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성 "첫 멜로가 '파반느'라 다행... 내 안의 어두움 마주했어요"

[인터뷰] 영화 <파반느> 고아성 배우

 영화 <파반느> 스틸컷
영화 <파반느> 스틸컷넷플릭스

영화 <파반느>는 유토피아 백화점에서 일하는 세 남녀가 사랑을 계기로 청춘과 행복을 그려나가는 멜로드라마다. 각기 다른 상처를 품었던 세 인물이 어둡기만 했던 막막함 속에서 서로에게 빛이 되어준다.

박민규 작가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80년대 배경을 현재로 옮겨 온 노스탤지어가 짙게 깔린다. 제목 파반느는 왈츠보다 느린 춤곡을 뜻한다. 영화의 분위기도 파반느처럼 서정적이고 몽환적이다. 빠르게 변하고 휘발되는 시대에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가는 청춘에게 위로를 전하는 따스한 응원이 전해진다.

배우 고아성은 아역으로 데뷔해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 존재감을 각인하며, <설국열차>로 할리우드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오피스>로 성공적인 성인 배우로 변신을 마친 그는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유관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이자영,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 등 당당하고 꿋꿋한 한국의 여성 얼굴을 그려왔다.

영화 <파반느>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보다 앞서 준비한 작품으로 이종필 감독과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했다. 세상의 속도에 맞추지 않고 꾸준히 자기 길을 걸은 발자취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다. 활자 속 못생긴 이미지의 '그녀'를 불편한 시선을 피해 어둠 속으로 숨어든 '미정'으로 만들어내기까지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25일 종로구의 카페에서 만나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기다리던 첫 멜로

- <파반느>의 처음 준비부터 함께 했다. 다른 작품을 거절하면서까지 이 작품을 기다린 이유가 무엇인가.
"첫 멜로 영화로 <파반느>를 선보일 수 있어서 행복하다. 원작 소설을 좋아했던 독자였기 때문에 사랑이란 개념을 가볍게 다루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 멜로 영화를 한다면 캐릭터가 혼자 있을 때 씩씩한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 막연함을 미정으로 연기할 수 있어 좋았다."

- 10kg 증량하고 어둡게 꾸민 파격 변신이 도전 같아 보인다. 외적인 부분에 신경 쓴 부분은.
"첫 영화부터 하수구에 빠지는 특수 분장도 해봤기 때문에 크게 이질감은 없었다. 영화 <괴물>에서 만난 송종희 분장 감독님을 그저 믿고 의지했다. 영화 <은교>의 노인 분장,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의 주오남 분장을 한 대가다. 최세현 의상 감독님 역시 저의 장단점을 잘 알고 의상으로 표현해 주었다. 미정을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눈빛으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닫힌 마음을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에 집중해서 임했다."

- 원작보다 좀 더 구체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새롭게 해석한 부분이 있다면.
"영화는 외형적인 조건을 규명하기 위함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마음을 닫고 살아가던 사람이 처음으로 한 줄기 빛을 받으며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다고 생각했다. 미정을 대표하는 장면은 편지 내레이션이다. 얼굴은 등장하지 않고 목소리만으로 편지를 쓰고 있는 미정을 보여주는 데, 저는 편지 속 메시지를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미정이 본인의 실제 성격을 투영한 캐릭터란 말도 포함인가.
"근래 몇 년 동안 결핍은 있지만 자존감 높고 당당하며 올곧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캐릭터를 연기해 왔었다. 사실 내면에는 자신감도 부족하고 나약해서 들키기 싫은 후미진 구석이 있었는데, 그걸 숨기고 싶었던 것 같다. 미정은 어두운 저와 다시 마주쳐야만 연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슴 아팠지만 꺼내 두려 노력했다."

-미정의 표정이 점차 밝아지더라.
"<우아한 거짓말> <한국이 싫어서>에 이어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만 세 번째다. 활자로 접할 때와 시각화할 때 차이가 있는데, 배우로 한 발 떨어져 이 사이의 표현을 고민했다. 콘티 작업할 때부터 미정에게는 빛이 닿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조명 감독님이 미정의 주변까지 환해지는 빛 조절을 해주셨다."

- 하지만 미정은 또다시 숨어 버린다. 경록의 집 앞에서 '라면 먹고 싶다는 말'한 후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다.
"미정은 서서히 어둠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미정이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에 왜곡된 얼굴을 마주했을 때 내면이 바뀌었을 것 같았다. 미정의 집에는 애초에 거울이 없었을 것이고, 급히 밥상을 펴고 의도와 상관없이 옷장 속에 달린 거울을 보며 화장했을 것 같았다. 경록과 멘션 앞에서 헤어질 때도 긴 편지를 마음속으로 써 내려가고 있었다. 장미멘션 101호가 호랑이 이름 같다고 한 말도 주소를 기억하기 위한 장치다. 혼자만의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은 어땠을까 상상했다."

여전히 떠나보내지 못한 마음

 고아성 배우
고아성 배우넷플릭스

-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로 공개된 소감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작품도 처음이다. OTT 공개 시스템만 가능한 체계라 새로운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극장 영화 시스템과는 다른 체계를 경험해 보는 기회였다.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되니까 여러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 한 태국의 시청자가 '제 안의 미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말에 큰 용기를 얻었다. 다만 GV가 없어 한국 관객과 만나지 못해 아쉬운데, 특별 상영 정도를 할 수 있는지 관계자를 졸라 보고 싶다. (웃음)"

- 경록과 미정은 함께 할 때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경록 역의 문상민과 호흡은 어땠나.
"감독님과 리딩 중에 경록의 얼굴이 또렷하게 각인되었던 게 떠오른다. 오랜 시간 혼자만 연습했던 대사를 경록이 채워주니 감격했다. 경록은 쓸쓸함과 차가운 눈빛 안에 불타는 열정을 품은 속 깊은 친구였고, 그 에너지를 고스란히 전달받았다.

현장에서는 일부러 거리를 두어 최근에야 그가 유쾌한 성격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촬영하면서는 경록과 실제 사랑에 빠진 듯한 마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심쿵 했던 건 짧게 몽타주 신으로 지나갔던 경록과 미정의 데이트 장면이다. 밤새워 편의점 앞에서 웃음꽃을 피우고 첫차를 타고 일하러 갔는데 지하 창고로 경록이 찾아온다. 슬로모션으로 찍혔지만 촬영할 때는 리얼타임이잖나.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억 속에는 멀리서 미정을 바라보는 잔상으로 남아 있다. 촬영이 끝난 지금까지도 가슴이 저릿하고 경록이 어른거린다."

- 이종필 감독과 두 번째다. 재회한 소감은.
"한 감독님과 재회한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저를 다시 찾아 주실 때가 굉장히 기쁜데, 다음을 기대하게 해주었나 싶어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종필 감독님과는 생각보다 친하지 않다. (웃음) 적당한 거리감과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작업하는 관계다. 살갑고 친하게 지내는 분들을 보면 약간의 질투도 생기지만.. <파반느>처럼 세상의 속도에 맞추지 않고 감독님과 저만의 긴장감으로 계속 가고 싶다. 참고로 개봉을 앞둔 <극장의 시간들>이란 영화에서 영화감독 역할을 맡았다. 화면에는 등장하지 않고 목소리만 대부분 들어가는데 그동안 만난 감독님들의 성대모사나 모멘트를 흉내 냈다. 그 속에 이종필 감독님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웃음)"

- 후반부 아이슬란드 여행 장면, 초원을 달리는 인디언 장면이 인상적이다. 촬영 비하인드가 있다면.
"이런 촬영은 처음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장소가 정해지고 촬영에 들어가는데 헌팅 후 바로 감독님과 촬영을 시작했다. 이렇게 촬영해도 되나, 스태프와 함께 가지 못해 미정의 모습이 유지될까, 걱정했던 장면이다. 그리고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미정의 앞니 하나가 어긋나 있다. 그것만은 유지하고 싶어서 치아 장치를 혼자 끼면서 나름의 준비를 했다. 인디언 장면은 다양한 해석이 있길 바라면서 촬영했다."

- 첫 멜로 작품으로 <파반느>를 선택하며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어떤 의미로 남을까.
"아직 <파반느>의 감정이 지속되는데, 다음번에는 가벼운 멜로에 도전하고 싶다.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이종필 감독님이 삼각 구도를 좋아한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통해서는 한 시절의 우정과 연대감을, <파반느>의 경록과 요한을 통해 행복함을 느꼈다. 요즘은 <파반느> 후기를 즐겨보는 중이다. 본인의 청춘을 일깨워 주었다는 리뷰에 기분 좋은 행복감을 챙긴다. 사실 모든 편집을 마쳤다고 들었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놀랐다. 10년의 종지부를 찍는구나 싶어 우울감이 컸다. 떠나보내야 하는데 가슴 저린 상사병이 남아 있어 이걸 어째야 하나 걱정했다. 막상 영화가 공개되고 나니 저랑 비슷한 감정을 공유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해소되었다. <파반느>는 앞으로도 평생 저와 함께하는 작품이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더무비 에도 실립니다.
고아성 파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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