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진의 '넘버원' 비하인드 "부산 사투리 번역기 있었으면..."

[인터뷰] 영화 <넘버원> 장혜진 배우

영화 <넘버원>은 어느 날부터 엄마의 음식을 먹을 때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가 보이기 시작한 하민(최우식)이 엄마 은실(장혜진)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엄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다. 우와노 소라의 소설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328번 남았습니다>를 원작으로 한다. <거인>으로 제36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감독상을 받은 김태용 감독의 첫 상업영화다.

영화에는 장혜진의 에너지가 묵직한 울림을 더한다. 그가 맡은 엄마 '은실'은 한국의 전형적인 엄마처럼 보이는 눈물 버튼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희생이 아닌 자기 일에 충실하고 밝고 유쾌한 성정으로 자신을 피하는 아들을 기다려준다. 아들의 연인 려은(공승연)까지 품는 따뜻한 분위기는 장혜진이 만들어낸 정서다.

그래서일까. 은실은 배우 실제 성격이 이식된 자연스러운 캐릭터다. 다른 배우보다 늦은 나이에 엄마 역할을 맡아 장성한 자녀를 만나는 복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라 말하는 낙천적인 에너지는 주변까지 긍정의 기운으로 물들였다. 지난 3일 서울 종로의 카페에서 영화 <넘버원>의 장혜진과 영화 비하인드부터 배우의 삶을 들을 수 있었다. 그와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엄마, 집밥도 다 다른 결이 존재

 영화 <넘버원> 스틸컷
영화 <넘버원> 스틸컷(주)바이포엠스튜디오

-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한편의 동화 같으면서도 따뜻하고 유쾌했다. 은실의 씩씩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남편과 큰아들을 잃었지만 슬픔에 매몰되지 않아 좋았다. 감독님은 현장 마스코트였고 영화도 감독님의 성향과 닮았다. 감정 표현에도 솔직하고 뻔한 말을 유쾌한 대사로 풀어내면서 유려하게 다가가는 분이다."

- 한국의 전형적인 엄마 '은실'을 해석한 지점은.
"은실은 큰아들 장례식장에서 돌아와도 밥을 먹겠다는 의지가 크다. 엄마라면 남아 있는 아이를 위해 살아가야 하고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된다. 식사가 단순히 밥을 먹는 것을 떠나 감정을 채우는 행동으로 읽혔다. 예전에는 '식사하셨습니까', '밥은 먹었니' 같은 인사가 상대방을 향한 관심의 척도였다. 은실은 허한 마음을 밥심으로 버텨낸다. 자기 일에 긍지와 자부심 있는, 열심히 살아간다는 인물이다."

- <기생충> 이후 5년 만에 최우식 모자로 재회한 소감은 어떤가.
"우식이는 <기생충> 때부터 '어머니'라고 불렀다. 연기 합을 맞추다 보면 결이 맞지 않는 상대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는 든든한 존재였다. 통화를 따로 하거나 살갑게 대하는 편은 아니지만 현장에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고 특별히 더 편했다. 다시 만나니 그때와는 다르게 연기 폭이 깊고 넓어졌다는 걸 느꼈다. 저도 스스로 감정이 과해지기 마련인데 유려하게 감정 조절을 하는 걸 보니 놀라웠다. 모니터링을 할 때마다 저도 그렇게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빈말 아니고 우리 아들이 우식이처럼 컸으면 좋겠다는 말을 종종 할 정도였다."

- 부산 출신 배우다. 부산 배경 영화의 장점과 사투리 연기의 단점이 있다면.
"부산에서 촬영하면서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했다. 자주 갔던 맛집이나 골목이 나오니까 그 나이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부산 특유의 색감도 좋았다. 산, 바다, 강이 주는 묘한 지형의 감성, 투박하면서도 정감 있는 정서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소고기뭇국과 콩잎은 경상도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음식이다. 푸드팀이 음식을 맛있게 해줘서 즐겁게 촬영했다. 어릴 적부터 요리 해왔기 때문에 무도 직접 썰고 대역 없이 요리했다.

사투리는 본래 부산 사투리의 스타일로 사용해야 할지, 모두가 알아듣기 쉬운 정제된 사투리를 써야 할지 고민했다. 부산 사람들은 말투와 마음이 다르고 정 없으면 때리지도 않는다. 말 좀 예쁘게 했으면 좋겠지만 잘 안된다. 대신 걸려 들으면 다 맞는 말이 부산 말이다. 부산 사투리 번역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웃음)"

- 영화 속에 '엄마'와 '집밥'이란 핵심 요소를 얼마나 활용했나.
"많은 것과 연결된 게 엄마 밥이다. 엄마가 나온다고 무조건 울라는 강요나 뻔한 신파가 아닌, 눈물의 패러다임이 바뀐 거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어떻게 살았는지 알게 될 기회, 나를 닮은 또 다른 누군가와 관계가 잘 표현되었다. <넘버원>의 엄마 밥은 결정타가 아니라 시작이다. 대신 엔딩크래딧이 치트키다. 제작진과 관객 공모로 담은 사진과 영상이 주는 감동과 울컥함이 있다. 엔딩 크래딧만으로도 하나의 작품이 되더라. 마치 콘서트 같았다."

- 아들이 어느 순간 밥도 안 먹고 자기를 피하기까지 해도 은실은 유머를 잃지 않는 엄마다. 역할에 몰입하는 방법이 궁금하다.
"저도 힘든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제 길을 나아가고 있는 게 연기에도 반영된 거 같다. 저는 삶이 저를 배우로 만들어 주었다고 본다. 살아온 삶이 연기의 결을 덧입혀주는 원동력이다. 은실처럼 슬픈 일이 생기면 빨리 빠져나가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무너지지 않고 나아가는 힘과 귀여움을 은실에게 느꼈다.

개인적으로 철저히 대본을 파고드는 편이다. 대본을 통해 분석해 나가는 재미를 즐긴다. <넘버원>은 사투리 대본이라 그대로만 하면 되었다. 문장 부호까지 다 외웠다. 다만 호흡을 어디에다 둘지 고민하고 해석했다. 조사 하나만 달라져도 전체적인 언어의 뉘앙스가 달라지니 정 바꾸고 싶을 때는 상의를 통해 바꾸는 편이다. 다음날 힘든 촬영이 잡혀 있으면 실제로 전날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감정 몰입도 판을 깔아주면 못 하는 성격이다. 일상적인 수다를 떨면서 최대한 연기할 상황을 멀리 바라보게 한 후 스스로 정리된 감정으로 연습해 온 것을 하게 된다."

"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장혜진 배우
장혜진 배우(주)바이포엠스튜디오

- 엄마 역할을 많이 했다. 조연, 특별 출연 등 분량과 상관없이 작품 속에서 여전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다른 역할의 욕심이나 아쉬움은 없나.
"엄마 역할 이외의 욕심은 크게 없고, 엄마 이미지로 국한되는 것도 아쉽지 않다. 다만 감독님들이 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시는 거 같더라. 마흔다섯에 엄마를 시작했으니 장성한 아이들의 엄마가 되는 게 여전히 좋다. 이렇게 쭉 엄마 역으로 길게 가자고 생각했다. 공식 석상에서는 변신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엄마 이미지로 소비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래 쉰 걸 만회할 수 있어서 꾸준히 대본 들어오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비중이나 역할을 따지지 않는다. 한 장면만 나오더라도, 특별출연도 제가 재미있으면 반드시 한다."

- <기생충> 이후 쉼 없이 달려왔다. 심장을 뛰게 하는 연료가 무한대인 것 같다.
"<기생충>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쉴 때는 집이 제일 좋고 돌아다니는 게 싫다. 혼자 있는 게 좋은 내향형이다. 사람 만나면 에너지 소진이 커서 집에 가서는 지쳐버린다. (웃음) 그래도 여전히 일하는 게 재미있고 현장이 새롭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 연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상상하는 맛이 있다. <트리거>를 찍을 때 혜수 언니가 저를 추천했었다. 작가 역할을 했던 적이 있는데 잠을 안 자서라도 무조건 해야 한다고 다짐했었다. 배우는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으면 끝나는 자리다. 한 작품 할 때마다 아쉬움이 없게 최선을 다한다. 늘 이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연기한다."

- 마지막으로 연휴에 개봉하는 영화 <넘버원>의 매력을 자랑한다면.
"어느 세대나 힘들다고 말하겠지만 요즘은 주변이 급박하게 변해서 더 힘든 것 같다. 저도 어릴 때는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화가 많았다. 그래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걸 느낄 나이가 됐다. 부정적인 기조에 머물지 말고 시간이 지나면 긍정적인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 보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되더라. 그래서 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가 <넘버원>인 거다. 추운 날 고맙다는 말을 못 할 때, 부모님을 모시고 극장 다녀오면 그게 효도이지 않을까 싶다. (웃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더무비에도 실립니다.
장혜진 넘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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