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범죄 패밀리가 유명 여배우에게 저지른 일

[리뷰] tvN <벌거벗은 세계사>

찰스 맨슨은 미국의 범죄자로, 1969년 LA에서 무려 총 7명을 연달아 살해하는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저지른 '맨슨 패밀리'의 수장이다. 그는 어떻게 자기 손을 쓰지 않고 최악의 연쇄 살인 집단을 세뇌하고 조종하여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1960년대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으며 현대 형사법의 커다란 전환점이 된 사건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2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마약, 성관계, 살인에 빠진 가족, 맨슨 패밀리' 편을 다뤘다.

교육받지 못한 찰스 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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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맨슨은 1934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신시내티에서 출생했다. 그는 이미 12살 때 처음으로 절도를 저지르며 교정시설에 수감된 문제아였다. 여러 범죄로 소년원과 교도소를 전전한 탓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성장했다.

그렇게 17년을 감옥에서 보낸 맨슨은 32살이 되어 출소한다. 맨슨은 출소 후 버클리 대학교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던 메리 브루너를 만나 교제하게 되고,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 동거한다.

196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히피' 문화는, 사랑과 평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억압되지 않은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다. 당시의 히피들은 낯선 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쿨하고 힙하게 여겼다. 이러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 별볼일 없던 일개 잡범 출신이던 맨슨은 엘리트 여성인 브루너에게 접근하여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맨슨은 교도소에서 기타 연주를 배웠고 심리학 서적을 읽는가 하면, 감옥에서 만난 성매매 포주들을 통해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술을 배웠다. 맨슨은 사이비 종교인 '사이언톨로지'에 심취하여 종교 교리에 능통했고, 인간의 불안과 상처를 파고드는 대화법을 터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바탕으로 맨슨은 브루너처럼 주로 '마음속에 결핍이 있는 여성들'을 자신의 편으로 연이어 포섭하며 자기 패밀리를 구축한다. 가출 소녀였던 린넷 프롬과 수전 앳킨스, 성직자의 자녀였던 루스 앤, 집단 괴롭힘을 당했던 패트리샤 크렌윙클 등, 사회경험이 부족하고 불행한 어린 시절과 낮은 자존감을 지닌 10대에서 스무 살의 어린 소녀들을 주로 타깃으로 삼아 유혹했다.

맨슨은 히피 문화 특유의 사랑과 자유의 정신을 교묘한 화술로 왜곡했고, 마약까지도 사용하며 환각 상태에서 젊은 여성들을 세뇌했다. 여성들은 맨슨의 이야기를 어느새 종교 교리처럼 신봉하게 됐다. 이후로도 여러 여성과 남성들까지 맨슨의 집단에 합류하며 그 규모는 점점 커진다.

맨슨의 범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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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슨은 20여 명으로 불어난 범죄 공동체를 통제하기 위해 엄격하고 강압적인 규율을 도입한다. 맨슨은 멤버들에게 마약 복용후 집단 성관계를 강요했다. 탈출하려던 멤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붙잡혀왔다. 성착취를 당한 일부 여성 멤버들은 친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기도 했다. 패밀리 내에서 맨슨은 멤버 개개인의 주권과 비판적 사고를 말살하고, 마치 사이비 종교의 영적 지도자처럼 절대적 존재로 군림하기에 이른다.

급기야 맨슨은 종말론을 내세우며 백인우월주의와 흑인 말살을 위한 '인종전쟁'의 당위성을 합리화했다. 그는 '맨슨 패밀리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멤버들에게 살인 훈련까지 시켰다. 어느덧 멤버들을 완벽하게 세뇌한 맨슨 패밀리는 세상으로 나아가 잔혹한 범죄들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1969년 7월 31일 맨슨 패밀리는 마약 거래를 하던 게리 힌먼이라는 인물을 구타와 감금 후 잔혹하게 살해한다. 맨슨 패밀리가 저지른 최초의 살인 범죄였다. 실행범이던 바비 보솔레이는 경찰에 체포되었지만, 맨슨 패밀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범죄를 기획한다. '유명한 백인을 살해해 흑인의 소행처럼 위장하자'는 게 맨슨의 다음 구상이었다. 그리고 그 타깃이 된 게 1960년대 할리우드의 유명 여배우이자,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부인이었던 샤론 테이트였다.

1969년 8월 9일,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테이트-라비앙카 연쇄살인 사건'의 막이 오른다. 맨슨은 패밀리에게 명령을 내려서 샤론 테이트의 저택을 찾아가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필 샤론이 타깃이 된 것은, 그녀가 유명인이었고 부유한 백인들이 거주하는 LA의 고급주택가에 살고 있어서다. 맨슨은 샤론을 살해하고 흑인의 범죄로 위장하면 백인 사회의 분노가 커져서 인종 전쟁이 더 빨리 일어날 것으로 판단했다.

이날 샤론 테이트를 비롯하여 무려 5명의 피해자가 아무 이유 없이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당시 임신 8개월이었던 샤론은 마지막까지 살려 달라고 간절하게 빌었지만, 범인들은 오히려 욕설과 조롱을 퍼부으며 무시했다. 훗날 부검 결과 샤론은 흉기에 온몸이 여러 차례 찔려 과다출혈로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인들은 샤론을 살해한 후 그녀의 피로 현장에 글씨를 남기기까지 했다.

맨슨 패밀리는 샤론 일행을 살해하고 24시간도 안 되어 10일에는 또 다른 백인 상류층인 라비앙카 부부를 자택에서 또다시 잔혹하게 살해했다. 정작 찰스 맨슨 본인은 그동안 패밀리에 살인을 지시하기만 했을 뿐, 본인은 단 한 번도 직접 살인에 가담하지 않았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던 맨슨 패밀리는 정작 엉뚱한 곳에서 꼬리가 잡혔다. 사실 경찰은 초기에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맨슨 패밀리는 데스밸리 사막의 한 목장에 은둔하며 무법자처럼 생활하고 있었는데, 범행 약 한 달 후인 1969년 9월, 살인죄가 아닌 국가기물 손괴죄와 차량절도죄 혐의로 급습한 경찰에게 체포당한다.

맨슨 패밀리의 일원이었던 수전 앳킨스는 감옥에서 다른 수감자에게 "자신이 샤론 테이트를 죽인 진범"이라고 자랑하고 다녔다. 이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경찰은 비로소 맨슨 패밀리의 실체를 파악한다.

1969년 12월, 마침내 찰스 맨슨은 살인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체포된다. 하지만 맨슨은 "어떤 인간도 날 심판할 수 없다. 나를 심판할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라며 뻔뻔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당시만 해도 맨슨에게 살인죄의 주범으로 유죄판결을 내릴 수 있을지는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미국 형법상, 살인을 사주했지만 어쨌든 직접 실행하지 않은 이에게 살인죄가 인정된 사례는 이때만 해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수감 중에도 찰스 맨슨의 광기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재판받는 와중에 돌연 연필을 흉기처럼 쥐고 판사를 향하여 달려들거나, 스스로의 이마에 X자와 나치 문양을 새기는 등 온갖 돌발행동을 일삼았다. 강한 과시욕을 지닌 맨슨은 '사회의 법과 질서로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맨슨 패밀리는 맨슨의 무죄를 주장하며 법정 밖에서 시위를 벌이거나, 맨슨에 대한 영원한 복종의 의미로 길거리를 기어다니는 등 엽기행각을 일삼았다. 여성 멤버들은 재판받기 위해 법원 복도를 걸어가면서 서로 손을 잡고 찰스 맨슨의 자작곡을 합창하기도 했다. 미국 사회에서는 일부 청년들 사이에서 살인마인 찰스 맨슨과 그의 음악을 추종하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검찰은 찰스 맨슨이 직접 가담자가 아니어도 살인을 종용했기에 사전 계획을 통한 1급 살인 책임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해석했다. 맨슨 패밀리의 일원으로 살인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던 린다 카사비안이 "찰스 맨슨은 우리를 조종하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고 증언한 건 맨슨의 범행을 입증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971년, 맨슨 패밀리의 범행이 인정되어 결국 찰스 맨슨에게 사형이 구형된다. 하지만 1972년 캘리포니아주에서 사형제가 일시적으로 폐지되면서 맨슨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받게 된다.

맨슨이 감옥에 갇힌 이후에도 맨슨 패밀리의 광기는 멈추지 않았다. 1975년 9월에는 맨슨 패밀리의 일원이었던 린넷 프롬이 찰스 맨슨의 사상을 알리기 위하여 당시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의 암살을 시도하다가 체포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프롬은 암살에 실패하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맨슨이 세상과 단절된 이후에도 아직도 그의 추종자와 영향력이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맨슨은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83세까지 장수한 끝에 2017년 사망했다. 평생 죽는 순간까지 그는 자신의 범죄를 한 번도 반성하지 않았다. 생전 언론에서 수차례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맨슨은 앞뒤가 안 맞는 궤변을 일삼거나, 괴상한 표정을 짓고 춤을 추는 등 광기 어린 행각도 멈추지 않았다.

맨슨 패밀리 사건은 미국 형사법 역사에서 '살인 배후자의 책임'을 물은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으로 남아있다. 이로 인하여 마피아 보스, 사이비교주, 테러집단의 배후 등을 처벌할 때 직접 살인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살인죄로 처벌이 가능해졌다.

동시에 세뇌당하기 쉬운 약한 자아를 지닌 사람들만 골라 자신의 범죄행각에 이용했던 맨슨의 교활함과 광기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집단 세뇌와 맹신 앞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 경각심을 깨닫게 해준 반면교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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