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거칠게 제분한 밀가루를 반죽해 만든 면 요리 파스타는 피자, 리소토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요리 중 하나다. 실제로 파스타는 면의 종류와 소스, 심지어 주방장 이름, 지역 명 등에 따라 수십 가지의 종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과거 국내에서 파스타라고 하면 길고 가느다란 원기둥 형태의 파스타인 '스파게티'와 동의어로 쓰였고 라자냐와 푸실리, 마카로니 등은 파스타로 인정(?) 받지 못했다.
양질의 음식이 격식을 갖추어 제공되는 비싼 식당에서 이뤄지는 식사 또는 그런 식당을 의미하는 '파인 다이닝'도 2000년대까지는 그저 '고급 레스토랑'으로 불릴 뿐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진 않았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쿡방이 인기를 끌고 2020년대 들어 <흑백요리사1,2>가 크게 사랑받으면서 현재는 양식은 물론이고 한식과 중식, 일식 등 다양한 메뉴를 판매하는 파인 다이닝 식당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처럼 2000년대까지 한국에서는 스파게티가 파스타의 한 종류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파인 다이닝'이라는 개념도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0년 MBC에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만든 이 드라마 덕분에 파인 다이닝 식당과 파스타라는 메뉴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고 이선균과 공효진이 주연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MBC 월화드라마 <파스타>였다.
▲16부작으로 기획됐던 <파스타>는 높은 인기 속에 4회 연장되며 20부작으로 종영됐다.
<파스타> 홈페이지
영원히 신작을 볼 수 없게 된 배우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다 배우의 꿈을 안고 학교를 중퇴해 다시 한국종합예술학교에 들어가 연기를 전공한 이선균은 2001년 시트콤 <연인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이선균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부드러운 이미지로 주목 받았지만 본격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전까지만 해도 <알포인트>의 박재영 하사와 <손님은 왕이다>의 '해결사' 이장길처럼 색깔이 뚜렷한 강렬한 배역도 많이 맡았다.
2007년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환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간적인 의사 최도영을 연기한 이선균은 같은 해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음악감독 최한성 역을 맡으며 일약 스타 배우로 떠올랐다. 특히 <커피프린스 1호점> OST로 수록된 노래 <바다여행>을 직접 부르며 여성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선균은 2008년 <달콤한 나의 도시>, 2009년 <트리플>에서도 비슷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렇게 '부드러운 에겐남'으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듯 했던 이선균은 2010년 <파스타>에서 괴팍한 성격을 가진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라페스타의 헤드 셰프 최현욱을 연기했다. 이선균은 <파스타>에서 평소 이미지와 다른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 '버럭선균'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고 공효진과 뛰어난 연기 호흡으로 그 해 MBC 연기대상에서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하며 주연 배우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이선균은 2012년 영화 <화차>로 243만,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459만 관객을 동원하며 영화에서도 흥행작들을 만들었고 2014년 <끝까지 간다>를 통해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이선균은 2010년대 중반 이후 몇 편의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지만 2018년 아이유와 호흡을 맞춘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다시 한번 인생 캐릭터를 경신하며 시청자들의 극찬을 받았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통해 '천만 배우'에 등극한 이선균은 2020년대에도 애플TV 드라마 <Dr. 브레인>과 JTBC의 <법쩐>, 영화 <킹메이커> <잠> 등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지만 2023년 10월 마약 의혹에 연루됐다. 결국 이선균은 2023년 12월 향년 4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봉콜레 하나", "Yes, Chef" 유행어로 급부상
▲이선균은 <파스타>를 통해 부드러운 이미지를 깨고 카리스마 있는 셰프의 연기를 선보였다.
MBC 화면 캡처
<파스타>는 2005년 <환생-NEXT>를 공동 집필하고 <미스터 굿바이>와 <대한민국 변호사>의 각본을 썼던 서숙향 작가가 세 번째로 선보인 단독 각본 드라마였다. 지금까지 집필한 드라마들이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시청률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던 서숙향 작가의 <파스타> 도 초반에는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더 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파스타>는 서숙향 작가의 대표작이 됐다.
2010년 1월 4일 첫 방송을 시작한 <파스타>는 겨울방학 시즌을 겨냥해 KBS에서 선보인 <공부의 신>에 밀려 초반 시청률이 썩 좋지 못했다. 하지만 <공부의 신>이 높은 시청률과 별개로 크고 작은 비판에 시달렸던 것과 달리 <파스타>는 그 흔한 막장 요소 없이 드라마를 유쾌하게 끌고 갔고 <공부의 신> 종영 후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유지하며 21.2%의 최고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
드라마 <파스타>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과 다양한 재료, 셰프의 능력에 따라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는 파스타의 매력을 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서유경(공효진 분)이 남다른 애착을 가진 음식이었던 알리오 올리오는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파스타를 파는 식당들의 인기 메뉴로 떠올랐다. 여기에 "봉골레 하나"와 최현욱의 지시에 일사분란 하게 대답하는 "예스 쉐프 Yes Chef"와 같은 대사 역시 유행어가 됐다.
최현욱이 오기 전부터 라페스타의 '고인 물'이었던 국내파 요리사들은 최현욱이 헤드 셰프가 된 후 이태리 유학파 3명이 새로 합류하면서 뒷전으로 밀려난다. 유학 경험이 없는 국내파 요리사들은 최현욱이 직접 스카우트한 이태리파에게 경쟁심과 열등감을 느낀다. 하지만 드라마 후반부 국내파와 이태리파가 '뉴셰프 요리 경연대회'를 함께 준비하면서 이들은 모두 '라페스타'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된다.
사실 최현욱처럼 자존심 강한 헤드 셰프가 있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은 메인 메뉴는 물론이고 소스나 사이드 디시 하나도 세심하게 신경 쓴다. 실제 드라마 안에서 최현욱도 서유경이 만든 MSG가 잔뜩 들어간 피클을 못 쓰게 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라페스타 주방에 식품 기업 O사의 시판 토마토 소스가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상 까다로운 최현욱도 협찬사의 PPL까지 시비를 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공효진이 '공블리'로 불리기 시작한 드라마
▲<파스타>의 서유경은 공효진에게 '공블리'라는 별명을 안겨준 소중한 작품이다.MBC 화면 캡처
20대 초반부터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누구보다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자신을 대표하는 확실한 캐릭터가 없었던 공효진은 <파스타>의 서유경을 통해 시청자들로부터 '공블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파스타>를 통해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맞은 공효진은 2011년 <최고의 사랑>, 2013년 <주군의 태양>, 2016년 <질투의 화신>, 2019년 <동백꽃 필 무렵>을 연속으로 히트 시키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6년 미스코리아 진 출신으로 2009년 <파트너>를 통해 연기를 시작한 이하늬는 <파스타>에서 최현욱의 전 여자 친구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이탈리안 여성 셰프로 불리는 오세영을 연기했다. 세영은 이탈리아 유학 시절 연인이자 라이벌인 최현욱의 요리를 망쳐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지만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자신의 잘못을 세상에 알리고 자신의 레시피를 스승에게 인정받으면서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클래지콰이 프로젝트의 객원보컬 출신으로 <내 이름은 김삼순>의 OST <쉬 이즈 She Is>에서 도입부 "숨겨왔던 나의~"를 부르며 유명해진 알렉스는 <파스타>에서 라페스타의 사장 김산 역을 맡았다. 김산은 서유경을 남몰래 챙기며 러브 라인의 긴장감을 불어넣는 중요한 서브남주 캐릭터였지만 알렉스의 무르익지 않은 연기와 함께 캐릭터의 개연성도 깨지면서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존재감이 작아졌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상, 영화 <어쩔 수가 없다>로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연기장인' 이성민은 아직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2010년 <파스타>에서 라페스타의 월급 사장에서 홀 막내로 좌천된 설준석을 연기했다. 설준석은 악역이 거의 없는 <파스타>에서 요리사 간 월급 차등을 정하고 사사건건 서유경을 괴롭히는 등 빌런 역할을 했던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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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 다이닝·알리오
올리오'의 유명세, 이 드라마에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