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총은 슬퍼"... 전쟁의 비극 담아낸 연극 두 편

[안지훈의 연극 읽기] 연극 <튤립> <빵야>

또 하나의 전쟁이 벌어졌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을 두고 얼마나 장기화될지 예측이 빗발친다. 전쟁을 주도하는 권력자의 심리와 목표를 향한 분석도 이곳저곳에서 제기된다.

이런 접근 방식은 전쟁을 단면적인 이미지로 소비하게 만들고, 피해의 실상과 일상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춘다. 이럴 때일수록 어느 날 갑자기 전쟁을 겪게 된 무고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쟁의 실상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고, 전쟁이 벌어져선 안 되는 이유를 정확히 이야기할 수 있다.

3월 관객을 만나는 두 편의 연극은 전쟁이 아닌, 전쟁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3월 1일부터 관객을 만나기 시작한 연극 <튤립>은 전쟁과 폭력이 무고한 가족을 어떻게 파괴하고 개인의 영혼을 갉아먹는지 이야기한다. 3일 개막한 <빵야>는 전쟁에 동원된 총을 중심으로 도구가 되어버린 존재들이 겪어야 했던 이야기를 전한다.

[연극 <튤립>] 전쟁이 파괴한 가족과 개인

 연극 <튤립> 공연 사진
연극 <튤립> 공연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하지영

그동안 현대사와 전쟁에 주목해 온 김도영 작가의 희곡 <튤립>이 극단 돌파구를 이끄는 전인철 연출가의 손을 거쳐 무대에 올랐다. 202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발탁되어 오는 8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지난 3일 관람한 <튤립>은 일제강점기에 벌어진 각종 침략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쟁이라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진 않는다. 전쟁은 검은색 페인트로 덧칠된 무대 바깥에서 벌어지며, 무대 위에서는 오직 전쟁으로 얽힌 두 가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쪽에는 연해주에 파견 다녀온 일본군 '야마토'와 그의 가족, 다른 한쪽에는 연해주에서 아내와 아들을 잃고 야마토 주변을 맴도는 '쿠로'가 있다.

당시 일본은 침략 전쟁과 식민 통치를 쉽게 하려 '내선일체'로 일컬어지는 동화주의를 채택했다. 제국의 동화주의는 연해주에서 한 아이를 훔쳐온 야마토 가족 내에서도 이루어진다. 야마토는 연해주에서 빼앗아 데리고 온 아들 '쥬리프'를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튤립'은 꽃보다 구근이 중요한 식물로, 일본이 펼친 동화주의의 작동 방식과 한계를 설명하는 상징적인 소재다. 야마토에게 튤립은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의 대상이지만, 조선인 쿠로에게 큘립은 빼앗겼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미련과 슬픔의 대상이다.

전쟁에는 침략하는 이가 있고, 침략당하는 이가 있다. 전쟁의 권력관계는 비단 국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걸 연극 <튤립>이 보여준다. '튤립'이라는 작은 꽃 한 송이가 전쟁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나,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시적인 사건들의 나열보다 작은 꽃 한 송이가 전쟁의 실상을 더 명징하게 드러낼 수도 있다는 걸, <튤립>을 통해 배웠다.

[연극 <빵야>] 어느 날 갑자기 총이 되어버린 나무의 이야기

 연극 <빵야> 공연 사진
연극 <빵야> 공연 사진엠비제트컴퍼니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연극 <빵야>는 독특한 구성으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매번 편성에 실패하는 드라마 작가 '나나'가 소품 창고에서 오래된 장총 '빵야'를 발견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강가의 나무였던 빵야는 어느 날 갑자기 장총으로 만들어져 전쟁에 동원되었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빵야는 하나의 도구가 되어 역사의 비극적인 현장을 지킨다.

나나는 빵야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고자 한다. 빵야가 전하는 이야기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각각의 에피소드로 구성되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다.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방아쇠를 당겨야 했고, 전쟁이 강요하는 바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빵야 역시 자기 몸에서 발사된 총알로 누군가 죽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던 존재다.

빵야는 전쟁을 겪어낸 평범한 존재들 중 하나다. 빵야에겐 총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고자 하는 꿈이 있었는데, 이는 전쟁으로 일상이 파괴된 무고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빵야의 꿈은 전쟁으로 무기한 연기되었고, 오늘날 누군가도 전쟁으로 인해 꿈을 무기한 연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래서 다음의 대사로 압축될 수 있는 빵야의 이야기, 평범한 존재들의 이야기는 슬프다.

"죽이기 위해 죽이는 총보다 살리기 위해 죽이는 총이 조금 나을까? 총은 총이야. 세상의 모든 총은 슬퍼."

세상의 모든 전쟁은 비극적이다. 비극을 독특한 방식으로 재구성해 전달하는 연극 <빵야>는 오는 5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김경수·전성우·김지온·원태민(빵야 역), 정새별·전성민·김지혜(나나 역) 등이 출연한다.
공연 연극 튤립 빵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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