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영 "28년 만의 첫 장르물, 진심 통했나 싶어 안도감"

[인터뷰] ENA 드라마<아너: 그녀들의 법정> 이나영 배우

ENA 드라마<아너: 그녀들의 법정>은 불법 성매매 어플 '커넥트인'을 둘러싼 거대한 권력 카르텔과 맞서 싸워온 변호사 3인방의 치열한 진실 추적과 20년을 이어온 뭉클한 연대가 폭발하는 드라마다. 스웨덴 드라마 <Heder>를 원작으로 하며 피해자를 향한 연대와 위로, 회복의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로펌 L&J는 Listen & Join의 약자로 듣고 함께 한다는 뜻이다. 홀로 고통받는 성범죄 피해자를 위한 전문 로펌으로 상처를 안고도 끝까지 살아남은 인간의 존엄과 명예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극중 이나영이 맡은 윤라영 변호사는 L&J의 공식적인 메신저다. 뉴스데스크의 게스트로 나가 멋지고 당당하게 의견을 말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삼중 잠금장치로 단단히 보호하고 무너지는 이중적인 인물이다. 때문에 첫 피해자였던 조유정(박세현)에게 "네가 왜 죽어. 죽느니 죽여, 그런 마음으로 살아"라는 말이 본인에게 고하는 일침처럼 들리기도 한다.

드라마 종영 후 다음 날인 11일 종로구의 카페에서 이나영과 만났다. 그는 "법정 드라마라 전문 용어가 많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감정 신이 많아 힘들었다"고 말하며 첫 장르물, 첫 전문직 캐릭터를 끝낸 소회를 털어 왔다. 신비주의와 엉뚱한 이미지로 대중 앞에 알려졌지만 스스로를 '평범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며 멋쩍게 웃었다. 현장의 활력과 즉흥적인 연기를 추구하는 배우답게 앞으로의 행보 또한 기대되는 바이다.

다음은 그와 나눈 작품 이야기를 일문일답.

28년 만의 첫 장르물, 전문직

 이나영 배우
이나영 배우이든나인

-지난 10일 12부작이 끝났다. 종영 소감은?
"유난히 슬펐던 드라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만 해도 대사만 잘 외우면 되겠거니 싶었는데, 감정 신이 전반에 포진해 있어서 준비를 많이 해야 했다. 촬영 끝난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도 여전히 그때가 생생하다. 마지막 회를 보면서도 당시 감정이 차올라서 힘들었다. 현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함께 교감도 쌓고 신나게 지내다가도 문득, 슬픈 감정이 툭하고 올라왔다.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게 마음에 들어와서 그런가 싶다. 본 방송을 이렇게나 많이 보나 놀랐다. 지인들이 계속 다음 이야기를 추론하면서 토론하고 스포 요청도 많았다. 촬영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 재미있었다. 진심이 통했나 싶어서 안도감도 들었다."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조금 더 일찍 제안이 왔다면 못 했을지도 모르겠다. 운명처럼 타이밍이 맞았다. 근래 10년 동안 여성 영화도 많이 나왔고 시청자들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를 만나면서 호기심이 동했을 것 같았다. 작품의 이야기를 받아들여 주시는 시청층이 생겼다는 것은 저에게 도전해 볼 기회였다. 이제 시청자의 마음도 열려 있는 것 같고, 피해자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시는 것 같아 뿌듯하다."

-라영은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셀럽 변호사다. 외적인 스타일링부터 변호사로서의 태도 등 캐릭터를 만들어 나간 과정이 궁금하다.
"첫 전문직 캐릭터다. '케이트 블란쳇', '제시카 차스타인' 연기를 분석하며 디테일한 전문직 분위기를 참고했다. 라영은 대외적인 메신저이다 보니 대중 앞에서 말하는 신이 많았다. 연기라고 처도 괜히 부끄럽고 떨렸다. 평범한 변호사가 아니라 사건을 쫓아가기도 해야 했는데 과거의 복합적인 서사가 쌓인 인물이라 어려웠다. 뉴스데스크 출연 장면이나 시연회 스피치 장면, 기자회견 장면이 있어서 톤 조절에 집중했다. 대사도 입에 잘 붙지 않아서 발성 트레이닝도 했다. 소르지르면서 말하면 발음이 뭉개지니 어떻게 단어를 표현할지 세세하게 공부했다. 처음으로 재킷도 입어봤는데, 세 친구 중 유일하게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캐릭터라 시청자의 보는 맛도 고려해서 스타일링도 신경 썼다."

-라영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20년 전 트라우마를 간직한 인물이다. 죽은 줄만 알았던 딸 한민서(전소영)과 마주하게 된 사연도 기구하다. 딸은 피해자이자 가해자기 때문에 복잡한 감정도 컸을 것 같다.
"저라도 비슷한 선택을 할 거다. 라영은 정의로움, 상처, 죄책감을 지닌 복합적인 인물이다. 엄마라면 딸의 허물을 어떻게든 감춰주려고 하겠지만, 라영이 꼭 변호사라서 죗값을 치르라고 설득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민서도 삶을 살아가야 하니 당연한 행동 같다. 민서가 더 이상 면회 오지 말라고 했을 때도 '못되게 굴어도 돼. 다음 주에도 여기 와 있을 게'라며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것도 비슷하다. 피해자들이 상처를 받았더라도 용기 있게 살아가길 옆에서 기다려 주는 태도다. 이 작품의 미덕도 비슷하다. 상처를 덮어두려고도 하거나, 일어나라고 강요하지 않고 용기 내서 살아가길 옆에서 그저 지켜주는 마음이다."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배우

-강신재(정은채), 황현진(이청아)과 우정을 연료로 나아가는 여성 연대를 펼쳤다. '20년 지기' 사이라는 연출을 위해 특별히 노력한 지점이 있다면.
"무거운 주제와 심리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 세 여성이 이끌어가는 이야기를 공감해 줄까 걱정스러웠다. 다 낯가림이 심해서 처음에는 어색했다.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감독님이 리드해 주어서 친밀감이 생겼다. 세 명 모두 튀는 사람 없이 비슷한 성격이라 잘 맞았다. 멋진 여성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는 허당들이다. (웃음) 점점 내적 친밀감이 자연스럽게 생겨서 애쓰지 않고 편한 분위기에서 촬영했다. 분위기는 멜로랑 비슷했다. 20년 지기 친구니까 가볍게 그런 척만 하면 안 돼서 제가 연극적인 리허설을 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우정을 탐구하고 싶어서 영화도 많이 봤다. '그레타 거윅'의 <메기스 플랜>, <프랜시스 하>, <미스트릭트 아메리카>를 보면서 친구 관계를 배웠다. 작품 안에서 부대끼고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없더라도 레퍼런스 삼았다."

-한국 사회를 뒤흔든 사건이 떠오르는 드라마였다. 작품이 주는 무게감과 메시지가 선명한데.
"시청자의 입장에서 여러 사건이 떠오를 수 있지만 감정적으로 접근하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무거운 드라마라 저도 조심스러운 접근 방식을 취했다. 1차원적이고 단면적인 접근을 지양했다. "

-작품을 통틀어 가장 어려웠던 장면이 있다면.
"8부에서 피해자라는 사실을 공표하는 장면이다. 과거 사건을 오픈하는 장면 이전까지는 감정을 숨겨야 했다. 받은 상처를 드러내고 책임감까지 더해지니 힘들었다. 처음에는 공포로 무너졌다. 죽음에 맞서는 용기가 필요한데 그걸 토해내는 감정이 어려웠다. 마지막에야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녹음하면서도 몇 번이고 울었다. 그 말이 첫 희생자에게 전하는 메시지이자,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피해자에게 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본인은 못했지만 당신은 이렇게 살아가라는 이야기 같았다."

-오랫동안 연기하며 배우로서 갖춰야 할 태도와 마음가짐이 생겼을 텐데 작품 선택 기준이 궁금하다.
"시나리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글이 좋으면 무조건 하게 된다. 독립단편 <신원 미상>도 그런 이유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여전히 연기가 어렵다. <박하경 여행기> 때도 멍 때리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제 성향이 그렇다. 미묘한 긴장감에 저를 던져 놓고 그걸 뛰어넘는 모순적인 마음을 계속 느끼고 싶은 것 같다. 날것의 연기를 하고 싶어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연기 공부도 계속한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와락 하고 감정을 쏟고 눈물이 흐르는 때, 많은 것을 배운다.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를 보면 부럽고 너무 좋다."

-영화로 영감받는 게 인상적이다. 최근에 인상적으로 본 영화가 무엇이었나. (웃음)
"연기 말고 정말 유일한 낙이 영화 관람이다. 영화를 통해 위안과 희열을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연기를 하는 것 같다. 윤가은 감독님이 시사회에 초대해 주셨는데 못 가서 <세계의 주인>을 부랴부랴 봤다.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엄청나게 울었다. 아마 작품적인 연대가 있어서 그랬는지 며칠 동안 멍했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접했다는 기분도 들었다. 한창 촬영 중반이었는데 연락드리니, 감독님이 '어려운 걸 하고 있구나'라고 응원해 주셨다. <세계의 주인>을 보고 나서 아픔 있는 인물을 표현하는 데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28년 동안 지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운 좋게 기회가 계속 왔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 거대한 꿈을 계획하기보다는 한발 한발 나아가는 거다. 성격상 올해 잘 보낼 생각만 하지, 내년까지 크게 보지 않아서 하루를 만족하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진심이 통하도록 하는 게 배우로서 해야 할 일 같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면서 다양하게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 이번 작품은 생소하고 어려웠던 것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또 다른 가지를 뻗은 것 같다. (웃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더무비에도 실립니다.
이나영 아너그녀들의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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