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약에 우리> 스틸컷
(주) 쇼박스
영화 내내 햇살은 중요한 풍경이자 은유로 등장한다. 정오의 강한 햇살도 있지만 소원이 이루어질 것처럼 신비한 석양의 햇살도 있다. 문득, 마사 누스바움이 그의 책 시적 정의(Poetic Justice)에서 인용한 월트 휘트먼의 시 '유령'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이 나라에서 시인은 한결같은 인간이다. ...(중략)
그는 재판관이 판단하듯 판단하지 않고
태양이 무기력한 것들 주변에 떨어지듯 판단한다."
이 구절 속 햇살, 즉 태양은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비춘다. 존재를 가리지 않고, 무기력한 것들 위에도 공평하게 떨궈진다. 추운 겨울, 햇살 한 조각의 위로를 경험해 본 이들은 무기력한 존재 곁에 떨어지는 태양의 의미를 안다. 은호와 정원이 한 때 꼭대기 방에서 느낀 햇살의 위로가 그랬을 것이다.
"우리가 성공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자"고 다부진 의지를 드러냈던 은호와 정원은, 그들이 성공의 자격 있다는 걸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이내 서로에게 생채기를 낸다. 이들이 옥신각신하며 서로를 할퀴었던 이유를 두고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꼬집을 수 있을까. 어쩌면 두 청춘을 둘러싼 막막한 환경이 이들을 끊임없이 할퀴었기에 이들도 어쩔 수 없이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운 것 아닐까.
은호와 정원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건 우리가 금수저, 흙수저라며 부모도 스펙이라 부르는 각박하고도 천박한 이 계급사회에서 살고 있어서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청춘의 또 다른 이름이 은호이자 정원인 셈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은호와 정원은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있을까? 명절에 찾아갈 곳 없는 정원이 닫힌 보육원 문 앞에서, 닫힌 은호식당 문 앞에서 서성였듯, 지금, 이 순간, 닫힌 문 앞에서 서성일 이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만약에 우리>는 누적 관객 수 211만(1월 29일)을 넘어서며 18일째 박스오피스 1위(1월 29일 기준)를 기록하고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라는 평이 많다. 하지만, 벌써 두 차례 극장을 찾았던 입장에서는 이 영화의 흥행이 그리 낯설지 않다. 관객들은 지난 첫사랑의 기억 때문만이 아니라, 그 때의 나처럼 애썼던 은호와 정원의 분투에 공감하며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이들이, 그 때의 은호와 정원을 응원하듯,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서로에게 조금 더 너그럽고 다정한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 것도 아닌 햇살을 허세 부리듯 주었다 빼앗지 않는 세계, 모두가 제 몫의 햇살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그런 세계가 모두에게 절실하기 때문이다.
▲영화 <만약에 우리> 스틸컷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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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모모 대표, 평화와 교육에 관련한 활동을 하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