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예순여덟 살. 그래미의 나이다. 1959년 1회 시상식을 기점으로 출범한 이 상은 오랜 시간 음악 산업계의 중요한 기준으로 기능해왔다(제68회 그래미 워어드는 2월 1일 열린다).
선정위원에는 프로듀서부터 A&R까지 음악 산업 전반의 관계자들이 포함되고, 아티스트는 '그래미 수상자' 혹은 '그래미 노미네이트'라는 이름을 일종의 인증처럼 얻게 된다. 문제는 이 상이 과연 여전히 '한 해의 음악'을 대표하고 있는가다.
▲그래미 트로피
Recording Academy
피치포크(미국의 음악비평 사이트)는 매년 그래미 결과를 예측하며 'Should Win'과 'Will Win'을 구분한다. 이는 '받아야 할 음악'과 '실제로 받을 음악'이 다르다는 뜻이다. 이러한 간극은 그래미가 음반 산업 관계자들로 구성된 집단이라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음악을 듣는 리스너라기보다 음악 산업을 운영하는 위치에 가깝다. 그 결과 실험적이라거나 진보적인 사운드, 혹은 논쟁적 메시지는 이 구조의 바깥으로 밀려나기 쉽다. 더구나 위원회는 토론이 아닌 투표로 결과를 도출한다. 이 과정에서 선택은 자연스럽게 반대가 적은 방향으로 기운다. 소수가 강하게 옹호하는 앨범보다 다수가 반대하지 않는 무난한 선택이 살아남는다.
이러한 구조는 여러 사례에서 반복돼 왔다.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은 < Blonde >(2016) 발매 당시 그래미 노미네이션을 공개적으로 거부했고,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 good Kid, m.A.A.d city >(2012) 역시 수상이 불발됐다. 다프트 펑크(Daft Punk) 또한 1990년대 혁신적인 전자음악을 선보이던 시기에는 그래미의 중심에 서지 못했다.
그러다 디스코 팝의 언어를 빌려 과거의 사운드를 '향수'로 재구성한 < Random Access Memories >(2014)에 이르러서야 그래미의 선택을 받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재평가되는 이러한 사례들은 그래미의 판단이 언제나 음악의 장기적 가치와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화는 시간이 개입될 때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다. 지금 강하게 반응을 이끌어내는 음악이 곧 오래 남는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음악에서 쾌락은 중요한 요소지만 그것만으로 작품의 수명을 설명할 수는 없다. 어떤 음악이 끝내 명반으로 남는지는 결국 시간이 증명한다.
시간을 초월하는 음악의 힘
▲로제 (ROSE), 브루노 마스 (Bruno Mars) 'APT.’ (2024.10)YG PLUS
올해의 앨범은 고작 1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발매된 작품들에 대한 평가다. 그러나 어떤 작품이 50년, 100년 뒤에도 여전히 불린다면 그 음악은 이미 시간을 초월한 셈이다. 이 평가는 그래미와 무관하게 형성된다. 유행이 바뀌고 청취 환경이 변해도 대중에게 좋은 음악은 자연스럽게 남는다. 트로피의 무게가 시간의 무게와 동일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68회 그래미는 유독 눈여겨볼 만하다.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 후보로 로제(ROSÉ)와 브루노 마스(Bruno Mars)의 < APT. >가 이름을 올렸기 때문. 이 곡은 실험적이라기보다 그래미가 선호하는 '안전한 현재'에 가깝다. 문화적으로 맥락이 분명하고 논쟁의 여지가 크지 않은 곡이다.
반면 경쟁 후보로 거론되는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신곡은 어둡고 파격적인 미학을 연상시키는 가사와 세계관을 내세운다. 다만 그 불편함은 보다 상징적이고 정제된 방식으로 제시된다. 이 지점에서 그래미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래미가 선택해 온 가가는 대체로 덜 급진적인 쪽이었다.
< APT. >가 수상할 경우 K팝으로는 상징적인 장면이 될 것이다. 동시에 이 곡이 2025년이라는 시점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불릴 수 있을지 역시 관건이다. 중독성과 키치함, 브루노 마스의 매끈한 소화력은 분명 강점이다. 다만 그 즉각적인 쾌감이 반복 청취와 시간의 시험을 견뎌낼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부문에서는 켄드릭 라마의 'Luther'가 눈에 띈다. 작년 빌보드 핫100 최장 1위라는 기록은 분명한 근거다. 이 곡은 과한 감정 표출 대신 절제된 톤과 여백을 택하며, 현재 우리가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이 지점에서 'Luther'는 단순한 히트곡을 넘어선다.
결국 시상식이란 무엇일까. 주목받는 이름들 뒤편에는 호명되지 않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남는다. 대중성, 시간성, 작품성. 이 세 가지를 고루 충족하는 음악은 시상식 바깥에서도 살아남는다. 트로피는 한 해를 기록하지만 시간은 음악을 증명한다. 그래미는 중요하다. 다만 음악의 가치를 끝까지 말해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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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텍스처를 읽고, 맥락을 해석합니다. 연세대 작곡과 졸업. 대중음악웹진 〈오버톤〉 에디터 | 〈월간 진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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