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녕하세요>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영화를 구성하는 사건은 얼핏 보면 대수롭지 않다. 동네 어른들은 사소한 계기로 오해를 키워 가고, 미노루와 이사무 형제는 TV를 사 주지 않는 부모에게 반발하며 침묵시위를 이어간다. 소소하고 귀여운 일상의 풍경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두 사건 모두 섬뜩한 통찰을 품고 있다.
특히 어른들, 그중에서도 주로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오가는 추측이 억측으로 변하고, 소문이 점점 악질적으로 진화하는 과정은 놀라울 만큼 사실적이다. 말의 성격이 변하고, 말 위에 말이 덧붙여지며, 사라진 말의 자리를 또 다른 말이 대신 채운다. 결국 '부녀회장에게 회비가 전달되지 않았다'는 단순한 사실은 온갖 말에 덮여버린다.
이웃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 만큼 가까운 사이지만, 각자의 삶은 미묘하게 다르다. 자연스레 감정이 생기고, 뒷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른들의 관계는 예의와 체면, 무용의 영역에 속해 있어 단순하게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는 속 시원히 해결되지 못한 채, 말만 계속 쌓여간다.
영화는 바로 이 지점을 미노루와 이사무 형제의 침묵시위를 통해 꼬집는다. 어른들이 예의를 차리고 체면을 지키느라 쓸데없는 말로 관계의 빈틈을 메우는 동안, 정작 진심과 진실은 전달되지 못하고 묻힌다는 점이다. 미노루는 침묵시위를 하자 아버지에게 "입 다물고 공부나 해라"는 말을 듣지만, 되레 "어른들이야말로 왜 쓸데없는 말을 하냐"고 반문한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좋네요", "별일 없죠?" 같은 말을 나누지 않냐는 지적이다.
형제의 침묵시위는 겉으로 보면 TV를 사 주지 않는 부모와 아버지의 꾸지람에 대한 반항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허비하고 관계를 소모하는 어른들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 동네 어른들은 "쓸데없는 말이야말로 관계를 이어 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라며, 무용한 것들 또한 삶에 필요하다고 맞선다. 단순한 아이들이 옳은가, 복잡한 어른들이 옳은가.
<안녕하세요>가 던지는 질문은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쓸데없는 말은 관계에 적당한 거리를 만들고 숨통을 틔워 주지만, 그것뿐이라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렇다고 말하지 않으면 오해와 억측, 소문이 난무한다. 모든 말을 곧이곧대로 해도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이 복잡한 균형을 적절히 조율하며 말해야 한다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숙제임을 영화는 조용히 일깨운다.
▲영화 <안녕하세요> 포스터.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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