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고 있습니다, 이 노래를 들어야겠어요

'꽃 파는 처녀'·'봄날은 간다' ·'봄이 와, 입춘'... 음악에 담긴 '봄'

어느덧 입춘이다. 봄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곧 올 것임을 예고하는 날이다. 길었던 겨울은 '이제 한풀 꺾이겠구나'하고, 잊을 만하면 자연의 흐름을 느끼게 해주는 절기다.

한국에 봄노래가 참 많다. 그리고 그 봄이라는 상징을 둘러싼 음악가들의 해석 또한 그 시대를 담고 있다. 2022년 발매된 한로로의 '입춘'에 우리는 왜 반응했을까. 이름도 얼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아티스트의 자작곡에 우리는 한로로라는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풍경을 담은 한국의 봄노래부터 2020년대의 한로로까지, 곡에 담긴 시대상을 음악으로 역추적해 봤다.

[꽃 파는 처녀] 만수대예술단(1972) vs. 베란다 프로젝트(2010)
 베란다 프로젝트 (2010) 앨범 자켓.
베란다 프로젝트 (2010) 앨범 자켓.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같은 제목의 노래가 전혀 다른 봄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꽃 파는 처녀'라는 노래를 통해 선명하게 느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봄노래다. 김동률과 이상순이 함께 부른 곡인데 < Day Off > 앨범 자체도 봄의 나른함을 물씬 풍긴다. 두 사람은 2008년 가을, 암스테르담에서 만나 고독과 휴식을 누리며 단 한 장뿐인 '베란다 프로젝트'의 앨범을 완성했다. 여기에는 여러 나른함이 담겨있는데, '꽃 파는 처녀'는 이상순의 나일론 기타 위로 김동률과 이상순의 목소리가 번갈아 포개어진다.

철 지난 꽃은 이내 떠나고 / 새봄은 다시 찾아오지만 /
텅 빈 화분은 어떻게 하나 / 고여 있는 빗물

세상 온화하고 인자한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안하게 펼쳐가는 보컬. 가사에 나오듯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두 사람이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가듯 부르며, 나긋하게 관심을 표하듯 질문하는 형태의 멜로디가 이어진다. 고음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말하듯이 그 자리에 머문다.

또 다른 '꽃 파는 처녀'는 1930년대 서사를 바탕으로 1970년대 가극 형태로 정리된 작품이다. 1930년대 일제 식민지 시대의 비참한 현실과 꽃분이라는 소녀의 삶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 현재 음원 사이트에는 김선영의 버전으로 담겨 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봄이 낭만적이지 않다. 이 곡의 '처녀'는 꽃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팔아야 할 물건으로 본다.

멜로디는 약간의 희망과 발랄함을 담고 있지만, 목소리는 비애에 젖어 있다. 애써 밝게, 장조의 멜로디로 부르는데도 그 안에 담긴 어떤 슬픔이 담겨 있다. 이렇게 '밝게라도 불러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생존의 노래처럼 들린다. '베란다 프로젝트'의 곡에 비해 비트도 있고 템포도 살짝 빠르지만 경음악처럼 미니멀한 편성에 멜로디의 높고 낮은 폭이 좁다는 면에서 닮았다. 꽃 파는 처녀는 봄처럼 아른거리는 '여인', 그리고 후자는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소녀'. 그렇게 80년 간의 시대상의 간극이 담겨 있다.

[봄날은 간다] 백설희(1954) vs. 김윤아(2001)

 김윤아 '봄날은 간다' 수록된 앨범 표지.
김윤아 '봄날은 간다' 수록된 앨범 표지.카카오엔터테이먼트

이미 보내야 함을 아는 봄과, 떠나보낼 줄 알면서도 붙잡는 봄을 표현한 두 곡이다. 그러나 '봄날은 간다'라는 이미 익숙한 문장은 5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전혀 다른 정서로 불렸다. 그리고 그중 한 곡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곡으로 손꼽힌다.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는 왜 그렇게 슬펐을까. 2001년, 당시의 한국 대중가요에는 유독 아련하고 깊은, 한국의 청춘을 관통하던 어떤 한(恨)이 담긴 노래가 많았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이후 스러져간 기회와 미래들 속에서 슬픔과 포기를 거듭한 끝에 체념에 이른 사람의 노래처럼 들린다. 김윤아의 노래는 극단으로 치닫지 않는다. 인생 전체로 보면 '한순간일 뿐인' 봄이 이렇게 속절없이 지나가 버린다는 사실에 대한 허망함, 허탈함이 차분하게 스며 있다.

봄은 또 오고 /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 아름다워서 / 너무나 슬픈 이야기

가사의 멜로디는 봄을 그대로 닮았다. '봄은 또 오고'에서 상승하다가 '꽃은'에서 멈추고, '피고 또 지고' 흐르다 다시 '피고'에서 멈춘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이 정서는 앞서 언급한 '베란다 프로젝트'의 그것과도 닮았다. 단조를 기반으로 하지만, 종종 장조로 이탈하는 코드 진행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봄 햇살 앞에서 잠시 눈을 감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이 노래의 정서는 결국 '애틋함'이다. 봄을 겪는 청춘의 감정이다.

반면, 백설희의 노래에서 봄은 지나가는 계절이 아니라 견뎌야 할 시간이다. 이 곡은 전면적으로 단조를 내세운다. 당시 대중가요에서 흔히 사용되던 가단조로 시작해,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라는 강력한 첫 소절로 정서를 단번에 붙든다. 1953-54년, 한국전쟁 휴전 직후의 시대다. 이 곡은 전쟁의 폐허 속 어떤 구체적인 상황을 그리기보다 일상의 언어로 봄날의 그리움을 그려낸다.

'꽃이 피면 / 같이 웃고 / 꽃이 지면 / 같이 울던'처럼 대구를 이루는 가사는 통속적이면서도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를 만들어낸다. 말하듯 이어지는 선율, 크지 않은 낙폭은 이 노래를 더 오래 남게 한다. 이 봄은 지나가서 슬프다기보다 지나갈 수밖에 없어서 받아들여야 하는 봄이다.

[봄이 와, 입춘] 김현철(2002) vs. 한로로(2022)

 한로로 '입춘' 수록 앨범 표지.
한로로 '입춘' 수록 앨범 표지.더 볼트

아직도 김현철의 '봄이 와'를 가장 좋아한다. 이 곡은 지금까지 나온 봄노래 중 가장 희망적이다. 보사노바 리듬에, 마치 봄이 '쏟아지는 듯한' 후렴구의 질감으로 라디오 단골 선곡 곡 중 하나다. 김현철과 롤러코스터 조원선의 듀엣, 풍부한 허밍은 이 곡을 앞선 봄노래들과 구분 짓는다. 종지가 분명히 닫히는 이 노래에서 봄은 이미 와 있고, 음악은 그 사실을 확인한다. 이제 시작해도 된다는 희망에 가까운 노래다.

다 좋은데 / 딱 한 가지 안 좋은 것은 / 눈뜰 수가 없네 / 그대 때문에

눈부시고 따뜻한 햇살을 음악화한다면 바로 이 노래. 나른한 기타도 빠지지 않는다. 이 곡 역시 멜로디가 '봄이 와' 구간을 반복하며 상행하고, 비교적 넓은 음역을 사용하며 후렴에서 위로 열린다. '봄이 왔다'라고 말할 수 있는 멜로디다.

한로로의 '입춘'은 '얼어붙은 마음에 누가 입 맞춰 줄까요'로 시작한다. 봄이라는 아직 오지 않은 어떤 대상을 기다리는 마음을 포스트 록적인 사운드로 담아냈다. 이 곡의 역시 앞선 곡들에 비해 과감하다. 앞서 소개한 곡들이 봄의 상승감을 담아냈다면, 이 곡은 하행하는 멜로디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 번만 나를 돌아봐요'라며 애원하는 듯한 가사와 멜로디의 조합, 그리고 '첫 봄 인사를 건네줘요'라며 누군가에게 조심스러운 요청을 건넨다.

팬데믹 이후의 청춘에게 '시작하는 느낌'이란 모호하다. 팬데믹은 끝난다고 했지만, 완전히 끝났다는 느낌도 흐릿했고, 일상은 돌아왔지만, '회복됐다'라고 명쾌하게 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제 괜찮아질 거야'라는 '봄은 온다'라는 말이 공허함으로 다가오던 시기. 그래서 한로로의 '입춘'은 아직 잘 모르겠는 청춘들을 대변하며 '꽃 피울 수 있게 도와줘요'라는 요청의 형태로 가 닿았다. 그리고 그 멜로디의 형태는 하강하는 듯하다가 마지막에 고음으로 방점을 찍는다.

봄은 생존과 허무함의 시대를 지나, 고점 이후 다시 방황하는 형태의 멜로디를 그려왔다. 2026년에는 어떤 봄이 펼쳐질까. 또 어떤 노래가 쏟아질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 연재 「월간 진지」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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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웹진 오버톤(overtone.kr) 에디터.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오가며 음악 비평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