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 머리 박고 죽은 새와 아파트 가격의 상관관계

[김성호의 씨네만세 1265] 6회 사람사는세상영화제 <신도시케이>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명작 <새>란 작품이 있다. 미국 어느 동네에서 갑자기 새 떼가 사람들을 공격하고, 인간들이 그 위협으로부터 도망치는 이야기를 다뤘다. 새들이 왜 인간을 공격하는지 끝내 등장하지 않는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대단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하며 시간을 건너 살아남아 명작으로 자리했다.

영화 가운데 새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명확한 이유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암시는 있다. 극 중 사람들이 있는 식당으로 찾아온 인물이 '새가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지만 사람들은 별달리 반응하지 않는다. 아니, 아예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무시한다. 조류학자인 할머니는 그녀에게 "새는 인간을 공격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라고 한다. 그리고 영화는 한 남자가 가게 점원에게 후라이드 치킨을 주문하는 대사를 곧장 삽입한다. 과연 새들은 인간을 공격할 이유가 없을까.

새들에게 인간만큼 사고할 역량이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인간과의 전면전을 선포할 수도 있다. 비단 인간이 수많은 새를 잡아먹어서가 아니다. 인간은 살기 위해 새들을 먹지 않는다. 생존을 넘어 맛을 위하여, 미각적 유희를 위해 새들을 죽인다. 이 둘은 다른 문제다. 필요가 아닌 욕망, 새들의 죽음 아래 깔린 진짜 이유다.

신도시케이 스틸컷
신도시케이스틸컷사람사는세상영화제

은폐된 새들의 죽음

또 다른 이유로 죽어가는 수많은 새의 존재가 은폐돼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건물에 충돌해 죽어가는 새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은 사람사는세상영화제에서 소개된 작품 가운데 <신도시케이>란 작품이 있다. 고은상 감독의 26분짜리 단편으로, 지난 한 해 전북독립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에서 상영된 인상적인 영화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선 국제엠네스티 촛불상도 받았는데,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한 사람사는세상영화제가 다시 한 차례 관객과 만남의 자리를 주선했다.

주인공은 갯벌을 메꿔 만든 땅에 지어진 신도시 아파트에 입주한 조류학자 영은(박가영 분)이다. 별다를 것 없는 어느 날, 그녀가 일하는 연구실에 입주민 대표 철승(정희태 분)이 찾아오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철승은 단지를 돌아보다 우연히 낯선 새가 죽어있는 걸 발견했다며 그 사체를 부검해 줄 것을 청한다. 죽은 새가 그저 평범한 새가 아니란 게 문제다. 영은은 이 새가 멸종위기 1급 저어새란 사실을 확인하고, 그녀가 대충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말하지만 철승은 막무가내로 새를 그녀에게 떠맡기고 떠난다.

신도시케이 스틸컷
신도시케이스틸컷사람사는세상영화제

한국에서만 연간 800만 마리가 죽는다

그로부터 드러나는 사실은 영화 <신도시케이>가 딛고 선 불편한 진실이다. 신도시에 선 아파트단지에선 매일 같이 새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본디 유명한 철새도래지를 갈아엎고 세운 도시와 아파트단지인 탓으로, 또 바로 건너편에 새들이 날아드는 생태적 환경이 남아 있는 까닭에 이 아파트 주변에 많은 새들이 오간다. 그 비행궤적에 아파트가 있는 것이 문제일까, 혹은 최근 유행하는 투명한 전면 외벽을 이 아파트도 활용해서일 수도 있다. 많은 새가 벽이 벽인 줄을 알지 못하고 날다가 머리가 깨져 추락해 죽는다. 말하자면 이 도시 아파트는 입주민들에겐 삶을 꾸려가는 공간이지만, 새들에겐 죽음을 불러오는 구조물이다.

어디 이 아파트만의 문제일까. 한국에서 매년 건물 유리창이며 투명 방음벽에 부딪혀 폐사하는 야생조류가 연간 무려 800만 마리에 달한다는 충격적 연구결과가 벌써 여럿이다.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유독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투명한 외벽의 건물이 설계되고 실제 시공되기까지 조류 폐사와 관련한 기준이 한국에선 거의 반영되지 않아서다. ( 관련기사: 유리창에 부닥쳐 죽는 새, 한 해 800만 마리 https://omn.kr/29c83 )

2020년대 들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이를 지적하고 나선 뒤 환경부에서 충돌 방지 테이프 지원사업 등 조처했지만, 적용은 미미하고 충돌로 인한 폐사는 여전히 광범위하게 발생한다. 현장을 점검하는 환경단체와 동물보호단체 등은 죽는 새의 수가 도리어 늘고 있다고 주장하니, 상황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개발 등으로 야생동물 서식지가 빠르게 줄어드는 현실을 더하면 인간이 새, 나아가 인간 외 생명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신도시케이 스틸컷
신도시케이스틸컷사람사는세상영화제

부동산 공화국의 추악한 욕망

<신도시케이>는 영은이 마주하는 현실로부터 새들의 폐사란 결과 아래 자리한 인간의 욕망을 들추어낸다. 영은은 철승과 그를 지지하는 입주자들의 진면목을 차츰 알아간다. 우선 제 남편부터가 철승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안달이다. 이 아파트에 소위 좀 사는 이들이 많고, 그들 사이에서 관계 맺으며 득을 보기 위해서는 철승과 좋은 사이가 되는 게 필수적이라서다. 이른바 '우리가 남이가' 정서가 실제적 효능을 발한다는 뜻이겠는데, 여기엔 '각자 해줄 수 있는 건 해주고 받을 수 있는 건 받자'는 모종의 암묵적 합의가 깔려 있다.

영은의 남편이 주로 받는 쪽이라면 영은은 해줘야 할 게 있는 쪽이다. 철승이 구태여 영은의 연구실을 찾아 죽은 새를 건넨 건 정말로 그 처리를 맡기려 해서가 아니다. 수없이 되풀이되는 새의 죽음을 은폐하는 건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는 아파트 주변의 개발을 더 활성화하는 데 필요한 환경영향평가를 잘 받아내기 위한 포석이다. 조류학자인 영은이 입맛에 맞는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면 새들의 도래지를 아예 아파트 인근에서 밀어버리고 부동산값 상승에 보다 필요한 기간시설을 들여오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람사는세상영화제 포스터
사람사는세상영화제포스터사람사는세상영화제

사람'만' 사는 세상이어선 안되니까

그렇다. 욕망이다. 그저 이 아파트단지, 이 도시만의 욕망이 아닌 '부동산 공화국' 한국의 국민적 욕망이 새들의 죽음 아래 깔려 있다.

새들의 죽음뿐일까. 기후붕괴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지반이 침식되는 사실은 어떠한가. 어느덧 한국의 토지 또한 가까운 시일 내 해수면 아래로 사라질 위험이 제기된다. 국제 연구단체인 클라이밋 센트럴(Climate Central) 사이트가 공개하고 있는 연도별 침식지도는 인천과 김포 등의 토지가 근 십수 년 안에 큰 폭으로 물에 잠긴다고 경고하지만, 실제적 대책은 없다시피 하다.

지난 10년간 무려 40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국토가 사라진 상황에서도 힘을 얻는 주장은 오로지 경제 논리뿐이다. 이와 관련한 정보가 공개되고 확산되는 데도, 관련 연구가 이뤄지는 데도 부동산과 관계된 이해관계부터 터져 나오니 자연과 동물을 대하는 한국의 자세가 어떠한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영화의 제목이 '신도시케이', 그러니까 'K'라는 불명확한 알파벳을 도시 이름으로 정한 건 이 영화가 가리키는 것이 비단 어느 아파트단지, 도시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을 테다. 영화는 한국 사회 전반에 자리한 욕망과 그 욕망이 갉아먹는 귀한 것들의 부당한 희생을 다룬다. 사람사는세상영화제가 이 영화에 주목한 이유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노무현재단이 시민사회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치르는 이 영화제의 지향 또한 무분별한 욕망을 극복하고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사람사는세상영화제 신도시케이 고은상 박가영 김성호의씨네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