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재개봉한 <씨너스: 죄인들>이 은근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며칠 후 열릴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16개 부문이나 후보에 오르며 최다 부문 노미네이트의 영광을 안은 때문일 수 있겠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역이 될 수 있으리란 기대에 발맞춰 미국뿐 아니라 한국서도 재개봉한 영화는 올해만 2만5000명의 관객을 돌파하며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북미에서 손꼽는 화제작이었던 <씨너스: 죄인들>이 2026년 세계 영화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듯하다.
이 영화가 화제작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16개 부문 노미네이트부터가 아카데미 시상식 97년 역사에 꼽히는 신기록이다. 2016년 <라라랜드>, 1997년 <타이타닉> 등이 갖고 있던 14개 부문 노미네이트가 이전까지의 기록이다. 영화는 이를 추월해 사상 첫 16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 신설된 캐스팅상까지 모두 24개 경쟁부문을 두고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씨너스: 죄인들>은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등 주요부문을 포함하여 촬영·편집·미술·의상 등 거의 모든 세부 기술 부문까지 이름을 올렸다.
특히 정통 드라마가 아닌 장르영화임에도 전통적으로 이에 박했던 아카데미 시상식이 품을 내주었단 건 주목할 대목이다. 할리우드 메이저 상업자본의 선택을 받아온 아프리카계 미국인 감독의 장르성 짙은 상업영화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거둘 성과는 그 자체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영화인들이 할리우드란 영토에서 점유한 영향력을 내다볼 수 있는 징표이기도 할 테다.
▲씨너스: 죄인들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아카데미 역대 최다 노미네이트 화제작
지난 2014년 스티브 맥퀸의 <노예 12년>은 작품상을 포함해 오스카 트로피 3개를 거머쥐었다. 이제는 새롭지 않은 지난 시대의 그릇된 질서를 비판하는 역사성 짙은 정통 드라마의 성취는 예고된 일이라 해도 좋다. 그러나 뱀파이어와의 격투가 주를 이루는 장르영화는 어떨까.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상징성이 아니라 해도 이 영화와 오스카의 조우는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다. <씨너스: 죄인들>의 걸음이 주목받는 이유다.
<씨너스: 죄인들>은 1930년대 미국 남부 미시시피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판타지와 공포, 액션과 음악을 결합한 장르영화다. 영화는 목화솜을 따는 농장이 즐비한 동네의 흑인교회에 마치 악령에게 공격당한 듯한 젊은 흑인 사내가 찾아든 장면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가 어느 비극적 사건의 희생양인지, 아니면 악령에 점령된 위협인지를 알 수 없게끔 긴장감 넘치게 연출한 영화는 그로부터 24시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요컨대 영화는 만 하루의 이야기, 청년이 어떻게 이토록 참담한 모습으로 교회의 문을 열어젖히게 되었는지를 그린다.
쌍둥이 형제 스모크(마이클 B. 조던 분)와 스택(마이클 B. 조던 1인 2역)이 고향인 미시시피의 마을로 돌아온다. 그들은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청년 새미(마일스 케이턴 분)의 사촌형들로, 그를 차에 태워 어디론가 데려간다. 스모크와 스택은 왕년에 이 일대를 주름잡던 깡패들인 모양인데, 시골마을을 벗어나 1차대전에 참전하고 시카고 알 카포네 휘하의 깡패로도 일하며 돈을 모아 고향으로 금의환향한 것이다. 이들의 계획은 시카고에서 챙겨온 물건들로 고향에 흑인 전용 블루스 뮤직펍을 세우는 것이다. 어떻게 구한 것인지 금주법이 아직은 남아 있던 시대에 이탈리아 와인과 아일랜드 맥주까지 잔뜩 챙겨왔으니 이제는 돈을 벌 일만 남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씨너스: 죄인들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아프리카계 아메리칸 버전
전반부는 이들이 술집 운영에 필요한 것들을 차례차례 해나가는 과정으로 채워진다. 우선은 제재소로 쓰던 공간을 인수한다. 그리고 과거 알고 지내던 이들을 찾아 음악가며 문지기, 요리와 계산 등을 부탁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는 마치 <반지의 제왕>의 반지원정대나 <7인의 사무라이> 속 용사들을 구하는 에피소드처럼 흥미롭게 비친다. 원하는 만남들과 원치 않던 만남들이 지속되고 어찌어찌하여 당일 저녁엔 화려한 개업식이 열린다.
이제 영화는 개업식, 그러니까 술집의 첫 장사와 지역 흑인들이 어우러져 노는 파티 사이의 흥겨운 시간으로 꾸려진다. 엄격한 목회자인 아버지 아래 자라면서도 블루스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버리지 못한 청년 새미다. 그에게 사촌형제들의 작업은 첫 무대가 되어준다. 지역의 실력 있는 음악가 델타 슬림(델로이 린도 분)과의 만남 또한 인상적이다. 늙은이에게선 험난했던 지난 시대를 견뎌온 베테랑의 격이, 젊은이에겐 타오르는 열망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엿보인다. 속속 모여드는 관객들 사이에서 이들의 인상적 연주는 배경음으로 끊이지 않았던 블루스 음악의 매력을 전면에 드러낸다. 노예처럼 끌려온 선조들의 한이 수백 년 지속된 들판의 고된 노동요에 묻어 이뤄낸 블루스의 역사가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이 그려지는 듯하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마침내 열린 공연의 감동은 진실하다.
<씨너스: 죄인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새미에게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하루였을 이 밤을 단박에 전환하는 것이다. 일찍이 로베르토 로드리게즈가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 이뤄냈던 그 장르적 전환을 이 영화는 제 나름의 방식으로 무대를 옮겨 펼쳐낸다.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하려는 이들이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 식당에서 마주하는 뱀파이어와의 결전, 그 충격적이고 무지막지한 전환을 이 영화가 1930년대 미국 한복판에서 결행하는 것이다.
뱀파이어와 인간, 범죄자와 모범시민, 앵글로색슨과 라틴 사이의 경계가 국경 아닌 미시시피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흑과 백의 분리와 차별, 앞에선 짐 크로우법이 뒤에선 KKK단이 활개치는 환경이 영화 가운데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를 정면에서 응시하지 않고 배경으로 삽입할 뿐임에도 지난 시대의 비틀린 체제가 영화 가운데 확고한 존재감을 발한다. 요컨대 부조리, 차별, 폭력, 그에 대한 집단적 무시와 동조가 주변이 아닌 중심에도 있는 것이다.
▲씨너스: 죄인들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 영화가 오늘을 겨냥하는 방식
<씨너스: 죄인들>은 뱀파이어와 맞서 살아남으려는 이들의 분투다. 아일랜드 전통 민요를 부르며 흑인들이 든 술집 주변을 포위한 뱀파이어들의 위협이 그저 판타지 영화 속 죽은 이들의 공격에 그치지 않는단 게 인상적이다. 흑인을 사냥하는 KKK단이며 인간을 공격하는 뱀파이어들의 행태가 얼마 다르지 않다. 햇빛 앞에선 떳떳이 활개할 수조차 없는 그 저열한 차별과 폭력을 <씨너스: 죄인들>은 장르영화의 이야깃거리로 화끈하게 소비한다.
대단한 상징이며 구조로 짜인 영화는 아니다. 그저 단순하고 명징하게 배경만으로도 충분한 비판을 해내는 장르적 상업영화다. 인종 간 차별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시대 짐 크로우법에 대한 비판처럼 한 물 간 이야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짐 크로우 법과 같은 지난 시대의 질서는 대명천지 이 세상에 발 내릴 수 없다.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다시 돌아가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죄가 완전히 뿌리 뽑혔는가. 영화 속 현대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뱀파이어들처럼, 과거의 죄는 아직 살아 남아 인간들을 위협한다. 다시 정권을 잡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1기보다 파괴적인 정책을 이어가고, 사람까지 죽어나가는 미국 ICE(이민세관 단속국)의 폭력적 단속행위가 횡행하는 미국의 현실만 보더라도 그렇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뱀파이어의 주요한 설정을 무시해선 안 된다. 뱀파이어가 건물 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안에 든 이의 허락을 구하는 장면, 뱀파이어에게 인간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건물 안에 들어갈 수 없도록 한 설정은 어째서인가. 뱀파이어물의 오랜 설정 가운데 하나인 주인의 허락을 구해야만 그의 공간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제약은 오래 전엔 존재했으나 근래 뱀파이어물에선 유명무실해진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를 복원하고 가장 주된 특징 중 하나로 강조하기까지 한다.
▲씨너스: 죄인들포스터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당신은 죄로부터 자유로운가
영화는 뱀파이어를 그저 흔한 괴물로 대하지 않는다. 영화 첫 장면에서 기독교 성전인 교회, 그러니까 선과 악을 구분하는 상징적 공간을 비추고 블루스 음악을 악과 닿는 불온한 것으로 대하는 시각을 보여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씨너스: 죄인들>에서 뱀파이어는 악을 대변한다. 영화의 제목부터가 죄, 악을 허락한 자를 뜻하고 있지 아니한가.
바로 그 악이 죄가 되기 위하여선 인간 스스로가 악의 침입을 허락해야 한다. 기껏 폐지한 짐 크로우법과 뿌리 뽑은 듯 보였던 KKK단의 준동이 도날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아래 미국 ICE(이민세관 단속국)의 폭력적 단속행위며 극우파들의 준동으로 재현되는 듯 보이는 광경이 이와 떨어져 있지 않다. 악은 어둠 가운데 횡행하고, 그 악을 허락하는 순간 안온한 현실은 지옥이 된다. 인간은 언제나, 또 누구나 죄인이 될 수 있다.
<씨너스: 죄인들>은 그렇게 별 힘을 들이지 않고 현실에 유효한 목소리를 낸다. <황혼에서 새벽까지>와 같이 한 판 크게 놀이를 벌이는 장르영화의 역할도, 블루스의 진수를 보이려는 음악영화로의 정체성도 유지하면서, 현실을 위협하는 악의 준동을 경고하는 비판 또한 내보이는 것이다. <씨너스: 죄인들>의 커다란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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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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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시상식 16개 부문 노미네이트... 올해 최고 영화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