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농구 '전설' 김정은, WKBL 최초 은퇴투어 주인공 된다

20년 선수생활 마무리... "저보다 위대한 선배님들도 누리지 못한 자리, 무거운 책임감"

 한국여자 프로농구의 '전설' 김정은(하나은행)
한국여자 프로농구의 '전설' 김정은(하나은행)홈페이지 캡쳐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예고한 한국여자 프로농구의 '전설' 김정은(하나은행)이 WKBL 역사상 최초로 '은퇴 투어'의 주인공이 됐다.

소속팀 부천 하나은행은 지난 3일 김정은의 은퇴투어 기획과 일정을 공식 발표했다. 하나은행은 "김정은 선수가 지난 20년간 코트에서 보여준 헌신과 공로를 기리기 위한 이벤트로 은퇴투어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은퇴투어는 오는 2월 4일 용인 삼성생명과의 원정 경기를 시작으로, 4월 1일 인천 신한은행전까지 WKBL 5개 구단의 경기장에서 열리는 하나은행의 마지막 원정 경기에 맞춰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김정은은 구단을 통하여 "저보다 더 위대한 선배님들도 누리지 못한 자리가 제게 허락된 것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감사를 전했다.

1987년생인 김정은은 현재 여자농구 최고령 선수다. 온양여고를 졸업하고 2005년 여자농구 신인드래프트 1순위로 신세계 쿨캣(하나은행의 전신)에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한 김정은은 신세계-우리은행을 거쳐 다시 친정팀 하나은행으로 돌아오며 무려 20년째 꾸준히 선수생활을 이어왔다.

김정은은 전성기에는 WKBL 역대 최고의 스몰포워드 중 한 명으로 꼽혔다. 2006 겨울리그 신인선수상을 시작으로 득점상 4회, 리그 베스트5 6회,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 1회 등을 차지했다. 챔프전 우승과 아시안게임 금메달(국가대표)도 경험했다. 모범적이고 성실한 자기관리로 선수생활 내내 코트 안팎에서 큰 구설수 없이 후배들의 모범이 되어왔다.

은퇴를 앞두고는 WKBL의 역대 누적 기록을 연이어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해 12월 21일에는 선배 임영희(600경기, 우리은행 코치)를 뛰어넘어 여자농구 최다출전 1위 기록을 경신했다. 4일 현재 김정은의 출장기록은 통산 610경기다. 김정은이 남은 정규리그 10경기를 모두 소화하면 620경기까지 기록을 늘릴 수 있다. 또한 김정은은 통산 득점 부문에서 8440점을 기록하며 WKBL 역대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코트 안팎에서 모두 성실... 자격 충분한 김정은

 '살아있는 전설' 김정은의 은퇴 투어 일정(부천 하나은행 제공)
'살아있는 전설' 김정은의 은퇴 투어 일정(부천 하나은행 제공)연합뉴스

스포츠계에서 은퇴 투어를 진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 뛰었다'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은퇴식이 선수 개인의 마침표라면 '은퇴 투어'는 해당 리그와 종목 전체가 바치는 헌사라고 할수 있다. 선수도 팬들도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적 여유를 가진다.

평소에는 치열한 경쟁을 펼치던 라이벌 구단과 팬들도 기꺼이 기립박수를 보내고, 상대 구단은 선물을 준비하며 함께 '축제의 장'을 만들어가는 문화는, 해당 스포츠 종목의 품격과 명예를 높인다. 선수에게는 특정팀의 간판을 넘어 해당 종목의 기념비적인 역사 그 자체가 되었음을 인정받는 아주 특별한 과정인 것이다.

한편으로 당연히 은퇴 투어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암묵적으로 리그나 팬들이 누구나 인정할 만한 위상과 업적을 남긴 선수여야만 한다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다만 이로 인하여 은퇴투어 자격 여부를 놓고, 팬들 사이에서 선수의 '급'을 따지면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등 일부 부작용도 있었다.

그동안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은퇴투어를 진행한 사례는 KBO리그(야구)의 이승엽, 이대호, 오승환, KBL(남자농구)의 서장훈, 김주성 등이 있었으며, 역시 올시즌 은퇴하는 함지훈(울산 현대모비스)도 은퇴투어가 예정되어있다.

2020년 은퇴했던 프로야구 레전드 박용택은 은퇴투어가 큰 논란으로 번진 안타까운 사례였다. 소속구단 LG 트윈스에서 박용택의 은퇴투어를 추진했으나, 뜻밖에도 팬들 사이에서 선수의 과거 행적(타격왕 밀어주기 논란)과 위상 평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났다. 이에 박용택 본인이 나서서 직접 은퇴투어를 고사하며 입장을 정리한 바 있다. 하지만 상대 구단들의 자발적인 배려로 인하여 박용택은 사실상 마지막 원정경기마다 은퇴투어에 준하는 예우를 받았다.

여성스포츠에서 은퇴투어를 치른 사례는 더욱 희귀하다. 2024-25시즌 V리그에서 은퇴한 '배구여제' 김연경에 이어, 김정은이 여성 선수로는 역대 두번째다. 특히 WKBL에는 그동안 정선민, 전주원, 정은순, 박정은, 변연하 등 한국 여자농구를 빛낸 수많은 레전드들도 누리지 못한 최초의 은퇴투어 대상자라는 영광을 김정은이 누리게 됐다.

김정은은 대중적인 인지도는 앞서 은퇴투어를 했던 타 종목 스타들에 뒤질지 모른다. 하지만 여자농구에서 세운 업적과 위상으로 봤을 때는 레전드로서 그만한 예우를 받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사실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들도 코트를 떠날 때는 은퇴식도 치르지 못하고 초라하게 사라지는 경우도 많았다. 김정은을 시작으로 WKBL에서도 '여자농구 선수의 은퇴가 명예롭고 존중받는 문화'를 만드는 데 하나의 기준이 될 만한 사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정은은 은퇴투어 제안을 망설이다가 수락한 이유에 대하여 "단지 개인의 영광이 아닌, 한국 여자농구를 지켜온 모든 선수의 땀방울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했다"고 밝히며 "한 선수의 은퇴를 너그럽게 배려하고 존중해 주신 연맹과 각 구단에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어느덧 20년 선수생활의 마지막 여정을 앞둔 레전드에게, 농구팬들의 격려와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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