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감당하기 어렵다... 아내 되기를 거부한 그녀의 선택

[김성호의 씨네만세 1288] <브라이드!>

오는 15일 막을 올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대 최다부문 노미네이트의 영광을 안은 <씨너스: 죄인들>과 최근 한국에 개봉한 영화 < 브라이드! > 사이엔 눈에 띄는 공통점들이 있다. 하나는 두 작품 모두 괴물과 인간이 맞서 싸운다는 것. 바로 전 씨네만세를 통해 소개했듯, <씨너스>는 뱀파이어에 맞서 벌이는 아프리카계 아메리칸 흑인들의 혈투가 장르적으로 버무려진 인상적 작품이다.

<브라이드!>에선 전혀 다른 국면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 속 괴물은 저 유명한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속 몬스터로, 이번 작품에선 스스로 빅터 프랑켄슈타인(크리스찬 베일 분)이란 이름을 가졌다. 여러 시신을 떼어 붙여 빚은 흉측한 외모로 일백 년이 넘게 살아왔음에도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온유한 우리의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세상에 전혀 그 존재를 알리지 않아왔던 것이다. 영화는 그런 그가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도무지 참지 못하여 제 모습을 본 딴 아내를 빚어달라며 과학자를 찾아오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로부터 만들어진 존재, 후에 '브라이드'가 되는 여자 괴물이 프랑켄슈타인과 짝을 이뤄 이들을 추적하는 온 세상과 맞서는 게 영화 <브라이드!>의 주된 얼개다.

두 번째 공통점은 영화가 193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의 영화 <씨너스>는 1932년 미국 미시시피주에서 벌어지는 만 하루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 브라이드! >는 역시 1930년대 미국 시카고와 뉴욕, 또 나이아가라 폭포 일대까지를 오간다. 특히 두 작품 모두 일리노이주의 대도시 시카고와 관계 맺고 있단 점은 그저 무시하고 넘길 수 없는 특징이다.

<씨너스>는 주인공인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마이클 B. 조던 1인2역)이 시카고에서 저 유명한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의 부하로 일하다가 한 밑천을 챙겨 고향에 돌아왔다는 설정을 두고 있다. <브라이드!>에서도 마피아 두목이 오프닝시퀀스부터 인상적으로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루피노(즐라트코 부리치 분), 수많은 여자를 죽이고 심지어 그 혀를 잘라 보관한다며 악명이 자자한 탓에 어떤 이도 감히 그 앞에선 경거망동하지 못한다.

브라이드! 스틸컷
브라이드!스틸컷워너브러더스 코리아

1930년대 시카고, 도대체 어떤 곳이었기에

1930년대가 어떤 때인가. 1차 대전의 여파로 폐허가 된 유럽, 벨 에포크라 불렸던 번영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음을 온 세상이 절실히 깨달은 때였다. 전후 복구는 충실히 이뤄지지 못했고, 미국조차 1929년 발생한 대공황에 휩쓸려 절망적인 분위기가 횡행했다.

바로 이 시기에 미국 내 기독교계와 페미니즘 단체의 합작으로 통과된 '금주법'은 암암리에 밀주를 유통하고 술집을 운영해온 마피아 범죄집단이 그 어느 때보다 세를 키우는 배경으로 이어졌다. 알 카포네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마피아뿐 아니라 <씨너스>에서 언급되는 아일랜드계 갱스터까지, 각지에서 맥주와 와인, 위스키와 브랜디가 범죄와 함께 유통됐던 것이다. 시카고, 그리고 뉴욕이 바로 이들의 주무대였다. 요컨대 영화의 배경인 시카고와 뉴욕이란 공간은 1930년대란 시기와 맞물려 법과 정의가 무너져 내리고 자본과 정의의 실패가 두드러지는 부조리한 땅으로 화한다.

영화 < 브라이드! >는 그 시작부터 야심차다. 팀 버튼이 지옥에다 영성을 팔아먹고서 찍은 듯한 오프닝 시퀀스다. 메리 셸리, 그러니까 SF장르의 문호를 열어젖힌 <프랑켄슈타인>의 원작자가 저승에서 이승과 소통하는 파격적이고 전위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1930년대 마피아 조직원들 그득한 시카고 어느 레스토랑을 무대로, 메리 셸리와 접신한 듯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쏟아내는 여성의 이름은 아이다(제시 버클리 분)다. 그녀는 악명 높은 마피아 보스 루피노에게 대단한 반감을 가진 듯한데, 식당을 가득 메운 사내들이 온통 절절매는 모습에도 아랑곳 않고 온갖 말들을 쏟아놓는다. 그리고 이어진 죽음, 그 죽음이 영화 < 브라이드! >의 시작이 된다.

서두에 언급했듯 빅터의 요구로써 죽은 시체에서 산 괴물로 깨어나게 되는 아이다다. 그러나 그녀는 더는 생전의 기억을 갖고 있지 못하니, 빅터는 아이다가 마치 저와 결혼이 예정된 약혼녀인양 속이고 그녀와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이다. 빅터가 그녀에게 붙여준 이름은 페니다.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고 빅터가 꿈꿔온 예쁜 아내 프리티 페니가 되기를 요구받는 아이다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브라이드! 스틸컷
브라이드!스틸컷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영화 < 브라이드! >는 그저 괴물이 인간에게 쫓기고 저항하는 장르영화에 그치지 않는다. 매우 전위적이고 파격적인 페미니즘 영화로의 정체성 또한 선명히 드러낸다. 백년의 고독을 딛고 논문 속 교수를 찾아온 빅터 앞에 등장한 닥터 유프로니우스(아네트 베닝 분)는 당시로선 놀랍게도 남성이 아니다. 당연히 닥터가 남자일 거라 여겼던 빅터 앞에서 유프로니우스는 편의상 닥터 뒤에 성만 붙여 논문을 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이유가 그저 그뿐이라 믿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유프로니우스는 정말이지 대단한 괴짜 과학자다. 아이다의 시체로부터 페니를 창조하는 데 성공한다. 의뢰에 따라 만들어진 창조물에겐 마땅한 역할이 있을 터다. '너는 빅터와 결혼하게 될 예정'이라는 박사의 말은 마땅한 것이지만, 갓 깨어난 페니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I would prefer not to.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낫겠어요."

저 유명한 <필경사 바틀비>의 명문장이 이토록 멋진 대사로 다시 태어나는 광경은 문학의 멋을 아는 이에겐 마치 죽은 아이다가 생명력 가득한 괴물로써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는 듯한 흥분을 안긴다. 그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반복되는 "I would prefer not to"라는 대사는 창조된 괴물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제게 주어진 삶을 제 의지대로 살아갈 것임을 천명하는 도발적 선언으로써 힘을 발휘한다.

< 브라이드! > 속 여성들의 모습은 추악하거나 무력한 남성들과 극명히 대비된다. 마치 신사라 불릴 만한 남성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그러니까 100년 째 여자 손 한 번 못 잡아 본 이 괴물이 마지막이라는 양, 영화 내내 함량미달의 형편없는 남자들만 가득하다. 제복 입은 경찰은 위기에 몰린 여자를 더듬기에 정신없고, 식당을 가득 채운 사내들은 마피아 보스의 심기를 거스를까 전전긍긍한다. 형사라는 이는 범죄조직 앞에 무력하고 잃어버린 사랑에 눈물만 똑똑 흘릴 뿐이다.

브라이드! 스틸컷
브라이드!스틸컷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런 페미니즘이라면 기꺼이

이들 사이로 똑똑하고 유능한 여성들은 좀처럼 기회를 받지 못한다. 닥터 유프로니우스가 다른 과학자처럼 제 이름을 논문 앞에 당당히 적지 못하듯이, 실질적인 수사는 죄다 맡아 하는 머나(페넬로페 크루즈 분)가 형사가 아닌 형사 조수쯤으로 격하돼 수사에 제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배지를 물려받은 후에도 부하인 남자 경찰들에게 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데, 그것이 실력이 부족해서는 결코 아니란 걸 영화를 보는 모두가 안다.

< 브라이드! >는 도발적 전복을 꾀한다. 주저앉아 현실의 부당함을 하소연하는 대신에, 저들의 저항을 문양으로 새기고 구호로써 외치는 것이다. 저 유명한 괴물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똘마니처럼 데리고 다니며 활약하는 페니는 그대로 당대 여성들의 저항의 상징이며 혁명의 기수가 된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내 여자' 완전 멋져!"라 말하는 빅터의 모습이 실소를 자아내는 순간은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 중 하나라 할 테다.

영화의 제목인 '브라이드!'는 아이다에서 페니를 거쳐 진짜 자기 자신이 되는 여성 다크 히어로의 정체성을 확인케 한다. 신부, 그러니까 신랑이 될 누구누구의 아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The Bride!', 그 자체로 온전한 신부가 되기를 선언하는 그녀다. 그녀는 그렇게 체제의 압제에 저항하며 진실하고 자유로운 자신으로 존재하길 선택한다. 뿐인가. 부당한 체제에 저항하지 않는 인간들과 저 자신으로 자유롭게 살려는 괴물들의 싸움은 자연스레 도대체 누가 진짜 지탄받아 마땅한 괴물인지를 되묻게 한다.

브라이드! 포스터
브라이드!포스터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메기 질렌할, 할리우드의 메기

배우 출신 감독 메기 질렌할은 < 브라이드! >를 통해 제가 이 시대 할리우드의 주목할 연출자란 걸 입증해냈다. 마피아 두목이 나오는 몇몇 신은 쿠엔틴 타란티노를 연상케 하고, 앞서 언급한 오프닝 시퀀스는 팀 버튼을, 또 후반부 전체관람가 SF 오락영화의 재미를 불어넣는 신에선 로버트 저메키스의 <백 투 더 퓨쳐>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 모두가 이들의 아류쯤에서 그치지 않으니, 영화가 오로지 메기 질렌할, 저만의 감각으로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마주한 적 없는 풍경을 그려낸 때문이겠다.

다양한 장르, 여러 겹의 스타일을 한 작품 안에 욱여넣고, 보는 이의 통상적 사고 속도보다 빠른 전환을 일삼는 탓으로 작품이 난삽하고 정돈되지 않은 듯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리하여 혹자는 '과유불급,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며 혹평할 수도 있으리라 여긴다. 실제로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개봉 첫 주 전 세계 흥행성적이 이와 같은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속단하지 마시라. 적어도 나는 근 몇 년 할리우드에서 이 만큼 전위적이고 패기 넘치는 연출자를 본 일이 없다. 이 영화의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오프닝만 보더라도, 그러니까 흥행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도입을 기꺼이 선택한 배포만 해도 보통이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그와 같은 패기가 이 시대 영화계에 매우 귀하다고 여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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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