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트 밖 숨은 명곡의 재발견… 윤하가 증명한 좋은 리메이크

[리뷰] 윤하 첫 리메이크 앨범 <써브 캐릭터 원>

 윤하 '써브캐릭터 원' 표지
윤하 '써브캐릭터 원' 표지C9

LP와 CD 시대를 거쳐 스트리밍 중심으로 변화한 대중음악계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리메이크'다. 과거의 명곡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노래나 음반은 기본 이상의 인기를 보장하는 이른바 '투자 안정 상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김광석('다시 부르기'), YB(구 윤도현 밴드 시절 '한국 Rock 다시 부르기')의 1990-2000년대 걸작 음반이 탄생했고, 2010년대 이후 아이유('꽃갈피' 시리즈)처럼 누군가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반면 '양산형 발라드'라는 지적 속에 몇몇 가수들의 무의미한 리메이크 싱글이 범람하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잘 활용하면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되는 리메이크의 세계에 최근 한 음악인이 과감히 발을 내디뎠다. 그 주인공은 '사건의 지평선', '오르트구름' 이후 제2의 전성기를 구가 중인 싱어송라이터 윤하다. 지난 9일 공개된 첫 리메이크 음반 <써브캐릭터 원>을 통해 윤하는 기존의 문법과는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며 팬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후배 음악인들의 최신곡 리메이크
 윤하
윤하C9

일반적인 리메이크 음반이나 싱글은 과거의 음악을 재해석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올해로 한국 데뷔 20주년을 맞은 관록의 음악인 윤하는 자신보다 한참 뒤에 데뷔한 후배 창작인들의 최근 작품을 선택하는 독특한 결정을 내렸다.

선공개 곡 '계절범죄'(미로 원곡)을 시작으로 '써브 캐릭터'(위즈), 타이틀곡 '염라'(달의 하루), '스카이바운드 Skybound' (카디) 등 대중들에겐 낯설지만 마니아들에겐 절대적 지지를 얻고 있는 젊은 음악인들의 2020~2024년 발표곡을 과감히 수용한 것이다.

대중적인 음원 차트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곡과 원곡자들이지만, 상당수는 유튜브 조회수 수천만 회를 기록하며 '나만 알고 싶은 명곡'으로 자리 잡은 작품들이다. 윤하는 자신의 확고한 개성을 더해 이 곡들을 대중 앞에 다시 세우는 재발견의 계기를 마련했다.

원곡 팬들도 설득시킬 만한 재해석
 윤하 '써브캐릭터 원' 티저 이미지
윤하 '써브캐릭터 원' 티저 이미지C9

선공개 싱글 '계절범죄' 원곡자 미로는 쓸모없다고 생각해서 팔아 버린 계절의 기억을 후회하는 감정에 녹여 불렀다. 반면, 윤하는 "너와 함께했던 추억과 모든 것이 아파서 이 계절을 다 팔아버렸다"는 아련한 키워드를 느꼈다고 설명한다.

윤하는 통통 튀는 멜로디 때문에 듣기엔 편하지만 부르기엔 결코 쉽지 않은 이 곡을 능수능란한 호흡 조절을 통해 소화한다. 어쩌면 미로가 팔아버렸다는 '계절'의 구매자는 윤하였을지도 모른다.

음반 발매와 맞춰 소개된 '염라'는 원곡의 어두운 질감과는 대조를 이루는 애니메이션 OST풍 경쾌함을 앞세운 재해석이 돋보이는 타이틀 곡이다. 고난도의 편곡과 연주를 통해 "이래야 윤하지!"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특유의 고음 목소리와 박진감 넘치는 밴드 사운드는 쉼 없는 전조(조바꿈)이 이뤄지는 곡 구성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이 노래를 지탱해 준다.

이밖에 '염라'와 함께 뮤직비디오까지 제작된 '써브 캐릭터 Sub Character'의 출렁이는 팝 펑크, 윤하표 얼터너티브 하드 록의 진수로 칭할 만한 '스카이 바운드 Skybound' 속 묵직한 타격감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이에 힘입어 원곡을 아끼는 팬들까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재해석이 완성됐다.

좋은 리메이크의 기준
 윤하
윤하C9

필자가 생각하는 좋은 리메이크의 기준은 그 곡이 지닌 숨겨진 가치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느냐의 여부다. 단순 복제에 그치는 조악함이나 원곡을 훼손하는 과격함을 배제하고 청자를 정서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면, 상업적 성과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 된다.

다행히 윤하의 현명한 선택에 힘입어 <써브캐릭터 원>은 2026년 꼭 들어야 할 리메이크 음반으로 스스로를 각인시킨다. 아티스트 본인과 원곡자들의 개성이 좋은 합을 이루면서 4곡의 트랙들은 저마다 골라 듣는 재미를 안겨준다.

지난 2022년 '사건의 지평선'을 통해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싱어송라이터의 진가를 입증했던 윤하는 리메이크라는 방식을 빌려 또 한 번 기분 좋은 '역주행'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든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꾸준히 음악적 역량을 업그레이드 시켜왔던 윤하는 실험적이면서 과감한 선곡을 통해 원곡자에 대한 경의를 표하면서 누구도 예상 못 했던 깜짝선물을 팬들에게 안겨줬다. 잘 만든 리메이크 음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칼럼니스트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실립니다.
윤하 써브캐릭터원 계절범죄 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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