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휴민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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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 하나의 목표로만 직진하는 역할인데, 레퍼런스 삼은 영화나 인물이 있나.
"참고한 영화는 많다. 감독님이 USB에 옛날 영화를 담아 주시거나 DVD를 빌려주기도 했다. 007 영화나, 프랑스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도 있었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버리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홍콩 영화 위주로 이야기했다. <첩혈쌍웅>, <영웅본색> 등 옛날 홍콩 영화에서는 '사내'를 그런 인물로 그렸다. 대체 저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 뭘 참고하라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웃음) 저는 주윤발이 아닌데 외모나 목소리로 주윤발을 연기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도 분위기라거나 취할 것을 얻기 위해 끝까지 봤다."
- 말이 많지 않은 박건의 감정을 어떻게 해석했고 표현하려고 했나.
"침묵이 너무 답답했다. 저는 대사에 기대는 편이라 말해야 감정이 나오는데 바라만 보는 게 어려웠다. 상대방은 오해하고 있고 진심을 알아줄지 갈등 섞인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데, 대사가 없어 힘들었다. 박건은 원리원칙주의자이고 갈등을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국가에 충성하는 이념적인 인간이라 선화가 떠난 거다. 그래서 모든 표현에 거칠다. 무언가를 잃은 심경의 변화, 무너져가는 신념을 말로 표현하는 건 어색하고 한 사람을 위해 싸우는 게 익숙하다. 그런 사람의 고독을 표현해야 했다. 오히려 가까이 접근하지 않고 떨어져서 표현해야 했다."
- 박건의 심리 변화로 전개되는 느낌도 크다. <헤어질 결심>에서 구축된 사랑의 화신 이미지가 꽃 피었다고 봐도 되나.
"배우는 내면에 없는 게 툭하고 나오지 않는다. 저를 차분히 뒤져보고 꺼내는 싸움이다. 저의 내면에서 순애보적인 모습을 찾아보려고 고민했고 그 가운데서 무엇인가 발현됐다고 생각한다. 다만 <휴민트>는 누군가를 구출하는 액션이라고 생각했지, 둘의 서사가 깊게 표현될지 몰랐다. 아무래도 세경씨가 합류하면서 멜로 기류가 짚어지는 느낌이었다. 액션 장르로 알았는데 어쩌면 멜로일 수 있겠다는 것을 촬영 중간에 알았다. 창가에서 선화의 노래를 듣는 장면 때문에 멜로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애틋함은) 물고문 장면에서도 발현된다. 사랑하는 여자가 잘못해서 잡혀 왔는데 고문을 할 거면 내가 하는 게 낫겠다 싶은 거다. 최소한 죽이지는 않겠다는 마음이다."
-옛 연인이자 단 하나의 사랑, 채선화를 연기한 신세경과 호흡은.
"신세경이란 배우에게 마법 같은 분위기가 있다.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아도 캐릭터로서 나를 바라봐 줄 때, 압도적인 분위기가 있다. 예전 군대 내무실에서 <하이킥>을 보는데 명확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장면이 기억나더라. 호흡을 맞출 때는 박건으로서 많이 기댔다. '내일은 신세경이 있으니까' 싶었고, 같이 촬영하지 않아도 그 장면을 기억하면 신기하게 집중되었다. 강단 있어 보이지만 지켜주고 싶은 양면적인 이미지가 함께 있는 배우였다.
선화나 박건의 행동은 우리끼리 만들어 낸 전사가 있었다. 그런 전사를 만들어 놓으면 도움이 된다. 선화와 찍었던 영상 속 말투와 지금은 다르다. 이별하면 상대가 보고 싶기도 하지만 상대와 보낸 시간이 그리워진다. 그때의 내가 그리운 거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선화를 발견한 후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싫어서 헤어진 게 아니라 부여잡고 싶었는데 여러 선택이 꼬여가면서 벌어진다."
- 총기 액션, 육탄전, 카 체이싱 등 가장 힘들었던 액션은.
"폐쇄된 공간에서 마피아 보스랑 싸우는 장면이다. 액션이 힘들었던 건 아닌데, 환경이 열악했다. 심지어 <하얼빈>에서 우진 선배랑 술집 배경으로 촬영했던 공간이다. 그때는 방 하나를 썼다면 이번에는 전체를 빌렸다. 핸드폰도 안 터지고 여러모로 힘들었다. 한두 시간 동안 말도 못 알아듣고 엉뚱한 말을 하곤 했다. 다들 저만 쳐다보고 있으니까 부끄러웠다. 회복이 잘 안돼서 애먹었는데 그날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않고 조용히 숙소로 돌아갔다."
- 정신적으로 무너졌을 때 다시 끌어올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누군가가 무너졌음을 인지해 준다면 다시 일어설 계기가 된다. 그날 감독님이 평소 저답지 않다는 걸 느꼈는지 끌어올려 주셨다. 하지만 현장은 늘 순조롭지만은 않다. 늘 저를 알아봐 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혼자 헤쳐 나갈 때도 있고 감독님이 도와줄 때도 있다."
- 전작 <얼굴>이 저예산 영화였다. <휴민트>는 대규모 상업영화라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
"두 작품 다 촬영할 때는 같은 마음이다. 다만 개봉 후에 <얼굴>은 부담이 없다. 잘 되면 좋지만 안 되었다고 해도 '좋은 시도였다'하면 회복이 빠르다. 반대로 큰 영화는 배우로서도 부담이 있지만 책임은 나눠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결과 때문에 긴장되기도 한다. 아무쪼록 관객이 잘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 <휴민트>는 액션과 멜로 중 어디에 방점을 찍어야 할까.
"액션도 감정의 표현 중 한 방법이다. 액션에 박건을 입히라면 감정을 실어 주어야만 한다. 총을 쏘면서도 누굴 바라보고 보호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했다. 특정 장르를 구분 짓기보다 박건의 마음을 보여주려고 했다. 감독님도 기존 영화와는 다르게 고전적인 색깔로 첩보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었다. 저도 처음으로 사랑하는 이성을 목표로 질주하는 역할을 했다. 예전에 '멜로를 연기하는 박정민을 볼 관객의 알레르기 반응을 걱정한다'고 했던 적이 있다. 멜로를 기피한 건 아니었는데, 누가 궁금해할까 했던 거다. 이번에 해보니까 (제 눈에)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고 평가도 나쁘지 않아 용기를 얻었다. '이 정도면 됐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웃음)"
▲박정민 배우샘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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