와 원한으로 폭탄테러를 저질렀던 것이다. 이 사건은 미국 범죄수사에서 프로파일링의 가치와 중요성을 처음으로 일깨우는 전환점이 된다.
1970년대 혼란했던 미국 사회에서는 '연쇄살인 사건'이 속출한다. 돈이나 원한 때문이 아닌, 쾌락과 환상충족을 위하여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들이 미국 전역에 잇달아 출현한 시기였다.
FBI는 연쇄살인범을 막기 위하여 '행동과학' 전문부서를 설립하고 각계의 전문가들을 모아서 사회학, 심리학, 범죄학을 결합하여 연쇄살인에 대한 수사기법을 구축한다.
드라마 <마인드 헌터>의 실제 주인공인 존 더글러스, '연쇄살인마'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든 로버트 레슬리는 FBI 1세대 프로파일러로서 현대 프로파일링의 기초를 만든 중요한 두 인물로 꼽힌다.이들은 연쇄살인범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하여 테드 번디, 에드 켐퍼 등 당대 36명의 악명높은 연쇄살인범들을 직접 심층 인터뷰하고 이들의 성장 배경과 범행 동기, 패턴까지 모든 것을 기록하여 범죄자들의 유형을 정리했다.
프로파일링 수사의 첫번째 기법은 범인의 '직업군'을 파악하는 것이다. '골든 스테이트 킬러' 사건은 40년간 이어진 장기 미제 사건을 프로파일링으로 해결한 것으로 유명하다. 범인인 조셉 디앤젤로는 늦은 밤에 주택에 침입하여 성범죄와 절도, 살인 등을 저질러 악명을 떨쳤다. 확인된 범죄만 살인과 납치 각 13건 등 총 50건이 넘었다.
무엇보다 범인의 정체가 충격을 준 것은, 한창 범죄를 저지르고 있던 당시 그가 군인이자 현직 경찰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수천명의 용의자중 경찰임을 콕 집어낸 프로파일링 덕분에 실마리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디앤젤로는 2018년 칠순을 넘긴 나이에 결국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으며 비록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늦게나마 법의 심판을 받았다.
프로파일링의 두번째 기법은 용의자의 성격과 성장배경 등을 분석하여 수사군의 범위를 좁히는 것이다. '도살자 제빵사(Butcher Baker)'로 악명을 떨친 로버트 한센은 1970년부터 1983년까지 미국 알래스카에서 최소 17명 이상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었다. 그는 주로 성매매 여성들을 큰돈으로 유인한 뒤 야생에 풀어놓고 '인간 사냥'을 즐기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프로파일러들은 범인의 범행방식과 행동패턴을 분석한 결과, '여성에게 반복적으로 거절당한 경험이 많은 열등감이 깊은 인물' '대인관계에서 고립되고 사회적인 부적응자' '정복한 대상을 소유하고 과시하려는 욕구가 강한, 숙련된 사냥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진범인 한센은 겉보기에 평범한 가장이자 제과점 사장이었지만, 어린 시절 말더듬는 습관과 피부 때문에 놀림을 당하며 여성에 대한 원한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평소 동물을 사냥하고 시신을 박제하는 것을 즐겼던 한센은, 피해여성들을 사냥하는 식으로 살해한 이후, 전리처럼 피해자의 유품을 따로 보관해두기도 했다. 한센은 체포된 이후 가석방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2014년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프로파일링의 세번째 기법은 범인의 시그니처(Signature)를 통하여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범죄자가 자신의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범행 현장에 반복적으로 남기는 표식을 의미한다. 프로파일링은 범인의 시그니처를 분석하여 이미 수사선상에서 한번 제외된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다시 용의자로 소환할 수 있게 한다.
데이비드 메이호퍼는 1970년대 수잔 예거 등을 비롯한 여러 아동들을 납치하고 살해한 연쇄살인범이었다. 그는 피해자를 이미 살해하고도 사실을 숨기고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몸값을 요구했다. 또한 일반적인 용의자와는 다르게 자신의 범행을 FBI에 직접 예고하기도 했다. 메이호퍼는 용의자로 체포되어 수사를 받았으나 거짓말탐지기 조사에도 불구하고 혐의가 발견되지 않아 석방됐다.
하지만 프로파일러들은 여전히 메이호퍼의 범행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며 의심을 풀지 않았다. 또한 프로파일러들은 자기과시욕이 강한 범인이, 피해자의 생일이나 범행일같이 의미있는 날에 유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도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메이호퍼는 예상대로 전화를 걸었다가 덜미를 잡혀 1974년 9월 경찰에 체포된다. 그는 베트남전에서 통신병으로 참전한 군인 출신으로, 실제 프로파일러들의 분석처럼 통신 기술에 능숙하고 대담한 성향의 인물이었다. 한편으로 이 사건은 프로파일링이 사후 분석이 아니라 실제 범인 체포로 이어진 첫 사례로 꼽힌다. 일단 한번 수사선상에서 제외된 인물이라고 해도 행동분석과 프로파일링을 통하여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귀중한 교훈을 남겼다.
프로파일링의 네번째 기법은 범인의 활동영역을 추적하는 것이다. 지리적 프로파일링이란 범죄 발생 위치를 분석하여 범죄자의 거주지와 생활거점을 추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린리버 킬러(Green River Killer)' 사건의 범인 게리 리지웨이는 1980-90년대 다수의 여성을 살해한 악명높은 연쇄살인범이었다.
여기서 프로파일러들은 범인이 자신의 생활반경에서 가까운 곳에서 피해자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하는 범행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냈다. 실제로 리지웨이는 체포된 이후 그린 리버에 시신을 유기한 이유에 대하여, '집과 가까워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인정했다.
일단 범죄자를 체포하고 난 후에도, 스스로 자백을 이끌어내게 하는 '심리적 프로파일링' 역시 중요한 수사 기법중 하나다. 그린리버 킬러 사건의 리지웨이,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이춘재 등은 모두 프로파일링을 통하여 자백과 여죄를 직접 이끌어낸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프로파일러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범죄를 밝히지 않으려는 범인들에게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임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그들의 자기 과시욕과 통제욕을 역이용하여 자백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오늘날의 프로파일링은 DNA 분석,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빅데이터 분석 등이 도입되면서 더욱 고도화된 과학수사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범죄자의 행동분석을 통한 면담전략 수립과 수사방향의 판단은 여전히 인간 수사관들의 영역이다. 미래의 프로파일링은, 과학수사와 프로파일링이 결합하면서 기존에 풀기 어려웠던 '왜?'라는 질문들에 답을 찾는 역할로서 점점 진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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