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전설' 김정은의 은퇴 투어 일정(부천 하나은행 제공)
연합뉴스
스포츠계에서 은퇴 투어를 진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 뛰었다'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은퇴식이 선수 개인의 마침표라면 '은퇴 투어'는 해당 리그와 종목 전체가 바치는 헌사라고 할수 있다. 선수도 팬들도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적 여유를 가진다.
평소에는 치열한 경쟁을 펼치던 라이벌 구단과 팬들도 기꺼이 기립박수를 보내고, 상대 구단은 선물을 준비하며 함께 '축제의 장'을 만들어가는 문화는, 해당 스포츠 종목의 품격과 명예를 높인다. 선수에게는 특정팀의 간판을 넘어 해당 종목의 기념비적인 역사 그 자체가 되었음을 인정받는 아주 특별한 과정인 것이다.
한편으로 당연히 은퇴 투어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암묵적으로 리그나 팬들이 누구나 인정할 만한 위상과 업적을 남긴 선수여야만 한다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다만 이로 인하여 은퇴투어 자격 여부를 놓고, 팬들 사이에서 선수의 '급'을 따지면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등 일부 부작용도 있었다.
그동안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은퇴투어를 진행한 사례는 KBO리그(야구)의 이승엽, 이대호, 오승환, KBL(남자농구)의 서장훈, 김주성 등이 있었으며, 역시 올시즌 은퇴하는 함지훈(울산 현대모비스)도 은퇴투어가 예정되어있다.
2020년 은퇴했던 프로야구 레전드 박용택은 은퇴투어가 큰 논란으로 번진 안타까운 사례였다. 소속구단 LG 트윈스에서 박용택의 은퇴투어를 추진했으나, 뜻밖에도 팬들 사이에서 선수의 과거 행적(타격왕 밀어주기 논란)과 위상 평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났다. 이에 박용택 본인이 나서서 직접 은퇴투어를 고사하며 입장을 정리한 바 있다. 하지만 상대 구단들의 자발적인 배려로 인하여 박용택은 사실상 마지막 원정경기마다 은퇴투어에 준하는 예우를 받았다.
여성스포츠에서 은퇴투어를 치른 사례는 더욱 희귀하다. 2024-25시즌 V리그에서 은퇴한 '배구여제' 김연경에 이어, 김정은이 여성 선수로는 역대 두번째다. 특히 WKBL에는 그동안 정선민, 전주원, 정은순, 박정은, 변연하 등 한국 여자농구를 빛낸 수많은 레전드들도 누리지 못한 최초의 은퇴투어 대상자라는 영광을 김정은이 누리게 됐다.
김정은은 대중적인 인지도는 앞서 은퇴투어를 했던 타 종목 스타들에 뒤질지 모른다. 하지만 여자농구에서 세운 업적과 위상으로 봤을 때는 레전드로서 그만한 예우를 받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사실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들도 코트를 떠날 때는 은퇴식도 치르지 못하고 초라하게 사라지는 경우도 많았다. 김정은을 시작으로 WKBL에서도 '여자농구 선수의 은퇴가 명예롭고 존중받는 문화'를 만드는 데 하나의 기준이 될 만한 사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정은은 은퇴투어 제안을 망설이다가 수락한 이유에 대하여 "단지 개인의 영광이 아닌, 한국 여자농구를 지켜온 모든 선수의 땀방울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했다"고 밝히며 "한 선수의 은퇴를 너그럽게 배려하고 존중해 주신 연맹과 각 구단에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어느덧 20년 선수생활의 마지막 여정을 앞둔 레전드에게, 농구팬들의 격려와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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