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장의 시간들> 스틸컷
티캐스트
-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펼친 만큼 완성된 작품을 본 소감은.
이: "스스로 저를 기록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데 <침팬지>는 기록의 일환이었다. 진짜 침팬지와 책을 본 것, 동물원 게시판에 글을 남긴 일, 영화를 보러 극장에 다녔던 기억, 극장이란 어둠 들어갔다 나왔던 기분을 침팬지를 볼 때마다 떠올리게 되었다."
윤 : "<자유롭게>를 보면서 덜 간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디렉션 하지 않아야 좋은 장면이 나온다. 촬영 중에 갑자기 나무 열매가 떨어지는 우연이나, 어린이 배우에게 현장에 엄마가 따라오는 게 좋냐고 물었을 때, (아이들이) 다 같이 손사래 치면서 싫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정말 싫어서 나오는 즉흥적인 것들,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자연스럽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여전히 제가 직접 등장하지 말걸... 후회한다. 제목은 <자연스럽게>라고 해놓고 제일 어색하다. (웃음)
시나리오에 간략한 상황만 적었다. 대사는 없고 신마다 몇 줄로 그 신에 필요한 걸 기술한 정도였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골목에서 놀고 있다' 정도고 제가 테이크를 반복하는 게 신의 핵심이라서,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계단에서 내려오는 장면이나 회의하는 장면을 길게 찍고 편집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갔다."
- 영화는 시간을 기록하는 매체다. 기록이란 각자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 : "단순하다. 세상에 저의 유전자로 살아가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게 영화이지 싶다. 영화 보는 문화를 기록하고 싶은 취지도 있다. 시간이 더 지나 먼 훗날, 누군가에게 '저게 뭐지', '진짜 저런 일이 있었나' 같은 존재감을 전하는 일이다. 국가의 랜드마크는 기록물을 살펴보면 되지만 삶의 모습과 공간은 영화를 봐야 할 수 있기 때문에 기록이 의미 있다. 70-80년대 고증을 찾으려면 한국 영화를 보면 되는 식이다."
윤 : "제 영화를 잘 안 보는 편이다. 어쩌다가 봐야 할 때가 있는데 아카이브처럼 느껴진다. 15년 동안 같은 동네의 변화를 기록했다는 의미도 있다. 지금은 없어진 장소, 남아 있는 장소가 사료가 된다. 인위적으로 만든 장면인데도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경험을 준다. 이게 영화의 힘이고 성질이라고 생각했다."
-기록의 일환으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영사기사의 하루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은 건가.
이 : "<침팬지>에 영사기 불빛이 꼭 들어가야만 했는데 낮에는 영업 중이라 밤에만 찍어야 했고, 홍성희 영사실장님이 덕분에 탄생한 장면이다. 영화는 픽션을 담는 매체인데 영사실 기사는 진짜 존재하는 사람이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묘했던 게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총괄 PD님이 세 단편의 묶음의 시작과 끝에 책처럼 영화를 넣어주길 바라셨는데 젊은 세대가 영사 기술을 배우는 상황을 넣어 영사 기사님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미쳤다.
대본은 따로 준비하지 않고 <파반느>에서 아이슬란드 촬영 때 썼던 카메라로 이틀 동안 종일 상주하면서 촬영했다. 씨네큐브가 필름과 디지털 영사 둘 다 되는 영화관이라 디지털 영사 시스템을 기록하고 싶었다. 막상 <시네마 천국>처럼 바쁘게 뭘 하지는 않으시더라. (웃음) 두 개 관을 왔다 갔다 하면서 체크하시던데 두 손을 모으고 지켜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디지털 영사 시스템도 사고 날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두고 계신 것 같았다. 혹시라도 일이 생기면 바로 조치를 취할 수 있을 분이셨다."
- <삼진그룹 토익반> <파반느> <침팬지>까지 일관된 삼각구도다. 고도, 제제, 모모의 작명 센스와 <국외자들>의 춤을 오마주한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 : "<파반느>를 오래 준비해서 그런 것 같다. (이 감독은 <파반느>를 2017년부터 준비했다. - 기자 말) 세 친구의 이름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왔다. 다른 인물은 평범한 이름을 지었는데 균형이 안 맞아서 바꾸게 되었다. 이야기가 아니라 정보만 남았다는 사사 실종의 맥락과 잘 맞는 이름을 생각하다가 두 이름이 떠올랐다.
모모는 <모모>에서처럼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고,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제는 실제로 세상을 떠난 제 친구가 군복을 입고 나무에 기대고 있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편집될 뻔했던 댄스 장면은 순수하게 제가 보고 싶은 걸 찍고 싶었던 의도였다. 세 영화광의 풍경을 기호적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원슈타인은 리듬감이 있어서인지 곧잘 따라 해서 영상으로 보내줬고, 이수경은 원 데이 클래스로 춤을 배워 왔더라. 홍사빈은 막 제대했을 때라 둘 사이에서 눈치껏 췄다."
- <침팬지>에서 2025년 고도는 헌책방에서 읽은 침팬지의 설명과 관련한 영화를 만들었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이후 다시 헌책방을 찾아 그 책을 읽으며 삭제된 부분을 발견한다. 실제 겪은 기이한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고 들었다.
이 : "영화 속에 나오는 모든 일이 실화다. 좋게 해석하면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현실과 영화를 구분 못 했거나, 정보만 있었는데 혼자 상상을 했던 거다. 실제 침팬지를 보러 갔었고 사육사님에게 폴란드에서 수입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하 어둠 속에서 침팬지를 봤다. 이후에 동물원 게시판에 글을 남긴 것도 진짜다. (웃음)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이상한 일이지만 기록하고 싶었다. 존재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없어진 것, 그게 영화이거나 영화를 함께 보던 친구, 시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침팬지의 등장이 CG가 아닌 실제 배우 연기로 만들어진 장면이라고 들었다.
이 : "구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의 영화를 보면서 떠올렸다. 다만 우스워 보이면 안 될 것 같아 조악한 제품을 분장 감독님의 섬세한 터치로 덧댔다. 동물 연기는 단편 <스포일리아>에 출연한 장요훈이다. 동물 연기를 잘하는 배우다. 사족보행이 되려면 보조기가 필요하다고 요청해서 탈 안에 보조기를 끼고 직접 연기했다."
함께하는 행보
▲영화 <극장의 시간들> 스틸컷
태캐스트
- 한국예술종합학교 (한예종) 영상원 30주년 기념작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에도 참여했다.
이 : "같은 시기에 <꿩> <극장의 시간들> 프롤로그 에필로그까지 몰아서 찍었다.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윤 감독님이 바로 영업하시더라. (웃음) <침팬지> 때는 예술을 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면 반대로 <꿩>은 다들 진지한 톤을 내놓겠지 싶어서 코미디로 승부 봤다. 저는 코미디에 소질이 없는 것 같다. (웃음)"
윤 : "<만감이 교차한다>는 영화 작업의 본질을 생각할 때 영향을 미쳤던 영화다. 한 장면을 위해서 철학적인 고민을 담고 (몇 테이크를) 반복하는 불편한 매체다. 스태프 전원이 5초짜리 장면 때문에 고민하고 있으면 감정이 복잡해진다. 하지만 고민한 찰나가 관객에게 전달될 때가 있다. 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더불어' 빠르고 편하고 쉽고 편리한 게 좋은 건가? 내려갈 산을 왜 오르지? 힘든 데 운동은 왜 할까?'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이 영화뿐만 아니라 일상에도 떠올려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오히려 불편하고 느린 것을 선택하기도 하던데, 그 과정을 통해 얻어 갈 것을 떠올리는 작업이었다."
- <파반느>의 미정, <자연스럽게>의 감독으로 배우 고아성이 모두 나온다.
이 : <침팬지>는 사실 영화로 만들 생각이 없다가 모임에서 누가 재미있겠다는 이야기를 해줘서 세상에 나온 거다. 그때 아성씨가 스태프의 형식으로라도 돕고 싶다고 했는데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었다. 사실 <파반느>의 미정으로 조금 더 남아주길 바랐던 의도였다. 얼마 후에 '승부다'라면서 (아성씨에게) 연락이 왔고, 윤 감독님 작품에 참여한다며 자극했다. (웃음)"
윤 : "용감한 배우라고 생각했고 늘 팬이었는데 2019년 미장센 단편 영화제에서 심사 위원으로 만나 친해졌다. 대본이 따로 없는 헐거운 영화라 특성상 참여해 줄 것 같아서 이때다 싶어 들이댔다. 아역 배우 출신이라 감독이 모르는 내밀한 부분도 알 거란 믿음이 있었다. 마침 시간이 된다고 해서 성사되었는데 실제로는 스태프처럼 참여해 주었다."
- <침팬지>에서 나이 든 고도가 악평을 읽는 장면이 등장한다. 실제 악평이 창작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
이 : "예전에는 영화를 본다는 자체가 '감상'이었다면, 요즘은 '평가'와 '효율'을 따지더라. 얼마나 시간 아까운지, 취향이라면 보라며 가이드를 정해주는 문화가 생겨난 것 같다. <탈주> 평 중에 '이 영화는 모든 면에서 실패다'란 글을 봤다. (웃음) 이에 대한 복수는 전혀 아니다. 악평은 찾아보려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많다. 악평이 창작의 자극이 될 때가 있는데 저는 역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윤 : "예전에 악평 보다가 탈진해서 포기했던 시기가 있었다. 요즘은 영화를 쉽게 볼 수 있고 익명으로 글도 쓸 수 있는 창구가 많아졌다. 영화가 별점의 형태(점수)가 되면서 한쪽으로만 치우는 현상이 생긴 것 같다. 모든 평을 읽는 것이 창작에 도움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 영화는 머릿속의 것들이 실패하는 일이다. 믹싱이든 편집이든 항상 수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본래의 목적이 달라지고 오독되는 부분도 생긴다. 여러 기준과 요구사항을 다 맞추기도 어렵다. 그래서 악평을 볼 때마다 헷갈리지만 그때마다 가치관을 잃지 않고 가장 가혹하고 정확하게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
- <극장의 시간들>이 개봉 후 관객에게 어떤 시간으로 남길 바라나.
이 : "부디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별개로 바람도 있다. 거리를 방황하다가 우연히 극장에 들어와서 이 영화를 보고 영감을 얻거나 잘 수도 있지만 훗날 이 영화를 본 게 기억나는 관객이 딱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윤 : "<극장의 시간들>은 팬, 창작자, 관객, 영화와 관계없는 사람들이 한 데 묶인 영화다. 태어나서 영화를 한 번도 안 본 사람이나 극장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 사소한 연결 고리만 있어도 각자의 경험으로 엮일 수 있다. 모두의 마음에 들기보다 적극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는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영화 <극장의 시간들> 포스터티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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