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보기 전 꼭 해야할 일

[김성호의 씨네만세 1303] 앤디 위어의 원작 <프로젝트 헤일메리>

'나는 끝없이 고독하고 불행할지라도 너희들은 영원히 행복하라.'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한 사람이 모두를 구하고 스스로 불행해지는 이야기를 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 일이라면 위인전에 나오는 대단한 영웅이나 태어날 때부터 남달리 선한 이들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 대단함의 신화에 대한 반박과도 같다. 우리 모두 안에 일정한 선함이 내재돼 있다고, 그 선함의 확장으로 아주 대단한 것만 같은 일도 능히 이뤄낼 수 있다고 전하는 작품이다. 관객수 100만 명을 넘어 장기 흥행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 영화는 이 시대 최고라 불리는 SF작가 앤디 위어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 나는 영화를 보다 인상적으로 느끼기 위하여 반드시 이 작품 또한 읽기를 권한다. 이건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인간에게 닥친 극단적 위기국면에서 시작한다. 태양의 열을 흡수해 온도를 낮추는 생명체 아스트로파지가 금성에서 발견되면서다. 태양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인류는 당장 수십 년 후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수십 년 안에 최소한 인류의 절반이 사망할 것이란 분석이 잇따른다. 바로 그때 인간이 내놓은 해법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프로젝트 헤일메리'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책 표지
프로젝트 헤일메리책 표지알에이치코리아

인류를 구하기 위한 돌아올 수 없는 여정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인간의 고육책이다. 과학자들은 관측 가능한 수많은 은하 가운데 단 하나의 별만이 온도가 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아낸다. 지구로부터 12광년 떨어진 별 타우세티다. 헤일메리팀은 타우세티로 우주선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타우세티로 가서 왜 다른 별과 달리 아스트로파지에 감염되지 않는지 원인을 조사하고, 지구를 구할 해법을 찾아보기로 한다.

난관도 적지 않다. 우선 동력이 부족하다. 최고의 과학자들로 이뤄진 헤일메리팀은 아스트로파지를 배양해 연료로 활용하는 법을 찾아낸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아스트로파지를 아무리 배양해도 우주선이 출발해야 하는 날짜까지 충분한 양을 만들 수가 없다.

결국 우주선은 편도로만 운행하게 된다. 타우세티까지 도착한 승무원들이 지구를 구할 방법을 발견한 뒤 그 해법을 소형 무인우주선에 실어 돌려보내기로 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곳에 남는다. 요컨대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탑승자가 살아올 수 없는 자살 프로젝트가 된다.

소설은 긴 우주여행을 마치고 동면에서 깨어난 라일랜드 그레이스 박사의 시점에서 펼쳐진다. 기억이 사라진 채 헤일메리호에서 깨어난 라일랜드 박사는 지구와 동떨어진 우주선에서 임무를 시작한다. 기억나는 거라곤 아스트로파지에 감염된 태양계를 구하러 왔다는 것뿐, 그가 누구이며 어떤 연유로 우주선에 탑승하게 됐는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컷
프로젝트 헤일메리스틸컷소니 픽쳐스

살아남은 건 한 명 뿐

삶을 버리면서까지 지키고자 하는 의는 어쩌면 한 인간이 세상에 나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일지도 모른다. 맨손으로 태어나 제 삶에 진정으로 귀속된 것은 목숨뿐인데, 남을 위해 그 위험을 무릅쓴다는 건 본능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본능을 따르는 동물과 인간이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쉽게 만나보기 어려운 감흥을 일으킨다. 헤일메리호에 올라탄 세 명의 승무원, 야오 리지에와 올레샤 일류키나,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죽을 수밖에 없는 임무를 맡아 우주 멀리 나온다. 오직 타우세티에서만 아스트로파지가 번성하지 않는 이유를 찾고, 지구에 그 해법을 보내 알리는 것이 목표다. 목표를 달성한 뒤엔 지구에서 12광년이나 떨어진 우주선 안에서 죽어가야 한다. 자살 임무나 다름없다. 야오와 올레샤는 기꺼이 자살 임무에 자원했다. 죽음이 기꺼울 이는 없으므로, 이들 모두가 제 삶보다 귀한 가치에 투신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그러나 이들의 임무는 이내 난관과 봉착한다. 타우세티에 도착도 하기 전에 두 명의 승무원이 사망한 것이다. 타우세티 앞에서 깨어난 건 오직 라일랜드 박사 한 명 뿐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컷
프로젝트 헤일메리스틸컷소니 픽쳐스

지원도 안 했는데 편도 우주선에 태워졌다

더욱 황당한 사실이 있다. 유일한 생존자 라일랜드가 임무에 자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기억을 되찾는데, 어느 순간 다른 이들과 달리 자신이 강제로 우주선에 태워졌단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자신을 우주선에 태운 프로젝트 책임자 스트랜드에게 강한 분노를 참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인류를 구할 임무에 매진한다.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인류 전체의 운명이 자살임무를 거부한 라일랜드에게 달려 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라일랜드를 구원하는 것이 있다. 다른 생명이다.

소설은 라일랜드 앞에 나타난 미지의 생명체와의 만남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라일랜드가 로키라 이름붙인 외계인은 돌덩이로 만들어진 거미처럼 생겼다. 보지 못하는 대신 어마어마한 청각을 지녔고, 기억력이며 사고력도 인간보다 뛰어나다. 에리다니40이란 항성에서 온 로키는 라일랜드와 같은 이유로 타우세티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 역시 동료들을 모두 잃고서 혼자 남아 막막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라일랜드와 로키는 그 넓은 우주에서 단 둘 뿐인 지성을 갖춘 생명체다. 그들이 뭉쳐 지구와 에리다니를 구하는 과정은 아름답기 짝이 없다. 둘은 서로의 생태와 문화를 이해하는 한편, 문제에 조금씩 다가서며 동료의식까지 갖게 된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우주에서 단 하나 남은 생명체가 주는 위안이란 게 얼마나 간절하고 위대한지를 이 소설이 생생하게 그려낸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컷
프로젝트 헤일메리스틸컷소니 픽쳐스

온 우주를 구원하는 선함이 있다

로키는 라일랜드를, 라일랜드는 로키를 구한다. 둘은 거듭된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한다. 그 과정은 처음부터 각오된 결심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우리 중 가장 평범한 이도 가졌을 법한 우리 안의 착함에서 비롯된다.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과 같이,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심지어는 위험에 빠질지라도 어려움에 처한 이를 죽게 놔둘 수 없다는 마음 말이다.

지구를 향해 샘플을 보내고 난 뒤 라일랜드는 로키와 에리다니를 향해 날아간다. 결국 죽게 될 줄 알면서도 기꺼이 조타키를 돌린다. 그가 돕지 않으면 로키와 그의 별이 무력하게 절멸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도울 이가 광활한 우주에 오직 자신 하나 뿐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로키는 그의 친구이고, 에리다니는 친구의 집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라일랜드는 제가 죽을 줄 알면서도 친구와 친구의 별을 살리러 간다. 처음 지구를 떠난 동료들, 그러니까 라일랜드를 제외한 선원들이 했던 선택을 한다.

결국 우주는 이들의 선함으로 구원을 받는다. 심사숙고 끝에 내려진 위대한 결심도 실은 남을 위험에서 구하고픈 작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란 게 이 소설이 전하려는 메시지다. 영화는 소설이 나아간 발자국을 그대로 뒤따라 밟는다. 소설과 영화, 매체적 특성을 고려하여 덜어내거나 상상력으로 덧붙이기보다 최대한 원작을 되살리길 택한다. 원작과 원작자에 대한 존중, 어쩌면 그를 넘어선 존경 때문일 테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영화는 소설이 구현한 아름다움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바로 이것이 영화를 본 뒤 소설까지 읽기를 권하는 이유다.

자살임무를 거부한 라일랜드는 로키를 알게 된 뒤 그를 버려두지 않는다. 어쩌면 라일랜드만이 아니라 같은 마음을 지닌 우리 모두가 그러할 것이다. 바로 그 마음을 일깨우는 것, 우리는 다른 이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물론 이것이 소설이 전하려는 바다. 말 많고 탈 많은 지구라는 행성에 여적 희망이 남았다면 나는 그것이 이 때문이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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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