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다니던 낚시터가 배를 타야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다. 어느 날 혼자 낚시하는데 아버지가 불편한 몸으로 깜깜한 새벽에 제가 있는 곳까지 직접 노를 저어 오셨다. 아들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 주고 싶었던 거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커피 한 잔도 살갑게 주시지 못했다. 쑥스러워서 주변 낚시꾼들에게 먼저 커피를 나눠주면서도, 아들에게 줄 게 남았는지 보온병을 스무 번은 확인하시더라. 그렇게 커피만 주고 다시 돌아가는 아버지의 약해진 모습을 처음 보고, 정말 원 없이 울어봤다."
4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데뷔 54년차 국민배우 이덕화가 출연해 아버지와 관련한 일화를 전했다. 그의 아버지는 악역 전문배우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원로 대배우 고 이예춘 선생이다.
2대에 걸쳐 '배우'
▲유퀴즈이덕화TVN
2대에 걸쳐 배우의 삶을 이어가는 이덕화는 "아버지가 안 계셨으면 연기 생각은 추호도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덕화도 어느덧 데뷔 54년 차의 원로 배우가 되면서 "요즘은 거의 악역만 들어온다"며 장난스레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저보다 악역을 더 많이 하셨다. 학교에서 단체로 극장에서 아버지가 나오는 영화를 보러 갈 때는, 먼저 '나쁜 역할로 나오셨나'고 확인하곤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거 안보는 게 나을걸'하고 만류하시더라(웃음). 나쁜 역할을 많이 하시니까 친구들이 놀렸다. 반면 아버지가 가끔은 착한 역할을 맡았을 때는 동네에서 목에 힘 좀 주고 다녔다."
이덕화는 1972년 TBC 공채 3기로 데뷔하며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이덕화는 '한국의 제임스 딘'으로 불리며 반항적인 터프가이 이미지로 인기를 끌던 청춘스타였다. 당시 이덕화는 제임스 딘의 이미지를 따라잡기 위하여 3년을 노력했다.
이덕화는 "수많은 연기자 동기와 선배님들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하다가, 롤모델을 삼은 게 제임스 딘"이라고 회상하며 "3년간 제임스 딘을 따라잡기 위해서 매일 청바지에 빨간 잠바만 입었고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25세에 당한 불의의 오토바이 사고는 이덕화의 인생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다. 당시 10톤 버스에 깔려 수십 미터를 끌려가면서 목숨까지 잃을 뻔했던 큰 사고였다.
"젊은 친구들이 데뷔해서 박수받고 좋은 작품 출연해서 위치가 좋아지면 덜 조심하게 된다. 저도 종종 후배들에게 '너희들 조금 잘나간다고 까불지 마라'고 이야기한다. 그 까부는 순간, 사고도 나고 큰일이 닥친다. 절제가 안 되니까."
당시 이덕화는 사고 이후 무려 50번에 이르는 대수술을 받았고 3000바늘 이상을 꿰맸다. 오죽하며 치료하던 의사들조차 매일 "오늘이 고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였다.
다행히 이덕화는 14일 만에 기적처럼 의식을 되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진통제 없이는 단 1시간도 버티기 힘든 극심한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회복된 이후에도 이덕화는 장애 3급 판정받았다. 당시 병원에서는 이덕화가 극심한 고통과 정신적 충격으로 잘못된 선택이라도 할까봐 병실에서 특수 제작한 쇠창살을 설치하기도 했다.
더구나 힘들게 투병하던 시기에 이덕화는 부친을 잃는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이덕화는 "아버지가 휴양도 하시면서 몸이 좋아지고 있었는데, 내가 사고 나는 바람에 그 쇼크에 일찍 돌아가셨다"며 "걷지를 못할 상태니까 아버지 빈소에서 절도 하지 못했다"라며 회한을 드러냈다.
3년 간 악몽 같은 투병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던 유일한 원동력은 지금의 아내였다. 이덕화의 아내는 아직 결혼도 하기전에 매일같이 병원을 찾아와 지극정성으로 이덕화를 간호했다. 나중에는 병원 직원 못지않은 전문가 수준이 됐다고. 당시의 고마움 때문인지 이덕화는 칠순을 넘긴 지금도 아내를 '예쁜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며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당시 아내가 매일 병원에서 와서 숙식을 해가며 3년을 고생했다. 어느 날은 언니들이 잡으러와서 데려가면 며칠 있다 또 찾아왔다.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사람을 믿고 어떻게 그렇게 했나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사람 말고 물고기로 태어날까하는 생각도 한다. 만일 지금의 아내를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의미가 없겠다 싶었다."
부상을 털고 배우로 복귀한 이덕화는 1980년대를 휩쓴 화제의 드라마 <사랑과 야망>을 통하여 재기에 성공했다. 최고 시청률 76%에 육박한 드라마는 '원조 테토남'으로 불리는 이덕화의 터프가이 이미지를 최초로 정립한 작품으로 꼽힌다. 또한 이덕화의 또 다른 정체성이 된 '가발의 전설'도 바로 이 작품에서부터 시작됐다.
머리가 빠진 사람과 빠질 사람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머리가 빠진 사람과, 빠질 사람'이다(웃음) 그 시절엔 탈모 이야기가 금기였다. 20대 후반부터 탈모가 진행되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김수현 작가(사랑과 야망)가 '가발이라도 써봐라'고 권했다. 처음엔 여자 가발을 사다가 제 머리에 맞게 줄였더니 모자 쓴 것 같았다. 드라마에서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야성미 넘치는 장면을 멋있게 찍었는데, 감독님이 NG를 내며 '거울 봐'라고 하더라. 보니까 가발이 반대로 돌아가 있었다(웃음)."
하지만 이덕화는 탈모 이미지를 유머로 승화시키며 오히려 '탈모인들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또한 가발 회사의 전속 모델로 27년째 활동하면서 대표 명대사가 된 '모발모발'에 이어,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아>를 패러디한 '한 올도 부럽지가 않아'를 선보이며 '탈모 래퍼'로 등극하기도 했다. 지금도 이덕화는 가발 회사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하여 모발이식도 거부했다고.
이덕화는 "요즘은 가발 쓰고 축구하다가 헤딩도 한다. 초강력 약으로 가발을 붙이면, 살이 찢어지면 찢어졌지 안 떨어진다. 가발 쓰고 머리도 감을 수 있다"며 끊이지 않는 화수분 같은 가발 에피소드들을 쏟아내며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으로 이덕화는 배우이면서 한편으로 쇼MC 프로그램의 레전드이기도 하다. 이덕화는 1980년대 < 쇼2000 >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진행을 장기간 맡으며 '부탁해요', '여러분의 덕화' 등의 숱한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당대 최고의 MC로도 활약했다.
"'부탁해요'라는 멘트가 노래 시작을 알리는 콜 사인이었다. 스태프들이 모두 저의 콜 사인에 집중하고 있으니까. 조용필처럼 인기 가수가 나오면 '부탁해요'를 더 크게 외치는 게 당시 인기의 척도였다. 반면 조금 미운(?) 가수가 나오면 일부러 '부탁해요'를 안 하고 '노래 듣겠습니다'하고 휙 가버리기도 했다. 콜사인이 없으니 스태프와 밴드들이 일제히 웅성거리며 당황하더라(웃음)."
이덕화는 특유의 개성 있는 말투와 카리스마를 앞세워 당대의 CF 스타로도 명성을 떨쳤다.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를 외치던 강장제 CF, '벽치기'의 원조로 꼽히는 레전드 장면을 배출한 속옷 CF는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이덕화는 "당시에는 웬만한 음식점이나 술집에 들어가서 벽치기 한번만 하고 나오면 거의 외상이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이덕화는 세상을 떠난 부친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이덕화는 아버지와 함께 다니던 낚시터에서 애틋한 부정을 느꼈던 추억을 떠올렸다.
"아버지(배우 고 이예춘)가 지내시던 낚시터에 가면 항상 먼저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면도 다하고 모시적삼을 깨끗 빨아서 다려입고 신선처럼 앉아 있으셨다. 그렇게 3일을 준비해 놓고 막상 아들의 얼굴을 보면 '별일 없냐?' '가봐라. 낚시나 해봐라' 두 마디면 끝이었다. 제가 좋은 작품, 좋은 역할을 할 때 아버지가 보시고 돌아가셨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고생하는 것만 보여드려서 죄송하다."
아버지는 이덕화가 오토바이 사고로 중상을 입고 입원했을 때 같은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덕화는 아버지가 임종하는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아버지랑 영화라도 한편 같이 찍어보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 지금 아버지를 다시 볼 수 있다면 무조건 '감사합니다' 할 텐데, 어릴 때는 왜 그렇게 피했는지 모르겠다"며 그리움을 드러냈다.
이덕화는 올해 연말로 예정된 연극 <노인과 바다>를 준비하고 있다는 근황을 전했다. 어느덧 칠순의 원로배우가 된 이덕화는 낚시도 연기도, 인생도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낚시도 계속 다니다보면 나이들고 민물낚시로 돌아오듯이, 배우들도 젊을 때는 드라마나 영화를 하다가 연극으로 다시 돌아온다. 나에게 낚시가 '기다림'이라면, 나에게 연기는 '나 자신'이다. 이렇게 살아온 자체가 내 인생이다. 우리가 기대했던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어마어마한건 아니더라. 근데 굳이 그렇게 악쓰고 살아야겠나? 우리 모두 편안하게 살자(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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