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이지 않아도 괜찮아...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의 힘

[김성호의 씨네만세 1274]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안녕하세요>

많은 이들은 영화란 극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도 얼마쯤은 그러해야 한다고 여긴다. 극장에서 유료 관객을 상대로 하는 매체적 형식부터가 관객의 남다른 기대를 상정하니 말이다. 그러나 어디 그렇기만 할까. 일상에선 좀처럼 없을, 한 인간의 삶 가운데서도 지극히 이례적인 사건만이 영화가 될 수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적어도 여기 의문을 제기하는 몇몇 감독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즈 야스지로, 그러니까 일본 영화계가 배출한 역사상 가장 훌륭한 감독 중 하나로 거론되곤 하는 거장이 그 대표주자라 할 만하다. 구로사와 아키라와 함께 지난 시대 일본 영화계를 대표하는 인물임에도 그 영화적 색채는 정반대다.

<란>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 등의 걸작을 내놓은 구로사와 아키라는 시대를 건너 그 압도적인 박진감과 몰입감을 확인케 하는 반면,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선 줄거리는 물론이고 연출 방식에 있어서까지 극적이거나 동적인 요소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 두 감독이 있어 일본 영화계는 하마구치 류스케와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 또 다른 거장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오늘의 폭넓은 영화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을 테다.

안녕하세요 스틸컷
안녕하세요스틸컷엣나인필름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가 이 시대에 통할까?

둘 중 한 사람을 이 시대에 불러올 수 있다면 누구를 택해야 할까. 시대적 유효함을 지닌 감독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구로사와 아키라를 말할 것이다. 그건 만들어진 지 반세기가 훌쩍 넘는 그의 영화들이 오늘의 관객을 사로잡고 경탄케 하기 충분한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 이후 얼마나 많은 감독들이 나오고 또 나왔던가. 그러나 세상엔 그만큼 자질 있는 작가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오즈 야스지로는? 자의든 타의든 도파민에 절여진 현대의 뇌에 오즈 야스지로의 작법이 먹혀들 것이라고 나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안녕하세요>가 이달 개봉한 건 그래서 내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이 영화가 오늘의 한국에 과연 유효한 작품인가를 의심하게 되는 때문이다. 영화는 한국서 첫 개봉이 아니다. 일본 대중문화 수입이 전면적으로 개방된 이후인 2004년, 무려 반세기 가까운 시차를 두고 한 차례 개봉한 바 있다. <안녕하세요> 뿐 아니라 오즈 야스지로 일련의 대표작들이 함께 개봉해 전설로만 여겨져 온 그의 작품세계를 한국 관객 앞에 선보인 바 있었다. 당시 흥행 성적이 썩 좋지는 않았으나 그의 작품을 극장 환경에서 보려는 일군의 영화팬들에겐 귀한 기회가 되었다.

그로부터 다시 20여 년이 지났다. 이제 막 멀티플렉스가 자리 잡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상영 환경이 변하던 당시와는 또 다른 세상이 열린 오늘이다. 사람들은 그 시절보다도 훨씬 더 짧고 빠른 호흡의 영상에 익숙하다. 스마트폰이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영상 콘텐츠를 들이민다. 그저 들이밀 뿐 아니라 끝없이 그 세계를 맴돌도록 하는 알고리즘 또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사람들은 영상을 그저 수용만 하지 않는다. 극장이란 상영 환경에서 일방적으로 영상을 수용하는 방식을 대중이 버거워하게 된 건 언제든 쉽게 손가락 하나로 영상을 멈추고 넘기는 일에 익숙해졌기 때문이겠다.

안녕하세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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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만 TV 없어!

<안녕하세요>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세계가 가진 특성이 여지없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1950년대 일본 교외 주택가 마을이 영화의 배경이다.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형제 미노루와 이사무는 부모님, 또 고모와 한집에서 산다. 아버지는 그 시절 가장 보통의 가장인 듯, 과묵하고 엄격한 성품. 집안 살림을 꾸려가며 두 아들을 챙기는 엄마는 옳고 그름이 확실한 성격이다.

직장 생활로 바쁜 고모가 아이들에겐 가장 다정하지만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지는 않다. 남다를 것 없어 보이는 이 집안, 그리고 이들이 얼마 다르지 않은 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이 영화 <안녕하세요>가 그리는 이야기다.

라디오에서 TV로, 매체가 변화하던 시절이다. 한창 보급되던 TV가 미노루와 이사무의 집에는 없다. 그래서 늘 옆집 친구네 가서 보고 오고는 하는 것이다. 옆집 TV에서 중계해 주는 스모경기가 어찌나 재밌는지, 이제 더는 라디오를 듣는 게 재미가 없어졌다. 조금 과장을 보태 '우리 집만 TV가 없어!'하고 말하는 형제. 그러나 부모님은 TV를 사줄 기미가 전혀 없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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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사줄 때까지 입도 뻥긋 않겠다는 형제

아이들에겐 아이들의 사정이, 어른들에겐 또 어른들의 사정이 있게 마련이다. 영화는 그 두 가지 사정을 절묘하게 겹쳐놓는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오해가 쌓이고 쌓인 탓으로, 엄마는 옆집 아주머니와 어딘지 껄끄러운 관계가 된다. 그래서일까. 아들들에게 더는 옆집에 가서 TV를 보고 오지 말라고 야단을 치게 되는 것이다. 미노루와 이사무에게 TV 없는 삶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운 일. 그리하여 아이들은 저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강경한 대책을 세운다. 아무에게도, 어떤 말도 하지 않는 무언투쟁이다.

그로부터 영화는 어떤 말도 하지 않는 소년들의 결정이 불러오는 일련의 파급을 비춘다. 아이들이 인사에도 대꾸를 않자 어떤 어른들은 '저 집 아줌마가 내게 말하지 말라고 했나'하는 오해도 한다. 어디 그런 오해뿐일까. 저들이 무언투쟁에 나선 이유조차 말을 않는 이들로부터 알아낼 수 없는 상황. 오해는 풀리지 않고 갈수록 쌓여만 간다.

흔히 거장의 작품에서 기대할 법한 대단한 무엇을 이 영화가 품고 있다고는 할 수 없겠다. 다만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세계를 상징하는 정적인 연출, 또 사람들 눈높이보다 낮게 위치한 소위 다다미샷은 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기교 대신 움직이지 않는 낮은 카메라로 포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치 극이 아닌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마저 일으킨다. 극적 연출이 아닌, 현실의 재현이랄까.

안녕하세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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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삶 비추는 정적인 카메라의 힘

<동경이야기> <만춘> 등과 같이 소박한 가족의 삶을 다룬 영화다. 가정을 이룰 것을 고민하는 청년과, 만만치 않은 삶을 최선을 다해 꾸려가는 어른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지탱하는 지붕 아래 아이들은 건강하게 커 나간다. 사회의 밑바탕이란 결국 가족, 그리고 가정이라고 말하는 듯한 오즈 야스지로의 세계는 대단할 것 없지만 뭐 하나 빠진 것 같지도 않은 안온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자극적이지 않은 시트콤을 보듯이 잔잔하지만 유쾌한 순간도 여럿이다. 편안하고 무해한 감상, <안녕하세요>를 보고 난 관객이라면 분명히 그와 마주할 것이다.

영화를 보며 시대적 유효함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1959년 작, 오래된 일본 고전영화를 오늘 한국 극장에 다시 거는 일의 의미를 떠올린다. 오늘의 관객에게 팔릴 만한, 관객들을 압도하고 충격에 빠뜨릴 작품만이 다시 극장에 걸릴 가치가 있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을 수 있겠다. 새롭지 않아도, 자극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이토록 평범하고 평이한 이야기가 도리어 영화의 기본을 돌아보게 하지 않는가.

<안녕하세요>가 가진 것과 갖지 않은 것을 따져보는 일도 흥미롭다. 오즈 야스지로의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카메라가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멈춰 있는 카메라는 영상과 관객 사이에 공간을 둠으로써 보는 이의 사고를 일깨운다. 반면 움직이는 카메라는 보는 이의 주의력을 붙들어 영화와 객석 사이를 좁힌다. <안녕하세요>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관객은 영화에 의해 이야기로 끌려오지 않는다. 스스로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 충분한 거리, 시선, 시간이 주어진다. 오즈 야스지로의 세계는 초대할 뿐 압도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여유, 그리고 다정함이 이 시대 그의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한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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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