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불란서 금고> 공연 사진
장차, 파크컴퍼니
신구를 염두에 두고 대본을 썼다고 하니 '맹인'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은 뛰어난 청력으로 금고의 톱니바퀴 소리를 세밀히 파악하여 금고를 열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금고를 열기 위해, 그리고 다른 인물들이 금고 안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맹인이 필요하다.
맹인이 얻고자 하는 것은 금고 안에 있지 않다. 다른 인물들과 구별되는 점이다. 다른 인물들의 목적이 금고를 연 행위 다음에 따르는 무언가에 있다면, 맹인의 목적은 금고를 여는 행위 그 자체다. 맹인은 금고를 열 때 들리는 '가장 아름다운 마찰음'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필자는 그런 맹인에게서 예술가의 면모를 엿보았다. 남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시력)을 잃었지만 그걸 탐하지 않고, 남들이 전혀 욕망하지 않는 것(금고의 마찰음)을 바란다. 이를 위해 남들이 가지지 못한 예민한 감각을 발달시켰다. 세속적인 것을 바라는 인물들 사이에서 맹인은 자신이 진정 바라는 한 가지를 위해 다른 세속적인 것들을 기꺼이 내려놓는다.
금고를 여는 순간 맹인 역의 배우 신구 얼굴에 피어난 웃음, 금고 안에 있는 그 무엇도 탐하지 않고 홀연히 떠나는 맹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불란서 금고>의 의미를 정리할 수 있었다. 내밀한 욕망을 따끔한 웃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 이 연극이 소중했고, 무엇보다 "무대에 선다는 건 아직도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말씀하신 배우 신구의 연기를 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
신구와 번갈아가며 맹인을 연기하는 배우는 성지루다. 장진 감독은 프로그램북에서 전한 인사말을 통해 "신구 선생님과 더블 캐스팅이라는 게 심적으로 얼마나 부담이고 힘든지 안다"며 성지루를 향해 각별한 감사를 전했다. 이외에도 장현성·김한결(교수 역), 정영주·장영남(밀수 역), 최영준·주종혁(건달 역), 김슬기·금새록(은행원 역), 조달환·안두호(이외 배역)가 출연한다. 공연은 6월 7일까지 NOL 서경스퀘어 스콘 1관에서 계속된다.
▲연극 <불란서 금고> 공연 사진장차, 파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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