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서해수호의 날이다. 서해상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싸고 발발한 북한과의 교전, 그로부터 죽고 다친 국군 장병들을 기리는 국가 기념일이다. 두 차례 연평해전,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전 등 10여 년 간 이어진 해상 무력충돌과 구조과정에서 사망한 이가 무려 55명에 이른다. 다치고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는 이는 100여 명에 이른다.
서해 북방한계선은 남북 간 군사충돌이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장이다. 해상 완충지대가 없는 데다 남북한이 서로 북방한계선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르고 꽃게 조업 등 이권까지 관련돼 있어 충돌의 가능성이 여전히 상존한다. 양국 간 국지적 도발이 일어날 경우 이곳을 가장 가능성 높은 전장으로 꼽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연평해전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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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 국민의 안녕을 위해 싸운 이들
2015년 개봉한 <연평해전>은 제2차 연평해전 실화를 다룬 극영화다. <베테랑> <암살>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국제시장> <내부자들> 등 쟁쟁한 흥행작이 여럿 있었던 해 흥행순위 9위를 기록했던 성공작이다. 관객수 600만 명을 넘겨 손익분기점을 크게 상회했다. 이듬해 초 넷플릭스가 한국에 본격 진출했단 사실을 떠올려 보면 이때야말로 한국영화의 절정기라 볼 수 있을 정도.
영화가 성공한 비결은 역시 실화가 가진 힘이겠다. 2015년이 어떤 해였나. 당시 박근혜 정부는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걸었으나 실제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민간단체가 민통선 이북에 들어가 대북삐라를 날리고, 북한은 이를 겨냥해 총을 쏘는 등의 일이 잇따랐다.
북한 무인기가 남한 영공을 침범해 내려왔고, 서해상 NLL을 둘러싸고 수백 발 포탄과 대응사격이 오가는 일도 있었다. 영화가 한창 상영 중이던 2015년 8월엔 육군 1사단 수색대대 장병들이 비무장지대 추진철책에서 북한군이 설치한 목함지뢰를 밟아 중상을 입는 일까지 벌어졌다. 북한의 위협은 현실이었다. 정부의 구호는 무력하고 공허하기만 했다. 지난 시대 어른들이 해결하지 못한 잘못의 대가를 후세대가 제 피로 치르는 꼴이었다.
▲연평해전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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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손을 조타키에 묶고 가라앉았던 군인
600만 명의 관객 가운데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게 20대부터 30대까지의 청년층, 또 절반 가량이 여성이었단 것도 이색적이었다. 전쟁, 또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주 관람층이 통상 50대 이상의 남성이라는 통념을 정면에서 깨는 것이었다. 이색적인 관객 구성에 이뤄진 조사들은 30대 이하 관객이 무려 75%, 여성이 과반이라는 사실을 확인케 했다. 김무열, 진구, 이현우, 이완 등을 캐스팅한 제작사 측도 어리둥절한 일이었다. 젊은이들이 남북관계와 정치, 역사에 무심하다는 편견은 더는 힘을 발하지 못했다.
한국은 제2차 연평해전을 승리라 기록하고 있으나, 실상은 참담하기 짝이 없다. 사건은 2002년 6월 29일 아침에 벌어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 터키와의 3, 4위 결정전이 있던 바로 그날이다. 오전 북한 경비정 2척이 북방한계선을 지나 내려왔다. 교전수칙에 따라 해군 고속정 참수리 4척이 나가 대응했다. 연안경비와 침투대응을 맡는 소형 고속정인 참수리 2척이 비슷한 규격의 상대 고속초계정 1척씩을 맡는 형태였다. 당시 교전수칙은 5단계로, 적에 근접해 진로를 막는 차단기동이 경고사격과 위협사격, 실제적인 격파사격에 앞서 진행돼야 했다. 바로 이점이 치명적 맹점이었다. 제2차 연평해전에서 확인된 것과 같이 적에게 실제적인 공격의사가 있다면 알아서 접근해 표적이 되는 꼴이기 때문.
예고 없는 적 공격을 받은 참수리 357정은 교전 초기 함장이 저격당해 사망하고, 조타실이 파괴됐으며 엔진과 발전기까지 피해를 입어 사실상 전투 및 항해불능 상태에 빠졌다. 적 기습으로부터 살아남은 부장 이하 승조원들의 처절한 대응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같은 편대 기함인 358정이 역공하며 적 함정 또한 완파된다. 제2차 연평해전으로 6명이 전사했고, 18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357정은 끝내 침몰했고 조타장 한상국 상사 또한 함께 가라앉았다. 발견 당시 그가 제 구명자켓으로 손을 조타키에 묶은 채 발견됐단 건 뱃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야기다.
▲연평해전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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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 재구성, 클리셰로 거둔 효과
<연평해전>은 이 같은 실화를 극적으로 재구성했다. 사실을 최대한 살리는 한편, 일부 극적 효과를 위해 약간의 장치를 더했다. 통상적인 전쟁영화, 특히 비극적 실화를 가진 영화가 흔히 택하는 클리셰 또한 적극 활용한다. 사망자들을 주연으로 삼아 그들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어 관객에게 감정을 이입하도록 하고, 후반부에 비극의 충격을 끼얹는 방식이다.
영화 속 전투과정 중 상당수는 극적 연출이다. 갑판서 이름을 불러가며 소통하는 것도, 반파된 배를 몰고 남쪽으로 나아가는 것도 모두 그렇다. 그러나 또한 많은 부분이 사실이기도 하다. 위험 앞에서도 투지를 잃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이들과 지휘통제에 따라 맡은 바 역할을 해내는 장병들의 모습이 그렇다. 북한군의 피해를 최소화해 묘사하는 건 더 큰 피해를 입은 그들이 또한 우리와 같은 사람이란 것, 고작 열 몇 살, 많아야 스물 몇 의 나이에 조악한 방탄조끼조차 없이 갑판 위에 서서 총을 쏘아댄 이들의 피해 또한 처참한 수준이었다고 전한다.
▲연평해전포스터NEW
한반도는 언제까지 전쟁의 위협을 안아야 하나
무엇보다 이 영화가 아프게 다가오는 건 2002년 한·일 월드컵과의 대비다. 당시 월드컵에서 이룩한 4강 신화와 거리응원으로 대표되는 전국적 열기, 무엇보다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 속에서 정부는 북한과의 교전이 크게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다. 한국 언론 또한 월드컵을 앞서 보도하고 2차 연평해전 보도를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단 건 돌아보기 민망한 일이다. 영화는 바로 그 장면들, 월드컵 영상 아래 작은 자막으로 지나가는 교전 소식과 그를 바라보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아프게 담아낸다.
<연평해전>이 뛰어난 영화라고는 말하기 어렵겠다. 실화를 담아냈으나 2001년 작 <밴드 오브 브라더스> 등 실화를 철저하게 고증해 사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에 비하여 극화와 고증의 기준점이 모호하고 연출 또한 치밀하지 못한 때문이다. 보다 충실하게 고증하거나 차라리 더 적극적으로 극화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어중간한 자세를 이어간다. 아마도 역사적 사건과 그 동시대성이 주는 무게 때문이었을 테지만, 감당하지 못할 것이었다면 차라리 극화를 최대한 배제하는 선택이 나았으리란 아쉬움을 감추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영화엔 미덕이 선명하다. 그건 조국을 위해 희생한 군 장병을 기리는 분명한 의도와 진지한 자세다. 종전하지 않은 나라에서 평화가 당연하다는 듯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우리가 서 있는 결코 안온하지만은 않은 현실을 알린다는 점에서 이 영화엔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뒤 기존 '강대강 정책'이 불필요했다 진단하고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오늘에 이르러 <연평해전>을 다시 보는 일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전쟁을 감당하는 이들, 뒤에 선 이들을 위해 위험을 기꺼이 무릅쓰는 이들의 고운 얼굴이 이 안에 담겨 있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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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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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타키에 손 묶고 가라앉은 군인, 영화로 기리는 '서해수호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