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 강자에서 세계 정상까지... 15살 '게임의 신'이 은퇴한 까닭

[넷플릭스 리뷰] < 1997 세계최강 아키라키드 >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약 30년 전인 1997년, 일본 도쿄 조이폴리스에서 최초이자 최후의 대전격투게임 세계대회 '맥시멈 배틀'이 열렸다. 종목은 당대 최고의 게임 버추어 파이터 3였다. 일본을 비롯해 영국, 싱가포르, 대만, 대한민국 등 7개국에서 선발된 최강자들이 맞붙었다. 96명이 본선에 올랐고, 12명이 결선에 진출했다.

모두의 시선은 종주국 일본의 플레이어들에게 쏠렸다. 당시 일본에서는 < 버추어 파이터 3 > 최강자에게 '철인'이라는 칭호를 붙여 스타처럼 대우했을 정도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 와중에 대한민국에서는 두 명이 본선에 참가해 결선까지 진출했다. 대학생 '이게라우' 조학동과 15세 중학생 '아키라꼬마' 신의욱이었다.

SBS 다큐멘터리 1997 세계 최강 아키라키드는 1997년 도쿄에서 열린 < 버추어 파이터 3 > 세계대회 '맥시멈 배틀'을 되짚는다. 당시를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기록은 천창욱씨가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다. 만화 잡지사 기자였던 그는 일본 출장 중 우연히 대회를 참관했고, 조학동과 신의욱의 일본어 통역을 도왔으며 현장 영상을 직접 촬영했다.

'게임의 신'이라 불린 15세 소년

 다큐멘터리 <1997 세계최강 아키라키드>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1997 세계최강 아키라키드>의 한 장면.SBS

오늘날 한국은 세계 최강의 게임 강국으로 불린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페이커' 이상혁, 스트리트 파이터 5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김관우, 철권의 '무릎' 배재민, 워크래프트 3의 '문' 장재호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이전에는 스타크래프트의 임요환과 홍진호가 있었다.

하지만 1997년, <스타크래프트>가 발매되기도 전 한국에는 이미 '게임의 신'이라 불릴 만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아키라꼬마' 신의욱이다. 그는 중학생 신분으로 '맥시멈 배틀'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더불어 '이게라우' 조학동은 2위에 올랐다. 일본 게임계가 들썩일 정도의 사건이었다.

순위도 놀라웠지만, 아키라꼬마가 선보인 경이로운 기술은 게이머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수라패왕고화산', '붕격운신쌍호장' 같은 고난도 기술을 실전 무대에서 완벽히 구현했다. 무엇보다 '코리안 스텝'이라 불린 3차원적 움직임은 게임의 차원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전격투게임 역사상 실전에서 처음 등장한 움직임이었다.

오락실, 청춘의 전장이던 시절

 다큐멘터리 <1997 세계최강 아키라키드>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1997 세계최강 아키라키드>의 한 장면.SBS

지금 40대 안팎의 남성들, 그러니까 1997년 당시 10대 후반이었던 이들에게 오락실은 학교 밖에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었다. 부모에게 혼나면서도 기어코 찾아가 돈을 쓰며 시간을 보내던 장소였다. 그리고 30여 년 전, 오락실은 대전격투게임의 전성기였다.

스트리트 파이터, 철권, 킹 오브 파이터즈, 버추어 파이터 등 실력이 좋으면 자리에 앉아 게임하고, 그렇지 못하면 서서 구경이라도 했다. 당시 < 버추어 파이터 3 >의 성지는 서울 대방동이었다고 전해진다. 전국 각지의 고수들이 모여 대전을 벌이고 대회를 열었다. 그중에서도 '아키라꼬마' 신의욱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했다.

서울을 제패하고, 전국을 제패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세계까지 제패한 그는 이후 자취를 감춘다. 2009년까지는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후 약 20년 가까이 공식적인 활동이 없었다. 제작진은 그를 찾아 나섰고, 당시 '맥시멈 배틀'에 참가했던 일본·대만 선수들, 그리고 한국을 주름잡던 고수들까지 차례로 만났다.

사라진 챔피언, 그리고 남은 질문

 다큐멘터리 <1997 세계최강 아키라키드> 포스터.
다큐멘터리 <1997 세계최강 아키라키드> 포스터.SBS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는 5편에 이르러 국내에 아케이드 형태로는 출시되지 않고 콘솔 중심으로만 유통됐다. 많은 유저가 자연스럽게 떠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1998년에는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를 필두로 PC방이 급속히 확산되며 오락실은 설 자리를 잃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게임 문화도 이동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신의욱이 밝힌 은퇴의 이유는 조금 달랐다. 그는 오랫동안 독보적인 최강자의 자리에 머물렀지만, 더 이상 자신을 위협할 상대가 없었다고 말한다. 부담과 지루함이 쌓였고, 결국 그는 지쳤다. 이후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것 또한 시대의 변화가 만들어 낸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 다큐멘터리는 더없이 반가운 기록이다. 당대 최고의 '게임'을 주제로 삼았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멀지 않게 느껴지던 그때가 이제는 역사의 한 장면이 되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기록될 것인가. 가능하다면, 열정과 희망이 담긴 장면이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1997세계최강아키라키드 버추어파이터3 맥시멈배틀 게임의신 열정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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