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는 왜 배드 버니를 올해의 앨범으로 선택했을까

[주장] 배드 버니의 <데비 티라르 마스 포토스>, 그래미 수상이 갖는 의미

익숙한 듯 낯선 라틴 비트 위로 평탄하고 덤덤하게 흘러가는 스페인어 가사. 레게 톤으로 구성된 이 앨범은 처음엔 다소 '성글게' 들린다. 2026년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AOTY)'을 수상한 배드 버니의 <데비 티라르 마스 포토스(Debí Tirar Más Fotos)>(이하 DTMF)를 처음 들었을 때의 감상이다.

 배드 버니(Bad Bunny), <데비 티라르 마스 포토스(Debi Tirar Mas Fotos)>
배드 버니(Bad Bunny), <데비 티라르 마스 포토스(Debi Tirar Mas Fotos)>Rimas Entertainment

배드 버니의 수상엔 두 가지 의의가 있다. 첫 번째로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라는 말의 증명이다. 이 음반은 마치 일상의 배경음악처럼 작용한다. 구태여 스케일을 크게 넓히거나 거대 담론을 다루지도 않는다.

팝의 문법을 전면으로 따르지도 않았다. 이러한 앨범의 색깔은 트랙 'TURiSTA'에서 두드러진다. 기타 한 대에 나른한 목소리로, 마치 휴양지에서 노래하는 듯한 노래. 스쳐 가는 인연을 관광객에 비유했다.

흔히 '제3세계 음악'이라 분류되곤 하는 사운드의 결이 배경처럼 곳곳에 스몄다. 발매 이후 2025년 한 해 동안 이 앨범은 배드 버니를 스포티파이(Spotify) 글로벌 아티스트 1위로 만들었다. 남미, 유럽 등 다수의 국가 차트를 휩쓸며 라틴의 파워를 보여주었다. 결국 보수적인 성향의 그래미가 스페인어 100%로 된 앨범을 역사상 처음으로 최고 앨범상을 수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고국 푸에르토리코와도 관련이 있다. 이번 그래미를 둘러싼 맥락 중 하나는 'ICE(이민세관단속국) OUT'이었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령이지만 역사적, 문화적 맥락상 라틴계 정체성이 강한 지역이다. 미국 시민권자임에도 불구하고, 라틴계 시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 분위기 속에서 트럼프의 정책은 지탄받고 있다.

만약 배드 버니가 사회적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운 앨범으로 흥행했다면, 한쪽으로 편중된 것을 기피하는 성향의 그래미는 그의 이름을 호명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 DTMF >는 정치적 구호를 앞세우지 않는다. 다만, 미국 안에 있으나 완전히 포함되지 않은 존재로 사는 삶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유지한다. 한 마디로 그저 지극히 '나'로서 여기에 존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세계에 알렸다. 그저 존재했기에, 잣대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오히려 세련된 메시지 전달이 되었다.

두 번째 의의는 바로 이 지점이다. 고국이 아플 때, '세계적인 그래미'가 손을 들어줬다는 사실. 빌리 아일리시부터 셰어(Cher)에 이르기까지 'ICE OUT' 배지를 달거나 수상 소감에서 이를 외치는 풍경이 이어진 가운데, 배드 버니의 수상은 하나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이는 그래미가 어떤 방식의 정치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2025년은 배드버니의 승리라고 봐도 무방한 장면이 만들어진 가운데, 주요 부문 수상의 면면은 납득과 의문으로 갈린다. 납득은 올해의 레코드(ROTY)를 수상한 켄드릭 라마와 시저(SZA)의 'Luther'이다. < GNX >의 수록곡으로, 이로써 시저는 첫 그래미의 영예를 안게 됐다. 이 곡 역시 잔잔한 무드에 속한다. 어떤 과장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2025년의 사운드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반면 올해의 노래(SOTY)는 후보 선정 맥락에서 약간의 의아함을 남겼다. 빌리 아일리쉬의 'Wildflower'가 수록된 앨범은 < Hit Me Hard and Soft >로, 2024년에 발매된 앨범의 싱글 컷 된 트랙이 후보에 올라, 2025년 그래미상을 받았다. 정규 1집부터 3집까지 세 앨범 모두 그래미를 수상했을뿐더러, 발매 시점이 좀 지났다는 점에서 이 곡이 과연 그 해를 대표하는 노래인가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 이는 그래미의 기준 안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선택이다. 다만 후보에 올랐던 로제, 브루노 마스의 'A.P.T'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골든(Golden)'까지 K팝이 두 곡이나 있었기에, 국내에서의 분위기는 아쉽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래미의 빅4(제네럴 필드)라고 불리는 부문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올해의 신인(Best New Artist)를 수상한 올리비아 딘(Olivia Dean)의 < The Art of Loving > 앨범까지, 곡들이 한 마디로 부드럽다. 잔잔하며 정제된 감정을 드러낸다. 만약 'A.P.T'나 '골든'이 주요 부문을 수상했다면 지극히 사운드적인 측면에서 결이 다른 곡의 조합이 되었을 수도 있다. 투표로 선정되는 그래미 투표 집단인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은 2026년 기준 약 1만 명 이상이다. 키치하고 재기 발랄한 'A.P.T', 서사와 보컬 후렴이 분명한 '골든'까지 K팝의 스타일은 그들을 설득하기엔 아직 '현상' 단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다만, 골든이 '베스트 송 뤼튼 포 비주얼 미디어'를 수상했다는 점에서, K팝 첫 그래미라는 최초 기록을 남기며 점차 한발 진입했다고도 해석된다.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 부문은 주요 부문이 아니기에 생소할 수 있다. 그러나 1988년 애니메이션 영화 < An American Ta il>의 'Somewhere Out There'로 지금까지 38년 가까이 이어져 온 부문이며, 비디오 시대의 극점에서 이루어진 수상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A.P.T'의 베스트 팝 듀오 앨범 수상 불발은 의문을 남기지만 맥락상 이해 가능한 선택이다. 수상은 신시아 에리보(Cynthia Erivo)와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가 영화 <위키드>에서 부른 'Defying Gravity'에게로 돌아갔다. 이를 두고 국내 반응은 '신곡도 아니며, 이미 불릴 대로 불린 뮤지컬 넘버에게 이 상을 준 것이 의아하다'라고 말한다. 차트 성적만 놓고 봐서는 두 곡 모두 빌보드 핫100 10위 권 이내에 진입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나, 위키드 곡이 42주 이상 머물며 장기 흥행했다. 'A.P.T'는 이번 그래미의 오프닝 트랙을 차지할 만큼 영향력을 미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미가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올해 그래미가 선택한 음악의 색깔을 돌아보면 분명한 경향은 보인다. 튀지 않고, 과장되지 않으며, 정제된 감정. 그런 의미에서 2025년의 그래미는, '무엇이 강렬했는가'보다도 무엇이 오래 남는 음악이었는가를 선택한 시상식이었다고 평할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 연재 「월간 진지」에도 게재됩니다.
그래미 로제 아파트 골든 배드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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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텍스처를 읽고, 맥락을 해석합니다. 연세대 작곡과 졸업. 대중음악웹진 〈오버톤〉 에디터 | 〈월간 진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