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이 죽었다. 악질적 고문경찰의 대명사로까지 알려졌던 그가 요양병원에서 숨을 거뒀다는 소식이다. 88세까지 살았으니 천수를 누렸다 해도 좋겠다. 10여 년 간 수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사건을 조작해 삶을 망쳐왔음에도 그가 받은 징역은 고작 7년이었다.
민주화가 된 뒤 이근안은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도주했다. 무려 11년 간 숨어 지냈고 더 그럴 수 없게 되었을 때에야 제 발로 경찰을 찾았다. 과거 상급자였던 이들이 도주를 도왔다는 의혹을 받았으나 처벌 받지 않았다. 출소 후엔 목사로 변신해 목회활동을 했다. 책까지 썼다. 그러고도 제가 한 행동이 그 시절엔 애국이었다는 망언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피해자들을 조롱하는 듯하였다고 말하는 이들이 여럿이었다.
여러 영화가 그에 영향을 받아 제작됐다. 그에게 고문을 당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았던 고 김근태 의원의 수기를 바탕으로 <남영동 1985>가 만들어졌고, 천만 영화 <변호인>이나 흥행작 <1987> 같은 작품, 또 고문경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걸작 <박하사탕>에서도 그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죄 없는 이를 잡아다 죄인으로 둔갑시키는 고문경찰, 그 대명사가 바로 이근안이었다. 그 고문이 어찌나 체계적이고 정밀하였는지 당한 이들이 죽지도 않고 죄다 없던 죄를 인정하였다 했다. 그 모습에 주변이들조차 그를 고문기술자라 불렀다 했다. 그렇다. 죽어서는 안 됐다. 증거가 남아서도 안 됐다. 그러면서도 극한의 고통을 느껴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해야만 했다.
공안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로, 말단 순경으로 시작해 경찰 중간 간부 격인 경감에 오른 그다. 공적 있는 공직자라 하여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까지 받았다. 민주정부가 들어서고도 그 서훈이 취소되기까지는 10년이 더 걸렸다. 김영삼과 김대중을 건너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였다. 경찰의 사죄는 그보다도 훨씬 늦었다. 낡은 대공분실을 철거하는 등 과거 지우기에만 열심이던 경찰은 2018년 문재인 정권에 들어와 남영동 대공분실 관리를 시민사회로 이관하기로 한 뒤에야 경찰청장 이하 수뇌부가 이곳을 찾아 헌화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근안은 치욕이었으나, 한국사회는 그의 잘못은 오로지 그 개인의 것으로만 대해왔다. 경찰도, 사법체계도, 지난 정권도 책임지려 들지 않았다.
▲박하사탕스틸컷
이스트필름
이근안은 개인이었을까
영화 <박하사탕>에서 설경구가 연기한 김영호는 경찰이다. 그는 반정부 시위를 하다 잡혀 들어온 운동권 학생들을 고문한다. 운동권 선배들이 지금 어디에 숨었느냐고, 그런 것 따위를 캐물으며 때린다. 이 영화에서 무척이나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이렇다. 고문 끝에 선배가 숨은 곳을 토설한 대학생이 울고 있다. 그런 그에게 휴지를 가져다 준 김영호가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한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질문은 아마도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물음이다.
"너 정말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니? 네가 일기에 그렇게 썼대. 삶은 아름다운 거라고."
그 장면 앞에 나오는 신은 훨씬 더 유명하다. 십 년 쯤은 더 흐른 뒤의 고깃집이다. 세상은 민주화됐고, 영호는 이제 경찰이 아니다. 식당서 어린 애가 가지고 놀던 공이 영호가 식사하던 테이블 밑으로 굴러 왔던가. 그걸 주우러 온 아이에게 다가가 영호가 으르렁대며 개 흉내를 낸다. 아이 아버지가 다가와 얼른 사과를 하는데, 이걸 어쩌나. 둘이 아는 사이다. 예상하다시피 앞에 적은 대학생이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다. 둘은 고깃집 화장실에서 피할 길 없이 다시 마주친다. 그에게 김영호가 이렇게 말한다. "삶은 아름답다, 그렇죠?"
소설가 성석제의 단편 가운데 <매달리다>란 작품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배를 타는 게 꿈이었던 소년이 마침내 그 꿈을 따라 선장이 된다. 단란한 가정도 이루고 가장으로 성실히 살아간다. 그런 그의 삶이 어느 순간 되돌릴 수 없이 파탄이 난다. 여느 때처럼 조업을 나갔다가 북한에 의해 납북되고, 겨우 돌아온 한국에서 간첩으로 몰리면서다. 소설 가운데 완전히 삶이 망가진 그가 과거 저를 고문하고 세뇌했던 경찰과 마주한다. 세월이 흘러 경찰이었던 이는 턱받이에 침을 질질 흘리는 노인이 되어 있다. 그가 말한다.
"나는 그때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오.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지 댁한테 아무 감정도 없었소.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소. 당신을 언제 체포했는지 수사를 했는지 기억도 할 수 없소."
그렇다. 하나도 아름답지 않다. 고문경찰은 떳떳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제가 했던 일을 기억에도 마음에도 담아두지 않는다. 오로지 그에게 고문을 당하고, 없던 죄를 덮어쓰고, 삶을 망치고 몸도 망가진 이들만이 과거 그 순간에 머물러 있다. 더는 세상이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울 수도 없다. 민주화된 세상에서도 이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남영동 1985스틸컷
씨너스엔터테인먼트
인간이 인간을 파괴하는 일
<변호인>에서 임시완이 연기한 진우가 고문을 당하던 신을 기억한다. 보는 이를 경악하게 했던 그 자세를 뭘 좀 아는 이들은 '통닭구이'라고 불렀다. 무협지 속 독문무공처럼 통닭구이는 그 시절 고문경찰 이근안이 개발한 독자적인 고문법이었다. 빠지는 법이 없었다는 전기고문과 물고문은 물론이고, 전국 1인자라 불렸던 관절빼기에 더하여, 그는 독자적인 고문법까지 개발해 자주 시전하였다. 그중에서도 효과가 컸던 통닭구이는 고문 깨나 하는 이들이 너도나도 따라하는 수법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작가 강준만은 제 저술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에서 이를 이렇게 묘사한다.
'고문 중에서도 제일 끔찍했던 고문이 통닭구이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통닭이 아닌 사람을 바닥에 엎드리게 한 후 발바닥, 발가락을 세운 후 손등, 손바닥을 수없이 난타하고 마치 통닭이 전기철봉에 매달리듯 끈으로 손과 발을 묶은 후 손과 종아리 사이로 굵고 긴 몽둥이를 가로질러 넣고는 공중에 매달고 손, 발, 머리 등을 닥치는대로 때리고 문지르는 것인데, 이 통닭구이로 발톱이 다 빠져 달아났고 온몸은 가지처럼 보라빛으로 변해져 있었으며 제대로 걷지도 못해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야 했다'
신체적 고통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 인간을 무너뜨리는 방법들을 창의적으로 고안해내는 이근안에게 같은 공안경찰들조차 혀를 내둘렀다니 그가 비슷비슷한 경찰들이 넘쳐나던 당시에 어떻게 그토록 특진을 거듭했는지 알 만도 하다.
▲변호인차동영 경감
NEW
애국이었다고 말한다
<변호인>의 빌런 차동영 경감(곽도원 분)을 기억하는가. 그가 법정에서 송우석(송강호 분) 변호사와 마주하여 일장연설을 하는 장면이 있다. "어이 변호사 양반"하고 시작하는 그 유명한 대사, 그러니까 "사람들은 전쟁이 다 끝났는 줄 알아. 그거 왜 그런 줄 알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그래. 나 같은 사람들이 목숨 걸고 빨갱이 잡아 주니까 당신 같은 사람들이 뜨신 밥 처먹고 발 뻗고 주무시는 거야. 알겠어? 집에 가서 잘 생각해 봐. 우리 같은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가. 당신이 할 수 있는 애국이 뭔가!"하는 말이다. 고문하고, 고문을 지시하고, 없는 죄를 조작해 덮어 씌우고 그 모두를 총괄한 자가 제가 했던 조작과 고문이 애국이라고 말한다. 그나마도 이건 1980년대 초, 그러니까 전두환 정권 시절에 하는 말이다.
이근안은 민주화가 이뤄지고도 한참 뒤, 그러니까 영화 <변호인>이 개봉하기 고작 2년 전에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이란 이름의 책을 냈다. 그리고는 제가 한 일이 당시엔 애국이었다고 말했다.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선 한 술 더 떠 "애국은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이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제가 한 일은 고문이 아니라 상대의 심리를 무너뜨려 진실을 실토하게 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공들여 펼쳤다. 반성은커녕 제가 한 일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는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간 한국사회가 이근안을 다뤄온 방식은 참담하기만 하다. 선을 긋고 구분하며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처벌을 받았고 훈장도 빼앗았으니 이정도면 되었다고, 그리 여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이근안은 그저 개인일 수 없다. 경찰이란 조직이 제 안에 전담 인력을 두고 공공연한 고문을 자행했다. 주로 시국사범들에게, 또 납북어부 간첩조작 사건에서 보듯이 실정법조차 어긴 적 없는 이들에게까지 공산주의며 종북, 간첩과 관계된 혐의를 씌우는 일을 맡아 수행토록 했다. 이근안은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일 뿐이다. 수사를 지휘한 검찰, 그리고 검사가 이를 모르지 않았다. 법원과 판사는 고문을 통해 얻어진 증거일 수 있단 걸 알고도 외면했다. 이 모두가 부당하게 집권한 독재자가 제 수명을 늘리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그러니까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그에 부역한 이들이 모두 이근안과 같다. 이근안은 독재정권이란 거대한 기계의 부품일 뿐이다.
▲1987스틸컷CJ 엔터테인먼트
보내지 않은 과거는 머물러 있다
한국은 과연 과거의 잘못을 마땅히 처리했는가.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하고, 독재에 부역한 이들에게 죄를 묻지 않으며, 그 후예들이 공공연하게 정치며 경제 등 각계로 진출해 떳떳하게 살아가는 것을 손 놓고 바라보았다. 피해를 입은 이들이 도리어 숨죽여 살아갔고, 많은 수가 고통으로부터 끝내 벗어나지 못하였다.
누구는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으로 갈라진 사회에 통합이 긴요하다 말한다. 그러나 용서는 사과가 있을 때에야 가능한 일이다. 사과는 깊은 반성 뒤에야 이뤄지는 것이다. 죄를 짓고 은폐하며 조롱을 그치지 않는 이들 앞에서 화해를 말하는 건 무심하고 무지한 일이다. 윌리엄 포크너는 <Requiem for a Nun>에 이런 문장을 썼다.
'과거는 죽지 않았다. 심지어 아직 지나가지조차 않았다. The past is never dead. It's not even past.'
지금 우리는 여전히 과거 속에서 살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공유하기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죽었다, 그러나 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