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은 야생동물, 주인공은 공생동물, 희생자는 반려동물?

[김성호의 씨네만세 1302] <펫 트레인>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가 있다. 기차에 든 승객들이 알지 못하는 새, 기차의 모든 기관이 정체불명의 악당에게 장악 당한다. 강력범죄를 저지르고 출소한 한스란 이가 시스템을 해킹해 원격으로 기차를 조종하게 된 것. 그 음모로 기차는 멈추지 않고 내달린다. 그야말로 폭주기관차다. 빠르게 내달리면 추락하고 말 불안한 다리와 절벽에 막힌 막다른 철로, 심지어 새로 개발 중인 도시에 짓고 있는 미완의 종착역까지, 기차가 마주한 위협이 한둘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큰 사고가 일어날 게 불보듯 확실하다.

뉴스는 실황을 생중계하는 데 여념이 없다. 헬리콥터까지 동원한 어느 방송국 중계팀은 기차 가까이 날아들어 상황을 시청자 앞에 생생히 펼쳐낸다. 그를 통해 확인되는 건 열차 안 승객들이 힘을 모아 열차를 장악한 악당들에 대응하는 모습이다. 과연 이들은 폭주하는 열차를 멈춰세울 수 있을까.

여기까지가 신작 애니메이션 <펫 트레인>의 기본적인 얼개다. 내달리는 버스와 그 안에 탄 승객들의 이야기 <스피드>, 폭탄테러의 위협을 받고 있는 기차에 탑승해 용의자를 찾아야 하는 <소스 코드>, 흉악범들에게 장악된 비행기에서 벌어진 이야기 <콘에어> 등 비슷한 이야기가 여럿이다. 달리는 탈 것과 시시각각 닥쳐오는 위협, 그에 대응하는 영웅적인 이들의 활약이 장소며 탈 것, 약간의 설정만 바꾸어 입을 뿐 대동소이하다 해도 좋겠다.

펫 트레인 스틸컷
펫 트레인스틸컷스튜디오 디에이치엘

반려동물 구하는 공생동물의 대활약

<펫 트레인>은 장 크리스티앙 타시와 브누아 다피스가 공동 연출한 프랑스 애니메이션이다. 제목에 들어간 '펫 pet'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영화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다. 동물들이다. 그것도 펫, 그러니까 인간이 사육하는 반려견과 반려묘 같은 집 동물들이다.

그러니까 앞의 설정은 이렇게 바뀐다. 반려견, 반려묘, 어항 속 물고기와 새장 속 앵무새까지, 그야말로 온갖 동물이 탄 기차가 철로 위를 내달린다. 제각기 주인들이 맡긴 동물들이 우리에 든 채 동물칸에 실린 것이다. 승무원들의 보살핌을 받아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하리란 기대는 영화 시작부터 완전히 깨어진다. 열차는 납치되고 탑승한 모두가 죽음의 위기를 맞이한다. 살아남기 위해 동물들은 힘을 합친다. 열차를 납치한 악당의 저지를 뚫고 조종실로 건너가 브레이크 레버를 당기는 것이다. 이들이 과연 해낼 수가 있을까. 그 긴박함과 진지함이 앞서 언급한 여느 장르 액션물 못지않다.

주역은 자칭 팔콘이라 불리는 너구리다. 프랑스에선 제목이 'Falcon Express'라 붙었을 만큼 이 녀석의 역할이 지대하다. 분명히 너구리인데 어째서 이름이 팔콘일까. 팔콘은 새중에서도 강하고 빠르기로 유명한 매를 칭하는 말이 아닌가 말이다. 그것이 이 영화 <펫 트레인>의 주제의식과도 통한다. 비둘기에게 길러진 너구리가 스스로를 팔콘이라 부르며 제 출신을 부정하던 초기의 모습이 영화의 마지막에선 스스로를 긍정하며 끝나는 때문. 무튼 너구리 팔콘은 기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 이를테면 경찰견 렉스를 비롯해 일단의 동물들과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할 책무를 갖는다.

펫 트레인 스틸컷
펫 트레인스틸컷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악당은 야생동물... 이게 맞나?

팔콘은 너구리다. 마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로켓 라쿤'이라거나 <보노보노>의 '너부리' 같은 캐릭터는 생김만 비슷할 뿐이지 너구리와 먼 친척은커녕 남이나 진배없는 라쿤이란 점에서 팔콘은 흔치 않은 오리지널 너구리다.

영화 속 동물들, 특히 기차 안 동물들은 대부분 주인이 있다. 주인이 제가 기르는 동물들을 기차에 태웠다가 사고를 당하게 된 것이다. 다만 팔콘만이 기차에 실린 음식을 탐내어 몰래 탑승했다. 기차에 탄 동물들은 경찰견과 개, 고양이, 열대어, 뱀, 토끼 등등 그야말로 다양하지만 인간이 실내에서 기르고 먹이를 준다는 점에선 대동소이하다. 살아가는 방식에서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란 뜻이다.

팔콘은 바로 여기서부터 다른 존재다. 기차를 위협하는 범인 한스가 그러하듯, 팔콘 또한 인간의 손을 타지 않고 살아왔다. 거리에 어미 없이 버려져 있는 팔콘을 비둘기가 거두어 키웠고, 거리를 전전하는 쥐들이 그의 이웃이며 동무가 되어주었다. 악당인 한스는 악명 높은 벌꿀오소리로,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공격적 기질로 동물원이 아니라면 자연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 자연이란 공간이 대체로 사라지는 추세이니, 한스가 설 자리는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요컨대 팔콘은 인간이 만든 세상에서 돌봄 받지 못하는 동물을, 한스는 인간에게 살 자리가 밀려나는 야생동물의 대표자다.

펫 트레인 스틸컷
펫 트레인스틸컷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선과 악을 구분하는 나태한 시각을 넘어야

<펫 트레인>은 내적으로는 선한 동물들이 영웅적 야성을 간직한 팔콘의 도움을 받아 악당을 물리치는 권선징악의 구조를 가졌다. 그러나 이를 자세히 뜯어보면 길들여진 반려동물이 인간 생활권에서 살아가는 시난트로프(Synanthrope), 소위 공생동물의 도움을 받아 야생동물의 위협으로부터 버텨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만히 세상에 살아가는 동물들의 생존형태를 떠올려보자. 생존 형태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갈라진다. 인간의 돌봄을 받는 건 두 종류다. 반려동물과 가축이다. 돌봄을 받지 못하는 두 종류는 인간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공생동물과 아직 파괴되지 않은 자연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로 갈린다. 영화 속엔 이 넷 중 셋이 등장한다. 반려동물은 선으로, 공생동물은 악과 선을 모두 지닌 존재로, 야생동물은 악으로 그려진다. 구도를 보자면 가축을 등장시키지 않은 이유가 무언지는 짐작할 만하다.

현실은 영화와는 다르다. 두수로 따져보자면 실재하는 동물(포유류, 조류 기준) 가운데 가장 많은 건 역시 가축이다. 여러 연구는 가축과 실험용 동물이 전체 동물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은 단연 공생동물, 그러니까 쥐나 비둘기, 참새, 까치, 길고양이 따위다. 이중 쥐의 개체수가 압도적이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지역에 사는 야생동물은 넉넉잡아 5% 내외로 추정된다.

반려동물은 그보다도 더 적다. 인간의 관점을 벗어나 보자면 동물에게 가장 큰 위협이 무엇인지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가. 영화 속 인간에 상당한 신뢰를 보내는 반려동물의 모습은 오로지 가축이 없는 상황에서만 아름답다. 가축의 존재를 아는 이에게 이 영화는 위선적일 밖에 없다.

펫 트레인 포스터
펫 트레인포스터스튜디오 디에이치엘

더 고려했어야 마땅하다

<펫 트레인>은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서 달라지는 캐릭터, 주인공 팔콘의 성장드라마다. 그는 비둘기에게 길러지고도 제가 매에게 길러졌다 말하고 다녔던 허풍선이다. 그러나 끝내 제 과거를 긍정하고 현실을 살아간다.

바로 이 지점에서 <펫 트레인>은 보다 고민했어야 했다. 야생동물을 악당으로, 공생동물을 선과 악이 혼재한 변화하는 캐릭터로 설정하며, 반려동물을 선하게만 묘사하는 것은 작품이 추구하는 진실의 긍정이란 결론과 모순되는 때문이다. 전체관람가 애니메이션이라 해도 이와 같은 선택적 삭제가 용납되는 건 아니다. 도리어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의 무의식에 강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특정 동물을 선과 악을 표상하는 캐릭터로 배치하는 데 더 큰 주의를 기울여야 마땅하다.

뱀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으려 하는 등 부분적이나마 고민과 고려가 있었던 영화다. 그렇기에 나는 더 큰 관점에서 고정관념과 편견을 답습하는 선택이 아쉽다고 느낀다. 적어도 한 번은 스스로 물어보았어야 마땅하다. 이 기차에 가축이 타고 있었다면, 일생 임신만 해야 하는 젖소나 쓸개에 빨대 꼽힌 반달곰이나 비좁은 철창에 갇힌 닭 같은 녀석들이 과연 어느 편에 섰을지를 말이다. 탁월한 영화는 감추지 않는다. 왜곡하지도 않는다. 자연스레 진실을 직시하도록 한다. <펫 트레인>은 그 갈림길 위에서 못난 길을 택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펫트레인 스튜디오디에이치엘 장크리스티앙타시 브누아다피스 김성호의씨네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