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 경기도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와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의 경기. 현대건설 양효진이 공격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5-2026 V리그 여자배구 정규리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고 있다. 시즌 막판까지 이어진 한국도로공사와 현대건설의 치열한 선두 경쟁은 승점 몇 점, 단 한 세트 차이로 순위가 뒤바뀔 수 있는 극한의 접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인 한국도로공사와 GS칼텍스의 맞대결을 주목해야 한다. 이 경기는 단순한 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정규리그 1위 경쟁의 흐름을 좌우할 수도 있는 분기점일 가능성이 높다. GS칼텍스는 이미 우승 경쟁의 중심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듯 보이지만, 상위권 판도를 흔드는 '챔피언 레이스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 끈질긴 수비와 빠른 공격 템포를 바탕으로 상위권 팀들의 흐름을 흔들어 왔고, 이번 경기 역시 그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한국도로공사에는 선두 수성을 위한 중요한 관문이 되고, GS칼텍스에는 시즌의 자존심을 걸고 싸우는 승부가 된다. 이 경기의 단 한 세트, 단 한 점이 시즌 전체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의 긴장과 드라마는 바로 그런 경기들을 통해 완성되어 가고 있다.
박빙의 리그 중심에는 한 선수가 있다. 바로 현대건설의 미들블로커 양효진이다. 긴 세월 동안 코트를 지켜온 그는 단순한 스타 선수를 넘어 한국 여자배구의 한 시대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2007년 프로 무대에 등장한 이후 그는 19년의 긴 세월 동안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며 블로킹과 속공에서 리그의 기준이 되었다. 상대 공격을 읽는 블로킹 감각,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속공 그리고 경기 흐름을 바꾸는 경험까지 양효진은 단순한 포지션의 선수가 아니라 팀의 중심축이었다.
양효진의 커리어는 한국 여자배구가 지나온 길과도 닮아 있다. 김연경을 중심으로 한 국가대표 전성기와 함께 리그의 관심이 높아졌던 시기 그리고 세대 교체의 공백 속에서도 묵묵히 코트를 지키며 리그의 중심을 지켰던 시간들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수많은 시즌이 흘렀고 수많은 선수들이 등장하고 사라졌지만 양효진은 늘 코트 위에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선수로서의 자기 관리, 경기 이해도 그리고 프로로서의 책임감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러나 양효진의 긴 커리어를 바라보며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왜 이렇게 긴 세월 동안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가 몇 명에 불과했을까 하는 점이다. 양효진 같은 선수가 존재했다는 것은 한국 여자배구의 자산이지만, 동시에 그 뒤에서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사라졌는지도 생각하게 한다.
한국 여자배구의 구조는 생각보다 좁다. 현재 V리그는 7개 팀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 팀의 선수단 규모는 제한적이다. 결국 전체 리그에서 뛰는 선수 수는 많지 않다. 주전이 아닌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출전 기회 역시 제한적이다.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 벤치에서 경기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어느 순간 팀을 떠나 실업 무대나 다른 길을 찾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력의 차이 때문이라기보다 기회의 부족 때문인 경우도 많다.
특히 FA 제도와 보상선수 문제 그리고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된 선수들의 이동 과정은 선수들에게 또 다른 불안 요소가 된다. 팀을 옮긴다고 해서 출전 기회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많은 선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보여보지도 못한 채 코트를 떠난다. 팬들이 기억하는 것은 스타 선수 몇 명이지만 그 뒤에는 이름도 기억되지 못한 채 사라진 수많은 선수들이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새로운 스타가 등장하기도 어렵다. 스포츠에서 '흙 속의 진주'는 넓은 경쟁 속에서 발견된다. 야구에서 김성근 감독이 무명의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며 숨은 재능을 발견했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선수들이 싸울 수 있는 공간이 넓어야 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무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배구는 그 공간이 너무 좁다.
2군 리그의 부재, 실업팀과 프로팀 사이의 단절 그리고 제한된 경기 수는 선수들의 성장 기회를 줄인다. 많은 선수들이 경기 경험을 쌓을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사라진다. 결국 리그는 몇몇 스타 선수에게 의존하게 되고, 그 선수들이 은퇴하는 순간 공백이 크게 느껴진다.
양효진의 존재는 그래서 더 상징적이다. 그는 단순한 스타 선수가 아니라 한국 여자배구가 만들어낸 마지막 전성기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의 블로킹 하나, 속공 하나에는 그 시대의 기억이 담겨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커리어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양효진 이후의 한국 여자배구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제 우리는 한 선수의 업적을 기념하는 것에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양효진이 남긴 의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리그 구조와 선수 육성 시스템을 돌아봐야 한다. 선수들이 더 많은 경기를 뛰고 더 넓은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벤치에 머물렀던 선수들에게도 다시 도전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흙 속에 묻혀 있는 재능들이 빛을 볼 수 있다.
이번 시즌의 치열한 경쟁은 팬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 서사가 단순한 시즌의 드라마로 끝나서는 안 된다. 코트를 지켜온 선수들의 시간과 그 뒤에 이어질 세대의 길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한 시대를 대표했던 선수의 마지막 춤이 끝나는 순간, 한국 여자배구는 새로운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양효진 이후, 한국 여자배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 흙 속의 진주를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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