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보와 복희는 서로 티격대면서도 필요할 때 힘을 합치고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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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조직에 '미쓰 홍' 금보가 고졸 여직원으로 위장해 들어간다. '여의도 마녀'라 불릴 만큼 철저하게 비리를 찾아내는 증권감독원의 에이스 금보, 그는 한민증권의 비리를 캐내려 잠입수사를 시작한다.
스무 살 여상 졸업생으로 위장한 금보는 다른 여직원들처럼 유니폼을 입고 일한다. 근무 시간 내내 수시로 이런 말을 듣는다.
"커피 좀 타와."
"거기가 어디라고 앉아?"
"똑똑하고 노안인 여자애를 어디다 써?"
드라마 속 대부분의 여직원들은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이런 모욕을 참아내며 지낸다. 금보는 다르다. 작전상 필요할 때는 전략적으로 이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하다가도 선을 넘으면 돌직구를 날린다. 3회의 "여자들은 참 살기 편해. 미인계, 육탄전 이런 거 부릴 시대가 아닌데 그치?"라고 비아냥거리는 중일에게 "차중일 부장님. 그 입 좀 다무세요. 이제 그런 시대 아니니까"라고 응수하는 모습은 2026년을 살아가는 내게도 속 시원한 장면이었다.
금보는 어떻게 다른 여사원과 다르게 이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 금보가 나는 '증권감독관'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기에 가능한 태도 아니었을까. 독립되고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금보는 자신의 가치를 가부장 조직의 평가에 의존하지 않는다. 때문에 '막말'에도 주눅이 들지 않고 대응할 수 있었을 거다.
게다가 금보 곁에는 기숙사 룸메이트 3인방 복희(하윤경), 미숙(강채영), 노라(최지수)가 있었다. 고졸 출신으로 유일하게 사장 비서 자리까지 올라간 복희는 가정폭력 생존자다. 복희는 친오빠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사를 자주 바꿔가며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미숙은 미혼모지만, 생계를 위해 딸 봄(김세아)을 보육원에 맡기고 기숙사 생활을 한다. 봄의 아빠는 임신 소식을 듣고 연락이 끊겼다. 둘은 모두 남성의 폭력으로 인해 고생하는 처지다.
노라는 스스로는 원하지 않지만, 필범과 이혼한 엄마 인자(변정수)가 원해서 회사에 입사하고 후계자 구도 속으로 떠밀린다. 하지만 또 다른 후계자 후보인 필범의 손자 알벗(조한결)과는 처지가 다르다. 알벗 역시 스스로가 기업을 이어받길 원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그는 '본부장'이다. 하지만, 노라는 고졸 신입사원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 노라는 복희와 미숙과는 달리 기득권 세력에 속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도구'로 쓰인다는 면에서 역시 가부장 사회의 폭력에 노출된 존재다.
4인방의 연대
▲미쓰 홍과 기숙사 룸메이트들은 비리의 온상 한민증권에 균열을 낸다.tvN
이들과 금보는 각자의 비밀을 간직한 채 한 집에서 생활한다. 그리고 그 비밀 때문에 경계하고 의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를 대하는 마음엔 '연민'이 있다. 금보가 회사에서 중일에게 대들다 부당한 업무 지시를 받았을 때, 금보에게 늘 퉁명스럽던 복희는 금보를 돕는다(3회). 미숙의 딸 봄의 존재가 알려졌을 때도, 이들은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봄을 받아들인다. '원칙주의자' 금보는 봄이 기숙사에서 지내는 걸 반대하기도 하지만, 봄이 아팠을 때 봄을 도우며 결국 봄과 우정을 쌓아간다.
연민을 가지고 서로를 대하는 이들은 누군가가 '폭력'에 노출되었을 때는 연대해 힘을 모은다. 6회 가정 폭력범인 복희의 오빠가 출소해 복희가 두려워할 때 이들은 함께 대응하면서 서로를 돕는다. 때론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힘든 순간에 함께 해주는 이들의 자매애는 자기 자신과 서로를 지켜가는 힘이 되어 준다.
물론, 모든 여성이 이들과 같은 건 아니다. '명예 남성'으로 여성들을 더욱 도구로 대하는 송주란 실장(박미현), 그리고 오직 남성의 눈에 들어 딸을 이용해 부를 누리고자 하는 노라 엄마 인자도 있다. 이들은 어쩌면 가부장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도구화하기로 마음먹은 이들일 테다. 하지만 6회 인자는 주란에게 "자기야 내가 남자한테 기대서 한심하게 사는 여자로 보여? 그럼 넌 나와 뭐가 다른데?"라고 말하듯, 이들 역시 남성 의존적인 자신들의 한계를 알고 있는 듯했다. 앞으로 극이 진행되면서 이들이 자신을 세워가는 과정도 그려지면 좋겠다.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금보의 첩보전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갖고 당당히 대응하는 금보는 여성들을 '수동적'으로만 봤던 한민증권의 직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또한 서로 다른 처지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필요에 따라 힘을 모으는 여성 4인방의 연대는 한민증권 비리의 온상들에게 조금씩 타격을 주고 있다.
현실에서도 이런 여성들의 당당함과 연대가 있었기에 1990년대보다는 조금 더 평등한 오늘을 살게 된 것 아닐까. 이들처럼, 스스로에게 확신을 갖고, 타인을 연민의 마음으로 대하면서 연대할 수 있다면 우리 역시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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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