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앞에서 스스로 물러서는 사람들

[이 장면 이후 우리 사회는] 넷플릭스 <파반느>, 기다림이 사랑이었다

[이 장면 이후 우리 사회는] 영화, 방송, 책등 작품 속 한 장면을 통해, 오늘의 사회적 장면과 감정의 흐름을 살펴봅니다.[기자말]
사랑은 하고 싶은데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가가기도 전에 이미 고개를 젓는다. 어차피 안 될 거라고, 나 같은 사람이 무슨, 하고 먼저 물러선다. 거절당하기 전에 스스로 포기하고, 상처받기 전에 스스로 돌아선다. 사람은 왜 사랑하기 전에 먼저 자격을 묻게 되었을까.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황지우 시인의 시처럼, 기다림은 늘 가슴을 조여 온다.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 하나에도 심장이 먼저 반응하고, 나뭇잎 하나 스치는 소리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기다림조차 시작하지 못한다. 사랑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그 사랑이 자신에게 올 리 없다고 먼저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랑이 사치가 된 시대라고들 한다. 취업난과 불안정한 주거, 끝이 보이지 않는 생활비.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 세대라는 말은 이제 익숙하다. 그러나 그 안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다른 감정이 보인다. 이 조건으로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느낌. 누가 가르쳐 준 적은 없지만 어느 순간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생각. 우리는 그렇게 사랑보다 먼저 자격을 묻게 되었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파반느>는 바로 그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사랑을 원하면서도 사랑받을 자격을 스스로 거둔 사람들. 빛을 갈망하면서도 빛 앞에서 멈추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파반느> 이종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할 자신이 없는 못난 마음을 안고 살아가지 않나 싶었어요. 그래서 얼굴이 아니라 못난 마음에 집중하고자 했죠."

멈춘 사람과 포기한 사람. 깊이는 달랐지만 뿌리는 같았다. 자신은 빛 안에 들어가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오래된 믿음.

사랑할 자격을 스스로 거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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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이경록(문상민)이 김미정(고아성)에게 호의를 보일 때, 미정이 조용히 꺼낸 말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방송 멘트처럼, "낯설지만 설레고, 또 불안하지만 황홀하고, 몽환적이면서 아름다운 감정." 미정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앞에서 멈췄다.

누군가 조건 없이 잘해줄 때, 기쁨보다 먼저 오는 감정이 있다. 당혹감. 그리고 뒤따르는 질문. 나는 이걸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좋아하는 사람이 잘해줄 때 기뻐하기보다 어쩔 줄 모르는 사람. 빛 앞에서 눈을 감는 사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없는 사람처럼 살아왔습니다."

미정이 경록에게 보낸 이별편지의 한 구절이다. 떠난 사람의 말이 아니다. 거기 있었지만 없는 사람처럼 살아온 사람의 말이다. 먼저 없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오래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미정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줄을 서왔다. 성적표를 받을 때, 취업 원서를 낼 때, 누군가를 만날 때. 늘 자신이 충분한지를 먼저 확인했다. 그리고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꿈도 미루고 사랑도 미뤘다. 언젠가 더 나은 내가 되면 그때 시작하겠다고. 그러나 그 언젠가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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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 앞에서 멈추게 만드는 것은 부족함이 아니라,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말을 누가 가르쳐 준 적 없는데, 어느 순간 그게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은 사랑 앞에서도 먼저 자신을 검열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조용히 물러선다. 세상이 끊임없이 충분한 사람이냐고 물으면, 결국 스스로 아직 아니라고 답하게 된다.

사랑 앞에서 스스로 물러서는 것이 이렇게 익숙한 일이 됐다는 것. 그것은 그 사람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그 무언가를 바꾸는 일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걸음이 느린 영혼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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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영화에는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다. 자신에게 가장 가혹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마음은 가장 따뜻하게 알아본다는 것. 아마도 그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가장 오래, 가장 깊이 들여다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꿈 앞에서 자신없어 하는 경록에게 미정은 이런 말을 건넨다. 걸음이 느린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기다려 주는 것.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나의 속도로 살아도 된다고. 다른 사람에게는 건넬 수 있는 말을, 자신에게는 한 번도 건네지 못한 사람. 그것이 미정이었다.

자신에게 가혹한 사람이 미정만은 아니다. 백화점 주차장에서 일하는 박요한(변요한)도 있다.

"이별이 왜 슬픈 줄 알아? 헤어졌다는 고통 때문이 아니야. 잠시나마 그 사람 때문에 살아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야."

록 음악과 고전 멜로 영화를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 그는 다른 사람의 사랑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말로 풀어낸다.

그런데 그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엄마를 잃은 아이가 장례식장에서는 울지 않다가 집에 돌아와 냉장고를 여는 순간 하염없이 울었다는 이야기. 엄마가 사다 놓은 배추, 무, 파. 그것들을 꺼내고 나니 냉장고 불빛만 남았다. 깜깜한 밤, 완벽한 어둠 속에서. 그제야 눈물이 쏟아졌다. 사랑은 거기 있었는데, 그 사랑을 건네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그 불빛 앞에서 처음 알았기 때문에.

생각해 보면 이 영화의 인물들은 모두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눈 내리는 밤거리에서, 혹은 말하지 못한 마음속에서. 미정은 올지 모를 사람을 기다렸고, 경록은 미정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렸고, 요한은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사랑이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속도를 기다려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따뜻한 순간은 누군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가 아니라,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미정이 경록에게 말한다. "안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경록이 답한다. "그래도 기다렸잖아."

걸음이 느린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기다려 준다는 것. 미정이 경록에게 건넸던 말이, 이번엔 미정 자신에게 돌아온다. 더 나은 사람이 돼서가 아니었다. 누군가 그냥 와줬기 때문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기다림은 언제나 보답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다리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의 전부였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들. 사랑이 뭔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 자신은 그 사랑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지 끝내 묻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조건이 아니다. 그냥, 기다렸다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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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 모두, 누군가의 기다림 덕분에 여기까지 걸어온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ezmind921에도 실립니다.
파반느 이종필 고아성 변요한 문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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