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언젠가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적어도 인간과 같은 수준으로 해낼 수 있으리라고 평가되는 AI가 인류 역사 전면에 등장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AI가 기존 인간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리란 건 기정사실이다. 노동형태 또한 상상불가한 수준으로 뒤바꾸어 놓을 전망이 높다. 세계경제포럼(WWE)을 비롯한 각 단체의 연구는 향후 몇 년 간 1억 개 내외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 말한다. 물론 생겨나는 일자리도 많다. 문제는 일자리를 잃은 이가 생겨난 일자리를 차지할 역량을 갖지 못한다는 점에 있겠다.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자리 소멸은 이미 당면한 현실이다. 한국서도 연간 2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AI로 인해 신입 채용을 멈춘 회사 이야기는 어디서나 흔히 들려온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속도를 생각하면 지난 시대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일어난 러다이트 운동(영국의 산업혁명 당시 도입된 방직기 등 기계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자,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하며 반발한 사회운동)이 어째서 현실 가운데 일어나지 않는가 신기할 정도다.
물론 한국 현대사에서도 혁명을 꿈꾼 이들이 있었다.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커다란 변화와 마주했던 20여 년 전, 그러니까 세기말, 세기초의 이야기다. 한국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일으킨 1996년부터 있었던 IMF 사태라 불리는 금융위기는 한국 노동의 체질을 완전히 전과 다른 무엇으로 만들었다. 그중 가장 대표되는 것이 노동 유연화, 그러니까 고용과 노동의 형태를 세계적 표준에 맞춘 변혁이었다. 혹자는 그를 발전을 위한 불가결한 선택이었다 말하지만, 반대편에선 그것이 개악이었다 주장한다. 영화 <오, 발렌타인>은 후자의 이야기다.
▲오, 발렌타인스틸컷
시네마 달
혁명을 꿈꿨다, 그러나 실패했다
홍진훤 감독의 신작 다큐멘터리 <오, 발렌타인>(2026년 3월 11일 개봉)은 두 사람의 입을 통해 한국 블루칼라 노동운동의 지난 시기를 소환한다. 한 명은 우창수, 다른 한 명은 조성웅. 현대중공업 노래패 강사로 활동한 민중가수 우창수는 현재 경상남도 창녕군 시골마을로 귀촌해 노래를 부르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초대 지회장이었던 조성웅은 강원도 화천에서 시인으로 살아간다. 이들을 잇는 것은 2004년 2월 14일의 사건, 그러니까 영화의 제목으로 이어지는 그 해 밸런타인데이의 일이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였던 박일수, 그가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여 죽은 사건이 영화 <오, 발렌타인>의 시작이 된다.
"하청 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외마디 외침은 박일수의 유언이 됐다. 전태일이 죽고 34년이나 흘렀는데 박일수는 어째서 또 노동을 이야기하며 제 몸을 불사른 걸까. 영화는 생전 박일수와 관계를 가졌던 조성웅, 또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우창수를 등장시켜 고인이 싸웠고 마침내 제 목숨까지 바쳐 맞서려 했던 대상을 겨냥한다. 그는 영화를 보는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 혹은 외면하는 한국 노동의 현실이다.
비정규직이 한때는 신조어였단 말을 지난 세기를 기억하는 이는 누구나 알고 있을 테다. 평생직장이란 말이 상식이고, 비정규직이란 말이 낯설던 때가 한국엔 분명히 있었다. IMF를 앞세운 미국의 요구에 따라 한국 정부가 1996년부터 경제구조를 개혁하려 했단 건 이제는 역사학의 정설이 된 이야기다.
▲오, 발렌타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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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않았던 비정규직과 달라진 세상
그로부터 노동 영역에서 새로 생겨난 고용형태가 바로 비정규직이다. 고용과 해고가 완전히 자유로운 미국과 같은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정규직과 차등화 된 비정규 고용형태를 신설하여 경영적 판단 등에 따라 자유로이 해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에 따라 노동가치가 사라진 뒤 억지로 고용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부담도 없으므로 일자리 창출에도 효과가 있으리란 기대도 뒤따랐다.
문제라면 이 같은 선택이 기존 노동자의 이익을 상당히 침해한다는 점이었을 테다. 한 번 큰 기업에 고용되면 열심히 일만 하면 평생이 보장됐던 이들에게 언제고 해고될 수 있다는 부담이 생겨난 것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그 같은 불안이 확산됐고, 경제위기 등으로 실제로 해고가 잇따르며 많은 노동자가 전에 없던 피해를 입기도 했다.
심지어 입법 당시의 의도와 달리 비정규직을 정규직과 같거나 더 위험하고 고된 노동에 투입하면서도 보상은 덜 하는 편법이 공공연하게 자리 잡은 건 심각한 문제였다. 이분화 된 고용체계에 따라 정규직으로 입사한 이들과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이들이 실제 노동이 아닌 고용형태에 따라 차등 대우를 받는 현상이 일반화되며 신 신분제처럼 작용키도 했다.
▲오, 발렌타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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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 뒤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영화는 1998년 있었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에서 노동계 대표자들이 노동자들의 이익에 반해 정리해고와 파견법을 도입한 당시 선택을 출연자들의 입을 빌려 비판한다.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합의의 결과를 악용한 사업자들이 하청업체 파견노동자들에게 열악한 처우로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는 일이 곳곳에서 잇따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진 노동자들은 더는 뭉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노조는 점점 고립됐고 귀족노조라는 둥 공공연한 사회적 비난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보적 정권이 되리라 기대됐던 노무현 정권의 친 사업자 중심 정책들은 당시 노동계 입장에선 매우 가혹한 것이었던가 보다. 2004년 박일수의 분신이 그 와중에 있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영화는 노조의 투쟁을 거듭 혁명이라 칭한다. 혁명은 거꾸러졌고 가장 열성적이었던 투사는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다. 요컨대 영화는 혁명이 패배로 끝난 뒤 패잔병으로 적들이 이룩한 세상에서 생을 이어가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 시로써, 또 노래를 부여잡고 이들이 살아가는 모양은 여전히 이 사회의 주된 삶의 방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듯 보이지만, 과거의 가열찼던 투쟁과도 상당히 떨어져 있다. 텃밭을 꾸리는 것이 혁명과 같다는 우창수의 이야기가 그리 와 닿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이들이 여전히 제 나름으로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알 수 있다.
▲오, 발렌타인포스터시네마 달
또 다른 변혁 앞에 서서
홍진훤 감독은 화면을 분할해 이들이 터 잡고 살아가는 세상의 모양을 이들의 현재 모습과 함께 한 화면에 담아낸다. 통상적이지 않은 낯선 연출이 보는 이의 사고를 건드리는 효과를 일으키기는 한다. 과거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도, 혁명이라 불렀던 노동운동의 이야기로도 영화는 깊이 파고들지 못한다. 아쉽다.
고인의 죽음에 대한 구체적 맥락은 물론, 등장하는 두 인물의 오늘에 대해서도 영화는 그 편린을 보이고 있을 뿐 정면에서 충실히 다루지 않는다. 그렇기에 노동계 바깥 다른 배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에 닿아 움직임을 이끌어내기에는 다소 약한 감동일 수 있겠다.
그러나 분명한 의미 한 가지는 있다. 달리 살아간 사람들이,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현실에 저항하려 들었던 이들이 있었음을 내보이는 것이 그렇다. 영화 속 지난 시대의 변혁보다 결코 작지 않은 변화를 우리는 지금 마주하고 있다. 이미 시작된 기술혁명과 그 여파는 인간이란 종 자체의, 문명 전체의 운명을 달리 이끌 수 있다. 지금 이 영화가 의미있게 와 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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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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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이 죽고 34년, 죽음을 택한 또 다른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