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이 울리고 무대 조명이 밝아오면 폐허가 된 세상에 널브러진 네 배우가 보인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엣이 상상 속에서 무형의 아이스크림을 찾아내자, 네 사람은 다시 연극을 하기로 결심한다. 산 정상까지 열심히 바위를 굴려봤자 다시 떨어질 걸 아는 시지프스처럼, 네 배우도 힘을 합쳐 돌을 굴린다.
지난 22일 관람한 뮤지컬 <시지프스>는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를 다룬다. 극중극 '이방인' 속 뫼르소를 통해 현대인의 삶을 조명하면서 이를 통해 출구가 보이지 않는 막막한 세상에서도 꿋꿋하게 행복을 찾는 배우들을 강조한다.
배역은 언노운, 포엣, 클라운, 아스트로로 구성된다. 언노운은 '정해지지 않음'이라는 이름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존재다. 포엣은 삶을 언어로 빚어내는 시인을 형상화한 인물이며, 클라운은 냉소와 열정을 동시에 지닌 복합적인 캐릭터다. 아스트로는 '별'이라는 이름처럼 순수함과 뜨거운 의욕을 상징한다.
네 명의 배우는 관객만 있다면 뭐든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폐허가 된 세상이나, 성별 등은 중요치 않다.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계속할 수 있다면 해나갈 뿐이다. 그들의 노력에 관객은 박수와 환호로 응답한다. 커튼콜은 싱어롱이 되어 극 중 넘버 '와이 쏘 시리어스'를 함께 열창하게 된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 사진뮤지컬 <시지프스> 출연 배우들이 무대에서 연기하고 있다.
오차드뮤지컬컴퍼니
남들과 다른 '이방인'의 깨달음
언노운은 극중극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를 연기한다. 그가 연기하는 뫼르소는 이방인이다. 남들과 달리 엄마의 부고에도 눈물 한 방울 없이 장례식을 마치고 신을 믿거나 회개하지도 않는다. 그런 그가 다섯 발의 총성을 울리고 살인죄로 기소돼 법정에 선다. 그가 밝힌 살인의 이유는 '태양이 뜨거워서'다. 도통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다.
'이방인' 속 사람들 뿐 아니라 배우들도 뫼르소를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연기할 뿐이다. 의미 없어 보이는 형벌에 묵묵히 응했던 시지프스처럼, 배우들도 이야기가 있으니 연극을 이어갈 뿐이다. 무의미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행위에 믿음과 의미를 더한다면 그건 무가치하지 않다.
이런 배우들의 이야기는 현실의 관객에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하기 어려워도 일단 해보는 용기를 전달한다. 우리에게는 이유 없이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러면 그냥 해보는 거다. 신을 놀린 죄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처럼,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일을 맞닥뜨린 뫼르소처럼 우리도 일단 해보면 된다.
더불어 배우들은 '이방인' 속 뫼르소를 통해 다름을 인정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의 재판 과정에서 예심판사와 벌이는 신앙에 대한 설전은 당시 모두가 같은 종교를 믿어야 했던 시대상을 전달한다. 뫼르소는 사형 집행을 앞에 두고 드디어 이유를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이 죽음뿐 아니라 삶 역시 외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뫼르소는 사형 집행 직전 그를 찾아온 신부들에게 지금 당장 알 수 없는 다음 생이 아닌 현재의 자신에게 집중해 달라고 요구한다. 삶을 마주함으로써 갇혔던 세상에서 '단 하나의 출구'를 찾은 뫼르소는 그제야 자신의 마음을 절실히 깨닫는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 사진뮤지컬 <시지프스>의 배우들이 공연 후반부 무대에서 연기하고 있다.오차드뮤지컬컴퍼니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 그 앞에 펼쳐진 무대
전쟁, 기후 위기 등으로 세상은 점점 나빠지는 것처럼 보인다. 망가져 버리는 세상 앞에 개인은 아무것도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질 수 있다. <시지프스>는 그 상실감과 무력감 앞에서 무엇이든 계속해 나갈 것을 주문한다. 오늘, 당장 이 무대가 끝나면 힘겹게 쌓아 올린 서사가 엎어지지만 때가 되면 다시 무대에 올라 또 이야기를 시작하는 배우들처럼 우리는 뭐든 해 봐야 한다.
무대 위 배우들을 이해했다면 무엇이 남을지, 이게 어떤 의미가 될지 고민하는 시간보다 무작정 일에 임해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나 환경이 있더라도,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껏 부정했어도 상관 없다. 포엣이 발견한 허상의 아이스크림을 부정한 클라운이, 다시 그 아이스크림을 찾아 포엣에게 건네는 것처럼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무대 위에서 함께 호흡하는 배우들처럼 현실 사회의 구성원은 서로에게 영향받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려워도 일단 해 보자.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한 배우들은 공연 말미 "더럽게 힘든데, 더럽게 행복하다!"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쉴 새 없이 춤추고 노래해야 하는 <시지프스>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 듯 보인다. 무대가 한 편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말에 공감하지 못할 관객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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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점점 나빠져 가는데, 포기할 수 없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