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금성대군(이준혁 분)
쇼박스
한편으로는 힘을 회복하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성장하는 노산군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옹위하려는 금성대군이 자리한다. 우리는 그들의 예정된 운명을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금성대군의 사사(賜死) 장면은 강렬하고 감동적이다. 단종을 향한 재배(再拜) 이후 의연하게 사약을 받는 금성대군. 그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명문을 일깨운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
노산군은 또 어떤가! 나약하고 어린 소년에서 힘 있고 명민한 청년으로 변모하는 노산군. 그는 숙부가 내린 사약을 받을 생각이 없다. 그는 타살의 형식에 의지한 자살을 선택한다. 문밖에서 푸르게 넘실거리는 서강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흐르는 삼도천(三途川) 삼아 의연하게 넘어가려 한다. 바야흐로 그때가 온 것이다. 그는 의연하고 단호하다.
눈물 속의 웃음
<왕과 사는 남자>가 상영되는 동안 곳곳에서 웃음이 터진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탄식과 흐느낌이 잦아진다. 영화는 자연스러운 웃음으로 버무려진 희극성과 예기치 못한 비장미가 뒤섞인다. 한 편의 영화에서 서로 모순되는 미학적 원칙이 배치되지 아니하고 사이좋게 공존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미덕이다. 그 중심에 엄흥도가 자리한다.
엄흥도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잘 먹고 잘살자는 현세주의 철학으로 무장한 촌장이고, 아들 사랑이 지극한 자상한 아비이며, 제 욕심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속물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엄흥도는 우리가 말하는 민중 혹은 백성의 원형질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물질적-세속적 욕망에 충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엄흥도.
역사는 엄흥도를 영월의 호장(戶長)으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사를 지낸 충신으로 기록한다. 세조는 노산군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을 내린다. 하지만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영월 엄씨 선산에 안장한다. 그가 남긴 말은 이러하다.
"선한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한다면, 나는 달게 받겠다."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쇼박스
글을 마치면서
<왕과 사는 남자>는 신선한 소재도 자극적인 내용도 없고, 몸값 비싼 배우도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의 속도는 가을날 서강처럼 유장하게 흐른다. 속도가 생명인 21세기 20년대 광속의 시간대에 600년 전 이야기가 느릿하게 진행된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지루하거나 진부한 영화가 아니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청령포에는 오늘도 유람객이 넘쳐난다.
백성이 완벽히 소외된 궁궐 내부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어린 왕을 향한 연민의 정. 그를 살리고자 온마을 사람들이 애태우는 따사로운 장면. 자신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순진무구한 촌장. 거기서 불타오르는 '공정'에 기반한 '대동 세상'을 향한 열망. 패배하되 파괴되지 않는 인물들과 그들 뒤에 병풍처럼 서 있는 백성들.
단종보다 한 살 많은 정순왕후 송씨(宋氏)가 빠진 것은 다소 아쉽다.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자 송씨는 동대문 밖 숭인동 동망봉(東望峯) 기슭에 초가를 짓고 단종의 무사(無事)를 기원한다. 노산군의 죽음 이후 홀로 65년을 살아야 했던 비운의 여인. 남양주에 있는 사릉(思陵)에서 그녀는 지금도 영월 장릉(莊陵)의 단종을 생각하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인터넷 상에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아름답고 새로운 세상 만들기에 참여하고 싶어서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개인 블로그에 영화와 세상, 책과 문학, 일상과 관련한 글을 대략 3,000편 넘게 올려놓고 있으며, 앞으로도 글쓰기를 계속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