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고전 비극 <맥베스>가 <칼로막베스>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권력을 향한 야망을 억누르지 못한 채 폭력으로 권력을 찬탈하고, 무자비한 통치 끝에 스스로 파멸하게 된 맥베스의 이야기를 검술 액션을 가미한 무협극으로 풀어냈다.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중견 연출가 고선웅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고, 검도 5단 배우 김호산이 검술 액션을 지휘했다.
<칼로막베스>는 고선웅 연출가가 이끄는 극공작소 마방진의 대표 레퍼토리로, 올해로 극단 20주년을 맞이하여 야심 차게 돌아왔다. 2010년 동아연극상에서 작품상과 연출상을 수상한 바 있는데, 공연이 시작되고 배우들이 수상 이력을 관객 앞에서 읊는다. 독특한 형식으로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이 연극의 유쾌함에 객석 곳곳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지난 1일 관람한 <칼로막베스>는 원작이 풍기는 장엄한 비극의 느낌을 내려놓고, 유쾌한 매력과 역동적인 움직임을 가미했다. 두드러지는 표현 두 가지가 있다면 검술 액션과 슬랩스틱 코미디다. 슬랩스틱 코미디 속에 군데군데 녹아있는 효과음과 언어유희는 정통 코미디의 문법을 따르며, 덕분에 비극의 주인공을 우습고 무능력한 악인으로 풍자한다.
▲연극 <칼로막베스> 공연 사진
극공작소 마방진
노승과 맹인술사의 대립, 원작보다 쓰라린 비극
<칼로막베스>는 원작의 서사를 충실히 따르되, 캐릭터 이름과 배경 등에 약간의 변화를 줬다. 연극의 제목과 주인공의 이름은 "칼로 막 베어버린다"는 의미를 내포한 유머다. 원작에서 맥베스의 욕망을 자극하는 레이디 맥베스는 '막베스 처'라는 캐릭터로 등장하고, 맥베스에게 예언을 전하며 모든 일의 시발점 노릇을 하는 마녀는 '맹인술사'로 바뀌었다. 배경은 중세 스코틀랜드가 아니라 폭력이 난무한 미래의 감옥 '세렝게티 베이'다.
필자가 눈여겨본 캐릭터는 '노승'이다. 공연이 시작되고 노승은 연극의 개요와 배경을 줄줄이 읊는다. 막베스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은 노승의 말을 재촉하고 빨리 연극, 다시 말해 칼 싸움을 시작하길 바란다. 수감자들의 비난과 압박을 뚫고 연극의 시작을 알리는 노승은 이후로도 무대를 배회하며 인물들의 곁을 지킨다.
무대에는 악이 판치는 가운데 노승은 선의 가능성을 설파한다. 노승이 선을 이야기한다면 맹인술사는 악을 대변한다. 맹인술사가 그 자체로 절대적인 악은 아니지만, 비극을 야기하는 모든 악의 근원이다. 맹인술사가 막베스의 욕망을 자극하는 가운데, 노승은 끊임없이 내려놓음의 미덕을 설파한다.
이 연극은 비극이기에 대립의 승자는 맹인술사다. 무력으로 감옥의 보스 자리를 빼앗은 막베스는 권좌를 지키기 위해 폭력적인 통치를 계속해야 했고, 끝내 파멸한다. 막베스가 몰락했다고 해서 감옥이 평화를 되찾은 건 아니다. 보스 자리는 비어 있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폭력이 다시 난무한다.
칼로 막 베는 '막베스'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총을 막 쏴대는 '막쏴스'의 시대가 도래한다. 코믹한 설정으로 연극을 닫지만, 폭력성과 허망함은 여전하기에 <칼로막베스> 역시 비극이다. 어쩌면 새로운 유형의 더 강력한 폭력이 등장하기에 원작보다 더 쓰라린 비극으로 보이기도 한다.
▲연극 <칼로막베스> 공연 사진
극공작소 마방진
이 연극이 오늘날 세상을 향해 말하는 것
모든 것의 중심에는 더 높은 곳에 올라가려는 욕망이 있다. <칼로막베스>의 주인공처럼 극단적인 권력욕이 아니더라도 모든 인물들은 더 높고 나은 곳을 갈망한다. 연극에서는 사다리가 욕망을 상징하는 소재로 사용되며, 이곳의 세계관에서 상승 욕구를 실현할 유일한 수단은 폭력이다.
욕망을 따라 폭력을 사용하기에 비극으로 귀결되는 셰익스피어의 서사는 사회 상황에 따라 언제나 적절한 비유가 되어왔다. 더 높이 올라가 더 많은 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은 곧 능력에 비해 많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한 폭력으로 변질된다. 폭력을 멈출 수 없는 상황은 자기 파멸로 이어지고, 그제야 모든 게 의미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막베스가 "인간이란 불쌍한 배우,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는 순간이다. 세계 이곳저곳에서 전쟁을 벌인 이들이 부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셰익스피어의 교훈을 깨닫길 바란다.
<칼로막베스>는 3월 15일까지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된다. 16년 전에도 막베스를 연기한 김호산이 다시 검을 들고 막베스를 연기한다. 스타 국악인 김준수가 막베스 처 역을 맡아 연극에 데뷔하고, 배우 원경식은 무르익은 연기로 또 다른 매력의 막베스 처를 보여준다.
▲연극 <칼로막베스> 공연 사진극공작소 마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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