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를 한 편만 꼽으면, 주저 없이 박해영 작가의 <나의 아저씨>를 말한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이선균의 더없이 인상적인 연기가 담긴 작품으로, 모든 공동체가 파편화되는 이 시대에 세대와 환경을 건너 이어지는 기적적 순간을 담았다.
이 작품이 주목한 공동체 파열의 현장 가운데 하나가 가족이다. 사회공동체를 이루는 기본 중 기본이라던 가족공동체가 마주한 결코 평탄치 않은 상황들이 드라마 가운데 수차례 인상적으로 등장하는 건 그래서이겠다. 극중 송새벽이 연기한 인물이 이런 대사를 한다.
"아무도 안 볼 때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래."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한 말이기도 한 이 대사는 가족에 대한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을 돌아보도록 이끈다. 쓰레기통에 박아버리고 싶은, 그러나 아무도 안 볼 때여야 하는, 또 막상 그럴 때가 되면 차마 그럴 수가 없는 것. 가족이란 정말이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직사각형, 삼각형스틸컷
필름다빈
극장 개봉에 이른 중편영화
최근 개봉한 신작 <직사각형, 삼각형>이란 작품이 있다. 그다지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한 독립영화이지만 그냥 그렇게 지나치기엔 또 아쉬운 작품이다. 이 작품이 우리 시대가 마주한 긴요한 위기의 현장인 가족을 인상적으로 비춘다.
46분짜리 중편영화다. 대부분의 시간이 가정집 거실에서 벌어지며 등장하는 이들도 대부분 같다. 2018년 흥행한 <완벽한 타인>을 떠올리게 하는 구성이다. 다른 점이라면 친구 사이가 아닌 가족이라는 점일까. 나이 든 부모와 중년의 삼 남매, 이들 각각의 아내와 남편들까지가 영화에 등장하는 전부다. 그러니까 모두 8명의 등장인물이 부모자식과 부부, 또 동서 및 장서지간 등으로 묶여 있는 관계다. 십수 년 전이라면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일상적 관계이겠으나 요즘 세상엔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세상이 너무나 빨리 변하는 탓일까.
일인가구가 폭증해 어느덧 1000만 가구를 넘어선 오늘이다. 세대를 가리지 않는 1인 가구는 어느덧 한국의 가장 평균적인 가구 형태가 됐다. 서울 쏠림 현상과 지방소멸, 비혼 등 각기 다른 이유로 가정을 이루지 않는 이들이 1인 가구 폭증의 원인으로 풀이된다. 변화는 1인 가구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가정을 이룬 이들도 전과는 다른 가족 간, 또 가족 내 변화를 마주한다. 달라진 풍속도가 가족마다 저마다의 모양으로 펼쳐지는 모양, 바로 그 지점을 이 작품이 살핀다.
▲직사각형, 삼각형스틸컷
필름다빈
설 명절 앞두고 보면 좋을 실내극
어느 날 8명의 가족 구성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막내딸 집을 찾은 이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여느 가족모임처럼 화기애애한 듯 보인다. 술을 곁들여 서로의 근황을 묻고 웃고 즐기는 상황이 이어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이내 이들 사이 쌓인 수많은 문제가 고개를 치켜든다.
맏아들(오용 분)은 제법 자리 잡은 사업가인 듯하다. 건설업을 하는 그가 모처럼 수억 대 수주를 받았는데, 세금 절감을 위한 방안을 찾는 게 요즘의 관심이다. 그 욕구가 절세를 넘어 탈세를 넘보는 지경에 이른 모양이다. 영화는 그가 배우로 활동하는 첫째 사위(진선규 분)에게 탈세를 도울 수 있는지 떠보는 걸 시작으로 본격적인 블랙코미디의 막을 올린다.
가족 간 갈등의 주된 계기 중 하나는 비교다. 각자의 영역에서 제법 잘 나가는 맏아들과 첫째 사위와 달리 집주인인 둘째 사위는 사정이 영 좋지 못한 듯하다. 이날 모임에도 영 반갑지 못한 얼굴로 앉아 있던 그다. 다 늘어난 셔츠 차림인 그는 모처럼 쉬는 날 닥쳐온 가족들 행사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별말 없이 있던 그가 화제의 중심에 오르는 것도 순식간이다.
▲직사각형, 삼각형스틸컷
필름다빈
불행과 행복 사이는 종이 한 장
그가 당혹스러운 건 그의 아내(권소현 분)가 그를 저격해서다. 부부간 불화가 심각한 듯, 다른 가족들 앞에서 제 남편을 공격하는 데 거침이 없다. 마침내 둘째 사위도 얼마간 맞받아치기 시작하니 겉으로나마 화목한 듯했던 이들의 자리가 일순간 파행이다. 집안일 분담이란 흔한 소재가 흔한 소재인 건 부부 사이에 주된 갈등 원인이 되기 때문일 테다. 온종일 힘들게 일하면서도 오빠나 언니네 집만큼 살지도, 나아질 가능성도 잘 보이지 않는 저들의 삶이 못마땅하기도 했을 테다. 응축된 분노가 남편에게 향하니 남보다 못하단 게 꼭 이럴 때 쓰는 말일까.
그로부터 드러나는 건 각 가정이 가진 은근하면서도 확실한 균열이다. 다른 두 부부에게도 저마다의 문제가 있다. 비슷하지만 또 다른 문제들이 각자의 결혼생활을, 가족공동체를 장기적으로는 확실히 위협한다. 관객은 좀처럼 마주할 일 없는 남의 집 내밀한 사정을 그들이 모여든 거실에서 직관하는데, 한 편 소극으로 우스꽝스럽지만 동시에 어느 집에서나 쉽게 마주할 수 있는 흔한 갈등이란 점에서 얼마간 섬뜩하다. 따지자면 우리네 모두가 이들 중 어느 하나와 과연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저 유명한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그만큼 유명한 첫 문장이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이 문장이 영화 <직사각형, 삼각형>에도 그대로 적용될 듯하다. 멀리서 보면 행복한 듯하지만 가까이 다가서 보면 영 불화한 이 가족의 모습이 글 서두에 언급한 <나의 아저씨> 속 대사를 떠올리도록 한다. 이들 중 누구라도 아무도 보지 않을 때 가족들을 확, 쓰레기통에 버려버리고 싶은 생각을 하겠구나 하면서.
▲직사각형, 삼각형포스터필름다빈
그저 갈등의 전시만은 아니다
그러나 어디 이런 것만이 가족의 진면목일까.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저 갈등만으로 끝내지는 않으니, 바로 이것이 제목이기도 한 '직사각형, 삼각형'과 얽힌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종이를 삼분하여 가로로 두 번 접어 양 끝을 마주 닿게 하면 측면에서 볼 때 삼각형의 꼴을 이룬다. 그런데 이를 정면에서 바라보면 직사각형처럼 보이기도 한다. 요컨대 어느 쪽에서 보면 직사각형인 것이 다른 쪽에선 삼각형이 된다는 이야기.
이쯤이면 영화 <직사각형, 삼각형>의 주제의식이 보이는 듯도 하다. 더 잘 살고 못 사는 것으로, 집안일에 얼마나 기여하는지의 문제로 갈등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저 한 면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각자의 상황에서 모두가 제가 맞다 여기는 이들의 이야기는, 한 걸음 떨어져 보면 전혀 달리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그저 각 인물의 입장을 넘어 가족이란 집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디 가족이 쓰레기통에 버려버리고 싶은 것이기만 할까. 온 세상과 맞서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이 또한 가족이다.
영화는 배우로 더 유명한 이희준의 두 번째 감독 연출작이다. 2018년 단편 <병훈의 하루>부터 연출에 관심을 드러내 온 그의 영화세계가 <직사각형, 삼각형>에 이르러 조금쯤 넓어졌단 인상이다. 성공한 배우임에도 독립영화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그의 행보가 그저 배우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독립영화 연출자로 활동하기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에 한 명의 팬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단편에서 중편으로 확장된 그의 연출세계가 다음엔 장편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한국영화에 애정을 가진 한 명의 평론가로서 틀림없이 찾아올 그 순간을 목격할 수 있길 바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공유하기
'남몰래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은' 가족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