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순국 116주기, 20분 단편영화로 되살아난 그의 삶

[김성호의 씨네만세 1299] 국가보훈부 <안중근>

인간이 이를 수 있는 가장 고결한 행위, 많은 이들은 그를 희생이라 말한다. 유학의 경전 <논어> '헌문'편엔 공자는 제자 자로에게 성인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요건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내놓으며, 오랜 약속을 잊지 않는다'는 것. 이를 지키면 유학이 최고의 인간형으로 꼽는 완성된 인간, 즉 성인에 이른다는 이야기다.

이익 앞에서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 앞에 목숨을 내놓는 것, 그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익을 좇는 선택을 일삼고 위험 앞에 제 목숨만 중히 여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의를 추구하고 희생하는 일은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라 어렵고 고단하다. 그 결과로써 우리는 의 대신에 이익을 택하고, 위험 앞에 몸을 숨기는 이를 수시로 목격한다.

그러나 정말로 기억해야 할 건 그 맞은편에 있다. 누군가는 의를 위해 목숨을 내놓기도 한다는 사실 말이다. 이 나라 곳곳에서 2500년 된 공자의 옛 말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그래서일 테다. 서울 남산 아래 큼지막하게 자리한 커다란 빗돌에서, 또 서울서 정남쪽 땅 끝 전라남도 장흥군 여기저기서도 우리는 공자가 남긴 앞의 '見利思義 見危授命 견리사의 견위수명'이란 여덟 글자와 마주한다.

안중근 스틸컷
안중근스틸컷국가보훈부

안중근 의사가 가슴에 품고 산 여덟 글자

왜인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가 일평생 굳게 붙들고 산 문장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신자이자 유학자이기도 했던 안 의사가 죽음을 앞에 두고 남긴 유묵에서도 이 문장이 발견된다. 그는 목숨을 버리게 될 줄 알면서도, 또 재판과정에서 항소조차 않으면서까지 이와 같은 소신을 지키려 했고 마침내는 지켜냈다.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 순국 116주기다. 독립운동사 가장 큰 성과라고까지 꼽히는 조선총독부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 처단의 주역 안중근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유다.

<안중근>은 국가보훈부가 차관급 처에서 장관급 중앙행정기관인 부로 승격된 2023년 제작한 단편영화다. 국가보훈부가 기획하고 파라독스 스튜디오가 공동 제작한 <안중근>은 바로 위의 여덟글자, 남산 자락에 위치한 비석 앞에서 시작한다. 현대 한국의 어린 소년이 안중근의 유묵을 새긴 비석 앞에 서고, 그 모습이 그대로 19세기 말 소년 안응칠(황진운 분)로 이어진다. 응칠은 안중근의 아명이다. 나이를 먹고 그가 제 행동에 책임을 질 즈음이 되어 아버지 안태훈(이엽 분)이 응칠에게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중근을 내리는 것이 영화의 도입이 된다.

안중근 스틸컷
안중근스틸컷국가보훈부

20분 단편영화로 훑어보는 안중근의 삶

그로부터 영화는 20여 분의 러닝타임 동안 안중근이 자라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사에서 쏘아 죽이며 마침내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까지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훑어나간다. 윤제균의 2022년 작 <영웅>과 우민호의 2024년 작 <하얼빈> 사이에서 국가보훈부의 단편 <안중근>은 안중근 의사의 전 생애를 효과적으로 훑어나가는 데 집중한다.

<영웅>은 뮤지컬 영화로써 단지동맹부터 조마리아 여사의 눈물겨운 선택에 이르기까지를 제목 그대로 영웅적으로 그려냈다. <하얼빈>은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30분 하얼빈역에서 감행한 처단을 클라이맥스로 삼아 장르영화로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 20여 분짜리 짤막한 단편이 도리어 두 작품보다도 한 인물의 전 생애를 훑어 다룬단 건 국가보훈부가 직접 제작한 덕분일지 모를 일이다.

안중근은 누구인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 속 한국인으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수위를 다투는 이다. 안중근이 처단한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총독부 초대통감으로 일본 정치 중심에서 밀려나긴 했어도 여전히 대단한 명성을 지닌 상징적 인물이었다. 이후에도 30여 년 간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요인 암살과 무장투쟁 등 다양한 방식의 저항을 이어갔으나 안중근보다 크다 할 수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는 그저 비무장한 늙은 정치인을 쏘아 죽인 암살범이 아니다. 일본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면서도 일관되게 제 소속을 대한의군 참모중장 독립특파대장이라 밝혔다. 러시아계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의 지원으로 창설된 연추 의병이 안중근이 주장한 대한의군으로 추정된다. 그는 스스로가 군인 신분으로 작전을 펼친 것이라며 만국공법에 따라 군형법으로 다스려 총살형을 행할 것을 요구한다. 전쟁을 수행한 포로이기에 일반법원에서의 항소 또한 포기한다. 그러면서도 공판과정에서 검사에 맞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15가지 이유를 열거하는 등 처단이 마땅한 것이란 논리를 굽히지 않았다.

안중근 스틸컷
안중근스틸컷국가보훈부

나라에서 만들었는데, 고증이 왜 이러나

<안중근>은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위인으로 추앙받아 마땅한 안중근이란 이의 기본적 삶과 사상을 개괄하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의 정신을 선양하는 걸 주요한 목적으로 삼고 있는 국가보훈부가 어떤 부분에 집중한 것인지가 선명히 드러난다. 다만 영화 가운데 아쉬움 또한 적잖다. 특히 최상급 국가부처가 직접 기획해 만든 작품이란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우선 고증이 아쉽다. 안중근의 소년과 청년 시절의 이야기는 의사가 직접 옥중에서 집필한 자서전 <안응칠역사>에 따른 것인데, 그 내용을 별 의미 없이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를테면 공부를 등한시하는 어린 안응칠을 친구들이 타이르자 "글은 이름자나 적을 줄 알면 그만이다"하고 말하는 대목을, 영화는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국채보상운동이 있었을 때 일본 형사와 대화했던 이야기 또한 이미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정하고 평양으로 옮겨가 자금마련을 위해 석탄을 캘 때인데도 아직 철없는 학생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심지어 아버지의 친구인 어른이 당도해 안중근에게 러시아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하라 권하는 대목이 국채보상운동보다 앞에 있었던 일임에도 그를 뒤로 옮겨놓기까지 한다. 뜻을 세우기 전에도 의기 높은 청년시절을 보냈음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겠으나 실제 있었던 일의 순서와 의미를 바꾼 것은 실제 역사 속 인물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가 못되지 않을까.

흠 많은 작품이지만 그래도 의미 있다

무엇보다 흠이 되는 것은 안중근의 사상을 이루는 두 갈래, 즉 유학과 가톨릭 신앙에 대한 대목을 거의 배제했다는 점일 테다. 자서전의 상당부분을 이루는 그의 철학이 사라진 탓으로 마치 민족주의적 견지에서 침탈한 외세에 일차원적으로 저항하는 평이한 인물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이는 안중근 스스로가 경계하여 옥중에서 끊임없이 제 사상을 기록하고 설파한 의도에 반하는 일이다. 만약 그가 평범한 독립운동가였다면 <동양평화론>과 같은 논설은 물론, 법정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 15가지를 일관되게 논하거나 일본 제국주의와 일본 시민을 구분해 다루는 등의 일을 해낼 수는 없었을 테다. 안중근이란 인물을 조국을 침탈한 적을 증오한 사람으로 단순화시키는 게 과연 이 시대 위인을 이해하는 바람직한 방식일까.

또 하나 아쉬운 건 연출이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을 들인 영화임에도 작품 곳곳에서 초보적인 수준의 연출 실패가 나타나는 대목을 지적할 밖에 없다. 이를테면 수일을 산중에서 작전한 군인들이 수염 한 가닥 없고 말끔히 목욕하고 매무새를 만진 듯한 모습으로 출연하는 것 등이다. 극중 일본인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일본어를 할 때가 있고, 갑자기 유창하게 한국어를 하는 장면도 있어서 그 완성도가 마치 TV 재연프로그램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여럿이다. 그리 유명하지 않은 배우들이 출연한다고는 해도 기본적인 대사조차 숙지하지 못한 듯한 모습까지 보이니, 영화가 과연 작품성을 돌아보긴 하였는지도 의문스럽다.

그럼에도 <안중근>은 국가보훈부가 최소한의 틀이 잡힌 단편영화를 제작해 다양한 독립운동가를 국민 앞에 소개하려는 작업의 포문을 열었단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상당부분 고증에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나름대로 국민 앞에 인물의 총체적인 삶을 효과적으로 내보이기 위해 고심한 흔적 또한 없지는 않다. 다른 무엇보다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 순국 116주기가 아닌가. 그를 맞이하여 짤막한 이 영화 한 편이나마 권할 수 있단 것이 그래도 다행스럽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안중근 국가보훈부 파라독스스튜디오 최준하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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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