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배우가 전하는, 심장을 둘러싼 24시간의 기록

[안지훈의 연극 읽기]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온다. 곧이어 아직 무대에 오르지 않은 배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배우는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소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문장을 하나씩 읽어 내려간다. 드디어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배우는 서술자가 되어 소설의 이야기를 전하고, 이내 '시몽 랭브르'라는 청년이 되어 서핑을 즐긴다. 오전 5시 50분, 시몽이 파도에 도전하는 시각이다.

이후 펼쳐지는 24시간이 무대 위에서는 100분으로 압축된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케랑갈의 동명 소설을 연출가 에마뉘엘 노블레가 각색했다. 거센 파도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시몽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혼수 상태에 빠지고, 장기 이식을 권하는 의사와 혼란스러워하는 부모,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와 이식 수혜자 등의 시선이 교차한다.

지난 2월 4일 관람한 이 연극에 등장하는 크고 작은 인물은 총 16명, 여타 연극에 비해서도 그 수가 많다. 하지만 그 많은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는 오직 한 명이다. 한 명의 배우는 때론 서술자로 상황을 설명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인물에 분하며 홀로 무대를 지킨다. 심장 박동 소리와 함께 등장한 배우는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퇴장하지 않는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사진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사진프로젝트그룹 일다

심장을 두고 교차하는 관념·시선·인물

시몽은 1959년에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해에 일어난 수많은 사건 중에 연극이 주목하는 건 사망 기준의 변화다. 이전까지는 장기 기능의 정지가 사망의 기준이 되었다면, 그해 발표된 논문 한 편은 뇌 기능의 정지를 새로운 사망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인공적으로 심장 박동을 유지할 수 있더라도 영구적인 뇌 손상이 있다면, 의사는 사망을 선고할 수 있게 되었다.

응급실 의사는 시몽이 사망했다고 단정한다. 혼수 상태, 나아가 뇌사 상태에 빠진 시몽의 죽음을 온갖 의학 용어와 깔끔한 이미지를 통해 설명한다. 하지만 시몽의 부모는 아들의 죽음을 단정할 수 없다. 비록 의식은 없더라도 시몽의 심장이 뛰고 있어서다. 1959년 이전이라면 시몽은 죽지 않은 상태이겠지만, 지금의 시몽은 죽은 상태다.

그렇게 연극에서는 여러 관념과 기준이 충돌한다. 그리고 인물들도 충돌한다. 코디네이터는 시몽의 장기 기증을 권하며 장기 기증에 관한 생전 시몽의 의사가 어땠는지 알려 하지만, 부모는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부모의 눈은 소년의 몸을 향해 있지만, 의사나 코디네이터는 소년의 몸을 검사한 데이터를 바라본다. 장기 이식이 결정된 이후 시몽의 심장 이식을 맡은 의사는 저녁에 즐기고자 했던 축구 경기를 제쳐두고 병원으로 출근한다. 수술 후 시몽을 뒤로 하고 의사는 축구 경기 결과를 궁금해 한다. 부모는 제대로 잠들지 못한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사진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사진프로젝트그룹 일다

1인극으로 풀어낸 군상극

이 모든 일은 시몽, 더 정확히는 시몽의 심장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시몽의 심장은 멈추지 않지만, 시몽의 몸은 죽은 상태다. 시몽의 죽음은 곧 누군가의 삶으로 이어진다. 시몽에게 심장을 이식받은 중년 여성은 연극에서 유일하게 시몽의 몸을 대면한 적 없는 인물이다. 그녀는 진짜 시몽을 궁금해한다.

누군가는 심장 박동과 숨결로 시몽을 인식하고, 누군가는 데이터를 통해 시몽을 인식하며, 누군가는 이제 인식할 수 없는 시몽을 어렴풋이나마 인식하려 한다. 여러 시선과 인물이 교차하며 하나의 사건이 서술되는 극이다. 이를 1인극으로 풀어낸 시도는 훌륭하다. 과감한 시도는 몰리에르 어워즈 최우수 1인극상 수상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한국 공연에는 민새롬 연출가의 새로운 해석과 절제된 무대, 세련된 영상과 조명이 더해졌다.

총 네 명의 배우가 홀로 무대를 책임지며 연기한다. 배우 손상규와 윤나무는 2019년 국내 초연 이후 올해까지 다섯 번의 시즌을 책임지고 있다. 여기에 2022년 삼연부터 출연한 배우 김신록과 김지현이 올해도 합류했다. 공연이 끝나고 쏟아지는 박수는 100분으로 압축된 24시간을 홀로 버텨낸 배우 한 명을 위한 것 아닐까. 연극은 오는 8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이어진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사진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사진프로젝트그룹 일다
공연 연극 살아있는자를수선하기 국립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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