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픔에 민감한 편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픔을 한 발 앞서서 상상하는 탓에, 그 두려움을 견딜 수 없어서 아픈 상황을 반복적으로 시뮬레이션하면서 둔감하게 만들고자 한다. 그래야 막상 아픔이 들이닥쳤을 때 덜 아플 것만 같아서다.
요즘 아픔의 주된 테마는 이별이다. 나의 부모가 십수년 후에 세상을 떠날 거라는 상실감, 벌써 6살이 된 고양이 보리도 언젠가 곁을 떠날 거라는 불가피한 슬픔.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은 켜자마자 피할 수도 없게 추천영상으로 9살 고양이가 고양이별로 떠났다는 영상을 띄워버렸다. 몇 년 전에 강박적으로 사람과 동물의 임종 영상을 찾아봤던 게 다행이었을까. 상실감은 아무리 예습해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영화 <햄넷>을 보면서 얼마 전에 느낀 불안감이 다시 엄습했던 건, 영화 속 아녜스와 가족들이 키우던 매가 숨을 거두자 숲에 묻는 씬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자신의 곁을 지켰던 동물을 보내주는 장면은 아녜스가 유년시절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비통했던 플래시백과 순식간에 연결된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 영화는 삶에서 피할 수 없는 모든 상실을 담아보고자 한다는 걸.
▲영화 <햄넷> 스틸.
유니버설 픽쳐스
기시감이 드는 '무엇', 그것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비평적인 관점으로 <햄넷>을 본다면 날선 언어로 마음껏 비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에 내포된 여성주의와 자연주의가 클라이막스와 불화한다, 셰익스피어의 대표 비극인 햄릿의 비화를 통속극으로 축소시켰다, 같은 평가로 말이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에우리디케는 이미 세상에 나온 수많은 이야기의 실마리로 활용하거나 변주해 왔다. 새로운 것 없는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햄넷>은 특별한 영화는 아닐 수 있겠다.
하지만 영화는 '무엇'도 중요하지만 '어떻게'도 중요한 예술이다. 삶의 상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만 하는지는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에서 이미 다뤘다. <햄넷>은 '무엇'이 무수히 많이 반복되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음에도, 기꺼이 삶의 모든 상실을 모두 담아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애쓰는 모습이 나를 무너뜨린다.
폴 매스칼이 연기한 셰익스피어의 우울은 그가 출연한 영화 <애프터썬>에서 왔고, 제시 버클리가 연기한 아녜스의 처연함은 그녀가 그간 선보인 연기의 총합이다. 막스 리히터의 '온 더 네이처 오브 데이라이트(On the Nature of Daylight)''는 이미 많은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사용된 음악이다.
<햄넷>은 반복된 주제와 익숙한 표현들, 통속성의 한계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상실의 물결에 휩쓸려버린 사람들, 그래서 마음 한 켠에 커다란 구멍이 나버린 사람들의 슬픔을 모두 끌어안고자 하는 만용을 기꺼이 부리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영화 <햄넷> 스틸.유니버셜 픽처스
예술은 어떻게 아픔을 덜어내는가
상실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누군가는 그것을 자신의 탓이라 여겨 죄책감에 몸서리치고, 누군가는 그 고통을 소리내어 표현하는게 서툴러서 홀로 괴로워한다. <햄넷>은 '햄릿'이 한 인간의 괴로움에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영화는 수 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는 '햄릿'을 위대한 예술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보지 않고,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쓰여진 아주 사적인 자기성찰과 위로라고 상상한다. 이런 상상은 역설적으로 원작자를 향한 존경과 함께,예술은 상실로 좌절한 이들을 위로하며, 그들의 곁을 떠난 사람들을 작가가 쓴 비극의 세계에 영원히 존재하게 함으로서 슬픔을 덜어낼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상실의 순간들이 앞으로 내가 겪어야 할 이별과 포개어질 떄마다 눈앞이 흐려졌다. 사실, 아픔을 미리 예습한다 하여도 정말 아픔을 덜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은 불가피한 상실의 고통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 아름다움만을 탐구하는 예술에 관심이 없었던 이유를 다시금 깨닫는다. 나에게 예술은 반짝이는 장신구나 고고한 궁전이 아니라, 인간이 슬픔을 견딜 수 있게 애써 마련한 감정의 수목장에 가까워서다.
<햄넷>은 상실의 슬픔을 모두 품는 숲을 자처한다. 그 가늠할 수 없는 위로의 크기에 안심하여 어두운 공간에서 소리죽여 울었다. 그렇게 예술은 훗날 맞닥뜨려야 할 이별에 마냥 슬퍼하지만은 않게, 잠시 아픔을 덜어낸다. 그것이 예술이라는 도구가 인간의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발명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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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 노동자 겸 플랫폼 노동자. 음악-영화-책 감상이 유일한 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