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조별리그 C조 3차전 대한민국과 대만의 경기. 2회초 무사 대만 장위청에게 좌중간 솔로 홈런을 허용한 한국 선발 류현진이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이 제6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서 일본과 대만에 연패를 당하며 벼랑 끝에 몰린 가운데, 8강 진출을 걸고 호주와 운명의 최종전만을 남겨두고 있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일본 도쿄돔에서 진행중인 WBC 본선 1라운드 C조에서 5일 체코와의 첫 경기를 11-4로 대승했으나, 7일 일본전(6-8), 8일 대만전(4-5)에 연패하며 1승 2패를 기록중이다.
현재 C조에서는 일본(3승)이 조 1위로 8강 진출을 확정했다. 호주가 2승 1패로 2위, 가장 먼저 조별리그 일정을 모두 마친 대만은 2승 2패로 3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4위로 추락했다. 최하위 체코는 3패로 조 5위에 내려앉으면서 남은 일본과의 최종전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1라운드 조기 탈락이 확정됐다.
C조는 이제 2경기만을 남겨놓은 가운데, 일본과 체코는 이미 순위가 확정된 두 팀간의 대결이라 큰 의미가 없다. 이변이 없는 한 우승후보 일본의 무난한 승리가 확실시된다. 하지만 9일 오후 7시에 열리는 한국과 호주의 최종전은 8강 진출 티켓의 마지막 한 장을 가리는 벼랑 끝 승부가 됐다.
호주가 한국을 이긴다면 3승 1패로 조 2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한국이 승리하게 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한국, 호주, 대만 세 팀이 나란히 2승 2패로 동률을 이루게 된다.
WBC 규정에 따르면 승률이 같을 경우 '승자승' 원칙을 우선으로 따르지만, 이 경우에는 세 팀이 서로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이 형성되어 맞대결 전적으로는 우열을 가릴 수 없게 된다. 그 다음 순위결정법은 '실점률'로 세 팀 간 맞대결에서 실점 수를 아웃카운트 수로 나눈 결과를 비교한다.
한국이 호주, 대만보다 실점률에서 앞서기 위해서는, 호주전에서 최대한 다득점-저실점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면서 승리해야만 한다. 한국이 정규이닝 동안 '5점차 이상'의 점수를 뽑고 '2실점 이하(5-0, 6-1 등)'로 막아내면 8강 진출 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이기더라도 점수차가 4점차 이하면 호주가 8강에 진출한다.
우리 타선이 폭발하여 콜드게임 승리를 거둔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 같지만 여기에도 변수가 있다. 실점률을 따져야 하기 때문에 적은 이닝으로 경기를 끝낼수록 실점이 없어야 한다는 부담은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만일 한국이 얼마나 많은 득점을 뽑아내든 8회 이전에 2실점 이상을 하게 되면, 호주는 밀어낼 수 있어도 대만(실점률 0.389)에게는 밀리게 되어 오히려 콜드게임으로 이기고도 탈락하는 허탈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복잡한 '경우의 수'가 만든 웃지못할 상황도 발생했다. 만일 이날 일본이 호주에 패했다면 한국은 그대로 8강에 탈락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우리로서는 살아남기 위하여 일본의 승리를 간절히 응원해야하는 얄궂은 처지가 됐다.
한국-호주전을 앞두고서는 대만이 똑같은 입장에 놓였다. 전날 한국을 이기기 위하여 사력을 다했던 대만은, 이제는 기적의 8강행을 이루기 위하여 한국이 호주에 3실점 이상을 허용하고 승리해주기를 열렬하게 응원하고 있다.
경우의 수를 따져야하는 상황도 난감하지만, 그 이전에 호주를 상대로 승리를 섣불리 장담할 수 없다는 것도 우려된다. 당초 호주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빅3' 일본-대만-한국보다는 한 수 아래로 다크호스 정도로 거론되었지만 뚜껑을 열자 예상보다 훨씬 탄탄한 전력을 과시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호주는 첫 경기부터 대만에 3-0 영봉승을 거두는 이변을 일으켰고, 체코에게는 5대 1로 승리하며 2승을 거뒀다. 압권은 일본과의 3차전이었다. 대부분의 야구팬들과 전문가들이 압도적인 전력차로 일본의 완승을 예상했다 하지만 호주는 팽팽한 투수전으로 오타니 쇼헤이, 스즈키 세이야, 요시다 마사타카 등을 앞세운 일본의 강타선을 6회까지 무득점으로 틀어막으면서 오히려 1-0으로 앞서나갔다.
끌려가던 일본은 7회말에 오타니의 볼넷 출루에 이어 요시다 마사타카가 호주의 4번째 투수 존 케네디를 상대로 우측 담장을 넘기는 역전 투런홈런을 터뜨리며 간신히 경기흐름을 바꿨다. 일본은 8회에도 사토 데루아키의 적시 2루타와 스즈키의 밀어내기 볼넷으로 4대 1까지 점수차를 벌렸다.
하지만 호주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일본 마무리 오타 다이세이를 상대로 알렉스 홀과 릭슨 윙글로브가 9회에만 솔로홈런 2방을 터뜨리며 막판까지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비록 경기를 뒤집지는 못했지만, 디펜딩챔피언을 상대로 마지막 순간까지 한 점차로 몰아붙인 호주야구의 저력은 박수를 받기 충분했다.
현재 대표팀의 최대 고민은 투수력이다. 한국은 3경기에서 28이닝(연장전 포함) 17실점을 허용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3실점 이하로 막아낸 경기가 아직 없고, 호주는 2실점 이하로 묶인 경기가 한 번도 없다. 최약체로 꼽히는 체코전에도 4실점이나 내준 한국 투수진이, 일본과 대만을 상대로도 3점씩을 뽑아낸 호주의 강타선을 최소실점으로 막아낼 수 있을지 관건이다.
한국은 호주전에서 손주영을 선발로 예고했다. 기용 가능한 모든 투수들을 동원해야 하는 총력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 투수진은 WBC의 투구수 제한 규정으로 인하여 지난 대만전에 등판했거나 2연투를 했던 류현진, 곽빈, 고우석 등이 호주전에는 아쉽게 나설 수 없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역시 '홈런'이다. 이번 대회에서 C조 8경기를 치르는 동안 벌써 총 24개의 홈런쇼가 터지며 유난히 장타가 속출하고 있다. 호주는 11득점을 기록하는 동안 벌써 6개의 홈런으로만 9득점을 뽑아냈다. 상위타선을 책임지는 트래비스 바자나, 커티스 미드는 물론이고 알렉스 홀, 로비 퍼컨스, 릭슨 윙그로브 등 세밀함은 부족해도 언제든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펀치력을 갖춘 장타자들이 즐비하다.
한국도 6개의 홈런을 뽑아냈지만 그보다 더 많은 8개의 홈런을 허용한 게 뼈아팠다. 체코전에서만 4개의 홈런을 몰아쳤지만, 이후로는 1번 김도영과 9번 김혜성이 1개씩을 추가하는 데 그쳤고 중심타선의 부진이 계속되고 있는 게 뼈아프다.
한국은 일본과 대만전에서 모두 선전하다가 볼넷 이후 장타로 한번에 상대에게 흐름을 넘겨주는 경우가 많았다. 구위로 상대를 압도하는 투수가 부족한 한국으로서는, 홈런도 두렵지만 장타를 피하기 위하여 도망가는 피칭을 하다가 볼넷으로 주자를 내보내는 상황도 경계해야 한다.
현재 대회가 열리는 도쿄돔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타자친화형 구장으로 꼽힌다. 홈플레이트에서 외야 펜스까지 거리가 좌우 100m, 중앙 122m, 좌·우중간 110m다.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는 데다 구조상 습도가 낮아 타구가 타 구장보다 더 잘 뻗어서 다른 구장에서는 아웃이 될 플라이성 타구도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예측불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도 8강 진출에 실패한다면, 2013년 대회 이후 WBC 4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당하게 된다. 여기에 '일본전 국제대회 11연패'-'대만전 WBC 사상 첫 패배'의 악몽에 이어, 프로리그도 없는 호주에게까지 패하여 탈락하게 된다면, 이번 대회는 여러모로 한국야구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도쿄 대참사'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벼랑 끝에 놓인 한국야구가 과연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기사회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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