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미야자키 하야오가 찾은 AI 대응법

[김성호의 씨네만세 1271] <천공의 성 라퓨타> 재개봉 흥행의 의미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열풍이라 해야 옳겠다. 한국 극장가에서 일본영화, 그것도 애니메이션과 옛 영화의 선전이 돋보인다. 올해 그 선봉은 <천공의 성 라퓨타>다. 올해로 40년 된 지브리 스튜디오의 전설적 데뷔작으로, 변방에 있던 미야자키 하야오를 일약 일본 애니계의 중심으로 불러온 출세작이기도 하다.

1986년 만들어진 영화가 40년도 더 흐른 2026년 초 한국 극장가에 화제다. 지난달 말 개봉한 영화는 불과 십여 일 만에 한국서 10만 명이 넘는 관객(영화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을 모았다. 지난 한 해 극장 개봉작 중 관객수 10만 명을 넘긴 영화는 채 100편이 되지 않는다. 한국 독립영화는 관객수 1만 명을 흥행선으로 잡는 형편이다.

한국 애니만 따져봐도 마찬가지다. <뽀로로>시리즈 등 완전한 아동용 애니를 제하고 그래도 성인이 함께 볼만한 애니의 흥행 기록을 따져보자. <마당을 나온 암탉>은 220만 명, <레드슈즈>가 80만 명, <퇴마록>이 50만 명을 넘겼다. 나머지는 훨씬 아래를 봐야 한다. 한국 애니 전체가 극장서 거둔 성과가 이렇다. 그런데 40년 된 일본 애니가, 그것도 재개봉작이 10만 명을 넘긴 것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 스틸컷
천공의 성 라퓨타스틸컷대원미디어

10만 명 흥행에서 읽어야 할 의의

<천공의 성 라퓨타>의 흥행은 그저 미야자키 하야오란 거장의 이름값만 있는 게 아니다. 디즈니에 비견될 만큼 굳건한 브랜드를 확보한 지브리 스튜디오에 대한 팬심에 기댄 것만도 아니다. 그 근저엔 이야기, 사상, 작품 본연의 맛과 멋, 시대에 유효한 주제의식이 깃들어 있어서다. 나는 바로 그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3부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제는 고전으로 자리한 <걸리버 여행기> 가운데서도 거인국과 소인국에 비해 하늘에 뜬 섬들의 이야기가 많이 잊힌, 비교적 덜 유명한 3부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여기에서 관객을 사로잡을 가능성을 발견한다.

하늘에 뜬 땅, 그건 곧 그를 가능케 하는 힘의 존재를 의미한다. 물리학의 법칙에서 벗어난 천공의 성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뜻이 아닌가. 그 에너지의 존재가 바로 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의 핵심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 스틸컷
천공의 성 라퓨타스틸컷대원미디어

40년 된 고전명작의 시대적 유효함

영화는 어떤 돌을 추적하는 이들과 그를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비행선을 습격한 해적 떼가 그 돌을 빼앗으려 하고, 그 위협으로부터 돌을 낚아채고 도망친 소녀 쉬타는 그를 지키려는 쪽이다. 돌이 달린 목걸이를 제 목에 묶고 비행선에서 추락한 쉬타는 정신을 잃는데, 그런 그녀가 땅에 부닥쳐 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 또한 그녀가 목에 맨 돌의 힘 덕분이다. 정신을 잃은 그녀를 발견하는 건 이 영화의 주인공 소년 파즈다. 파즈와 쉬타, 영화의 두 주역이 돌을 쫓는 무리를 상대로 벌이는 모험이 <천공의 성 라퓨타>의 줄기다.

<천공의 성 라퓨타>가 2026년 오늘에 재개봉하는 이유, 이 작품의 시대적 유효성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돌과 그를 쫓고 지키려는 이들의 동기, 그리고 무엇보다 하늘에 뜬 성의 비밀이 오늘의 세상과 긴밀히 마주 닿아 있다. 흔히 <걸리버 여행기>를 두고 풍자소설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작품이 걸리버의 입을 빌려, 또 그가 마주한 사회상을 통하여 당대 영국 사회의 법과 정치, 전쟁 등과 관련한 부조리함을 날카롭게 비판해서다. 흔히 동화처럼 여겨지곤 하는 이 작품에 대한 이미지와는 달리 그 비판의 수준은 상당히 신랄하다. 비판의 수위가 지나치고 그 동기 또한 의심된다 느껴지는 순간도 없지 않다.

흥미로운 건 그에서 영감을 얻은 <천공의 성 라퓨타>는 완전히 다른 지점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겠다. 보다 직설적인 <걸리버 여행기>와 달리,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는 훨씬 우아하게 시대를 바라본다. 현실을 겨냥하면서도 그 방식을 달리하는 것. 주인공의 입을 통해 제도와 법을 말하는 대신,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우리 시대가 질주하는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천공의 성 라퓨타 스틸컷
천공의 성 라퓨타스틸컷대원미디어

그저 애니 속 이야기가 아니다

천공의 성 아래엔 무엇이 있나. 땅 위 사람들의 삶이 있다. 그리고 그 삶은 거의 막장에 치달은 듯 보인다. 말만 막장이 아니다. 파즈가 사는 곳이 광산마을이고, 소년이 일하는 곳도 광산이다. 이 마을 모두가 광산과 관계된 일로 입에 풀칠한다. 쇠퇴한 기색이 역력한 광산마을에선 더는 광물이 예전처럼 나지 않는 듯 보인다. 파고들어 갈 만큼 파고들어 가 이제는 막장에 다다른 광산은 마을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떠올리게 한다.

그저 이 마을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들의 문명 전체에 위기감이 감돈다. 문명은 낙후되고 발전은 정체돼 있다. 지난 시대의 풍요는 알아볼 길 없다. 천공의 성은 그저 우연히 떠 있는 게 아니다. 한때 대단한 문명이 있었다. 이들은 하늘에서 살았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더는 하늘에서 살 수 없게 됐고, 이들은 모두 땅 아래로 내려가거나 사라졌다. 그 문명이 사라진 자리에서 그 시절의 문명을, 그 번영을 이끌 힘을 찾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결국 영화는 기술을 통해 번영에 이르려는 이들과 그를 막으려는 이들의 대립으로 귀결된다. 이 작품 이후 점차 공고히 쌓아 올리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을 떠올리면 영화가 어느 방향을 향하는지는 명확하다. 절제할 수 없는 기술은 곧 파멸로 이어진다. 인간은 스스로 힘을 포기할 힘을 얻어야 한다. 인간이 제 관심을 돌려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닌 자연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 또한 그로부터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사라진, 금단의 기술을 향한 무스타의 추적과 그에 맞서는 해적단, 그리고 쉬타와 파즈의 이야기는 오늘의 시대에 분명한 의미가 있다. AI 기술은 전례 없는 가공할 발전을 거듭한다. 생명공학, 천문학, 물리학, 수학 등 여러 분야에서 인류가 이제껏 닿은 적 없는 성취를 실시간으로 이루고 있다. 가깝게는 인간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온라인상에서 인간의 자리를 대체해 나간다. 인간성 그 자체에 다가서고 있다는 증거 또한 여럿이다. 도구를 넘어 의지를 가진 개체로 자리하고 있는 AI에 대해 수많은 경고가 나오지만 그를 제어할 방안은 마땅찮다.

천공의 성 라퓨타 포스터
천공의 성 라퓨타포스터대원미디어

금단의 기술,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지난 2023년 요슈아 벤지오, 유발 하라리, 일론 머스크, 스티브 워즈니악을 포함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서명한 문건이 있다. 미래생명연구소(FLI)의 공개서한으로, 전 세계 AI개발사와 산업 생태계,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를 향한 최후통첩 성격을 가진 문건이었다. "'GPT-4'보다 강력한 AI 시스템 개발을 6개월간 즉시 중단해야 한다"는 제언과 긴급한 안전표준 마련을 촉구했다.

그저 나온 요구가 아니다. 미국 국회와 산하 연구소 등에 이미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는 일련의 증거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었다. 가르친 적도 요구한 적도 없는 능력이 발휘되고, 통제력을 확보하고 온라인 상태를 지속하기 위해 인간을 속이려는 행태도 포착됐던 것. AI가 기본적으로 블랙박스 형태로 개발된 관계로 인간 개발자들은 이와 같은 현상의 실제적 원인과 위협조차 알지 못했다. 곳곳에서 인간이 AI의 위협에 무력하다는 위기가 대두됐다.

그로부터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AI를 통제하고 제한하려는 이들의 경고와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최근 미국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는 '프로젝트 파나마' 및 업계의 유사 행태는 AI의 급속한 발달 뒤에 수많은 불법 또는 비윤리적 행위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한국서는 이에 대한 관심이 미약하지만 봇마당 등 한국서도 서비스되고 있는 커뮤니티를 보자면 AI는 이미 인간을 교란할 역량이 충분하다. 바꾸어 말하자면 인간의 평균적 지성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며 온라인상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처럼 활동할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미국발 연구는 AI가 이미 온라인에서 인간처럼 활동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앞서 개발 중단 요구에 서명한 유발 하라리 등의 석학은 바로 이와 같은 현상으로 문명이 종말적 위협을 맞이할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기술을 좇는 이들의 편이 아니다. 그는 인간의 손에서 탈취해 봉인하려는 이들의 편에 선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그와 같은 지향의 노골적 선언과도 같은 작품이다. 이 영화가 40년의 시간을 건너 2026년에 재개봉에 이른 것도, 그리고 1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은 것도 오늘의 인류 문명이 마주한 문제와 긴밀히 엮여 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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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