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가 '아바타' 만들었다면 이렇지 않았을까?

[리뷰] 영화 <호퍼스>

 영화 '호퍼스'
영화 '호퍼스'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한 소녀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메이블(목소리 출연 : 파이퍼 커다 / 장미 분). 아름다운 비버턴 연못 주변에서 자란 메이블은 그곳에서 할머니(캐런 휴이 / 최수민 분)와의 소중한 추억을 쌓으며 건강하게 성장했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비버턴 시장 제리(존 햄 / 최한 분)의 고속도로 건설 추진으로 연못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여전히 동물을 사랑하는 대학생이 된 메이블은 이를 막기 위해 시민들의 반대 서명을 모으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낙담하던 메이블은 우연히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다. 학교 은사인 샘 교수(캐시 나지미 / 이선주 분)가 사람의 의식을 로봇에 이식하는 '호핑'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 메이블은 교수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직접 비버 로봇에 자신의 의식을 옮겨 동물 세계로 뛰어든다. 과연 이 위험한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예전 같지 않은 픽사
 영화 '호퍼스'
영화 '호퍼스'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지난 4일 통산 30번째 극장판 애니메이션 <호퍼스>(연출 다니엘 총)를 선보인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이하 픽사)는 디지털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첫 장편 영화 <벅스 라이프>(1995년)을 시작으로 창사 40주년을 맞이한 올해 2026년까지 픽사의 이름은 극장판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신뢰와 흥행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전후로 픽사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숙명의 라이벌 드림웍스를 비롯해서 일루미네이션 등 경쟁 업체의 끊임없는 도전뿐만 아니라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대표되는 OTT 넷플릭스의 파상 공세에 천하의 픽사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토이 스토리> <인사이드 아웃> 등 시리즈물의 인기는 여전히 건재했지만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루카> <메이의 새빨간 비밀> 등 오리지널 스토리에 의존한 작품들은 OTT 직행을 피할 수 없었고 <엘리오>는 흥행+비평 모두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런 점에서 올해 최대 기대작 < 토이 스토리 5 > 개봉에 앞서 등장한 <호퍼스>에 거는 기대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아바타 +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 호퍼스?
 영화 '호퍼스'
영화 '호퍼스'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인간의 의식을 로봇에 주입한다는 SF 영화적인 요소는 픽사가 속한 디즈니의 대표작 <아바타>를 떠올릴 만하다. 그래서인지 <호퍼스>는 극 중 이를 언급하는 메이블의 유머 넘치는 대사를 통해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의인화된 야생 동물들이 자신의 터전을 지키고자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향수마저 불러일으킨다.

자칫 타 작품과의 유사성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는 위험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호퍼스>는 영리하게 자신만의 독자성을 구축한다. 익숙한 장르의 틀이 존재하지만 픽사 특유의 개성 넘치는 이야기가 맞물려 인간과 동물의 공존이라는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포유류 왕 킹 조지 (바비 모이니핸 / 양석정 분), 곤충 왕 티투스(데이브 프랑코 / 이현) 등 각종 동물 캐릭터들의 대향연과 맞물린 픽사 특유의 웃음기 넘치는 대사는 <호퍼스>의 재미를 든든하게 책임진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호퍼스>는 환경보호라는 주제를 자연 특유의 순환과 공존의 중요성으로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일방적인 강요 대신 서로의 가치와 처한 입장을 인정하는 균형 있는 시선이 그 속에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뻔한 방식은 피하면서 동시에 자연과 사람은 늘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파격보단 안정

 영화 '호퍼스' 포스터
영화 '호퍼스' 포스터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전반적으로 <호퍼스>는 파격보다는 안정에 무게를 둔 작품이다. 사실적인 자연 배경과 개성 넘치는 동물 캐릭터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픽사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새로운 시도를 무리하게 덧입히기보다는, 그동안 픽사가 잘해왔던 이야기 방식, 즉 인간 삶의 본질을 투영하는 서사를 충실히 이어간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와 < 월-E >처럼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고 그들의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전통 역시 유지된다. 이를 통해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환경 보호 메시지를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에게 부담 없이 전달한다.

여기에 과장된 구호나 이념적 대립을 배제하고, 미숙했던 주인공 캐릭터의 정서적 성장 과정을 설득력 있게 담아낸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선에 가까운 결말은 유쾌한 웃음과 함께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상영 시간 104분, 쿠키 영상은 총 2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칼럼니스트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실립니다.
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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