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이 마이 러브> 스틸컷
㈜누리픽쳐스
04.
"원하는 게 뭐야. 입술을 그어. 그으라고."
한편, 이 작품 속에는 칼(키스 스탠필드 분)이라는 의문의 남성이 하나 존재한다. 그레이스의 출산과 동시에 오토바이를 타고 집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하는 인물이다. 처음 그의 모습은 이웃처럼 인식되기도 하지만, 영화가 아무런 맥락도 없이 갑자기 그를 내세운다는 점에서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관객으로서는 그저 그레이스의 시선을 통해 그를 바라보게 되며, 그의 세상에 불쑥 나타나는 존재처럼 여기게 된다. 그가 등장하는 시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그레이스가 출산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점차 고립되는 동안 모습을 드러낸다. 남편 잭슨과의 관계가 허물어지고 내일에 대한 희망 역시 잃어가기 시작하는 때다. 오토바이를 타고 역동적인 모습을 가진 칼의 모습은 분명 그레이스를 둘러싼 리듬과 다르다.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긴장감이 존재하고, 영화는 잠시 그 감정을 욕망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다만, 일반적인 의미의 불륜 서사로까지 발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흔들리기 시작한 세계와 그 균열을 조금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에 가깝다. 그레이스가 칼이 자신의 가족과 함께 있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장면이 있다. 여기에서 그는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로 평범한 현실이 된다. 이전까지 그를 바라보던 그레이스의 시선에 일탈 혹은 자유와 같은 욕망이 담겨 있었다면, 그런 상상들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 보여주는 지점이다.
다시 말하면, 칼은 그레이스에게 있어 자신의 내면이자 삶의 다른 가능성처럼 여겨지는 셈이다. 출산으로 인해 벗어날 수 없는 집 밖의 세계를 상징함과 동시에 유명 작가가 되겠다는 꿈과 같이 오랜 준비가 필요한 내일 대신 당장 지금의 현실을 깨뜨릴 수 있는 탈출구 같은 것 말이다. 물론 그 가능성은 현실화되지 못하고,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내로 살아가야 하는 현재의 모습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리고 이 잠깐의 흔들림과 욕망은 그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얼마나 고립되어 있는지를 명확히 드러낸다.
그렇게 공간과 욕망의 관점에서 보자면, 잭슨과 칼, 그리고 그레이스의 관계는 분명 삼각 구도를 이루게 된다. 가족과 책임의 공간과 이동과 욕망의 공간이다. 자신의 삶을 둘러싼 두 세계 사이에서 아내와 어머니, 심지어 여성이라는 정체성마저 흔들리며 위태로워져 가는 한 인물의 모습이 이 영화 속에 놓인다. 다시 말하지만, 로맨스 혹은 불륜의 서사는 이 영화 속에 없다.
05.
"오래오래 살다가 죽어버리길…"
후반부로 갈수록 그레이스의 행동은 점점 더 어긋난다. 단순히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 사회적 규칙과 합의를 따르지 못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자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특히 결혼식 장면 속에 존재하는 그는 주변과 분명히 다른 모습을 하며 이미 망가져 버린 내면을 시각화해 낸다. 일반적으로 결혼식이라는 의식은 사랑의 완성과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레이스의 결혼식은 그렇지 못하다. 영화가 명확히 신으로 구성해 보여주고 있지는 않지만, 두 사람의 시작 또한 사랑을 약속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연회장 안에는 이제 막 시작된, 새로운 삶이 기대되는 사랑이 아니라 이미 그 무게를 경험한 인물이 서 있다. 좁은 공간 속에 갇힌 채로 쪼그라드는 세상과 단절된 관계와 같은 것 말이다. 두 사람의 사랑을 축하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레이스 홀로 어딘가 어긋난 태도로 서 있는 이유다. 여전히 이 의식은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하지만, 그에게는 이미 지나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후 병원에 입원하는 등 몇 개의 시퀀스가 더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 지점에 이르게 되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영화의 처음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레이스와 잭슨이 삼촌의 오래된 집을 처음 둘러보던 순간,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미래 앞에 서 있던 시점이다. 삶의 새로운 가능성은 여전히 숨 쉬고 있었고, 두 사람의 관계 또한 균열을 일으키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 다시 비치는 그 공간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같은 풍경이지만 그곳에 남게 되는 것은 이제 시작의 기대가 아닌 무너진 시간의 흔적이다.
실제로 린 램지 감독은 후반부를 통해 많은 부분을 다시 꺼내 보여주며 관객이 처음의 순간을 회상하도록 유도한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지점에서 이야기의 방향을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글의 처음에서 이야기한 대로, 한 사람이 점점 더 깊은 고립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집요하게 응시한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다이 마이 러브>의 마지막은 그래서 결말이 아닌 하나의 반향처럼도 여겨진다.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스틸컷㈜누리픽쳐스
06.
다시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와 감독의 전작인 <케빈에 대하여>를 떠올려보자. 이 작품에서 엄마 에바가 마주해야 했던 공포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라는 타자로부터 비롯되었다. 모성 자체가 의심되었던 것은 아니며, 그 감정이 시험 되고 의심받는 과정이 그려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 <다이 마이 러브>에서의 균열은 외부가 아닌 내부로부터 시작된다. 아이(출산)는 시험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는 거대한 사건에 가깝다. 감독이 이번에 바라보고자 하는 지점은 '어머니가 되는 순간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한 여성'의 상태다. 결국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이야기 같지만, 분명히 이어진다. 모성이라는 것이 정말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본능이 맞는지, 한 인간이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역할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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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