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기사와 승객이 나눈 대화, 영화가 됐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1264] <대디오>

대디오 스틸컷
대디오스틸컷바이포엠스튜디오

블랙리스트 오른 화제작, 과연 훌륭하네!

<대디오>는 남자 택시기사와 여자 승객이 택시 안에서 성행위를 하는 자극적인 영화일까. 영화사가 피하고 싶었을 성적 논란의 가능성 때문일까, 이 영화가 한국에 수입되기까지 1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최근 개봉한 <대디오>는 그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보기 드문 영화다. 극작가 출신 여성 감독 크리스티 홀의 데뷔작으로, 본래는 연극으로 쓰였다. 시종 택시 안이라는 한 공간에서 두 인물의 대화만으로 전개되는 형식인 것도 연극을 염두에 둔 작품인 때문이다. 크리스티 홀이 이름난 극작가도 아니었거니와 코로나19 이후 검증되지 않은 작품에 그리 호의적이지 못했던 시장환경까지 겹쳐 작품은 쉽게 계약되지 못했다. 쉽지 않았던 흐름은 작품이 할리우드 영화를 겨냥한 시나리오로 변경되며 전혀 다르게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아직 영화화되지 않은 시나리오 가운데 유망한 작품으로 불리는 소위 블랙리스트(The Black List) 명단에 이 작품이 언급되기 시작했고, 영향력 있는 배우 다코타 존슨이 이 각본에 매료돼 아예 제작에까지 참여한 것이다. 작품의 잠재력을 알아본 그녀가 직접 숀 펜에게 연락해 각본을 소개했고 그가 그 자리에서 합류하며 <대디오>가 오늘의 영화로 만들어지기에 이른다. 크리스티 홀이 직접 연출에 나선 영화는 다코타 존슨과 숀 펜이 반한 바로 그 드라마, 두 사람이 서로의 경계를 건너 이해와 위로에 도달하는 이야기로 화했다.

영화는 미국 JFK 공항에서 맨해튼 시내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승객은 고향에 갔다 돌아오는 30대 여성 걸리(타코타 존슨 분)다. 택시 안에서 기사(숀 펜 분)가 걸어오는 말에 걸리가 응답하며 시작된 대화가 조금씩 깊어지다 마침내 서로의 내면을 건드린다.

대디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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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안, 기사와 승객의 속 깊은 대화

택시란 공간은 독특하다. 좁은 공간 안에 두 사람이 들었고, 그들이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꼼짝없이 함께해야한다는 점에서 내밀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어 보인다. 그러나 둘 사이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있다. 한 명은 돈을 내고 탄 승객이고 다른 한 명은 그를 받고 역할을 수행하는 기사다. 상하관계까진 아니라도 고용주와 피고용인이란 관계가 인간 대 인간의 관계 위에 존재한다. 그래서 목적이 우선이고 친목이 형성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나 어디 인간의 삶이란 게 그렇기만 할까. 사람과 사람 사이엔 공적 역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교류 또한 이뤄지곤 하는 것이다. 택시에서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경험을 했다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일 테다. 누군가는 기사와의 대화를 통해 공감과 지지를 얻고 일상에 활력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또 누구는 기사가 자꾸 말을 걸어 불쾌하고 방해를 받았다고도 한다. 이중 오늘의 세태가 점점 더 후자와 같은 경우를 길러내는 건 사회가 파편화되고 소통이 사라져가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테다.

<대디오> 속 두 인물의 관계가 트이는 건 그래서 더더욱 의미 깊다. 기사의 말씨와 그가 쓰는 단어들, 그가 대화를 이어가는 방식이 거칠고 직설적이기에 더욱 그렇다. 흔한 시각으로 보자면 30대 여성 승객이 불편을 느끼고, 경계를 자꾸 넘어서려 드는 50대 남성 기사와의 대화를 무례한 무엇쯤으로 그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영화 속 관계는 그리 되지 않는다. 처음엔 시큰둥했던 걸리는 조금씩 대화에 흥미를 드러낸다. 혹여 무례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민감한 태도를 걷어치우고 보면 실제로 무례하진 않은 기사와의 대화가 진전되는 과정이 놀랍다.

대디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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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세계를 벗어나 사람을 만나는 일

영화가 기사와 승객의 통상적 거리를 넘어 인간과 인간의 인상적 마주 닿음으로 이어지는 건 바로 이 서로 다른 언어의 세계가 주는 불편한 거리감을 돌파하면서다. 손을 내민 건 힘든 하루를 보내고 서툰 태도일지라도 말을 걸어온 기사이고, 그를 맞잡은 건 드물게 귀한 태도를 지닌 승객 걸리다. 휴대폰에 코를 박지도 무례하게 기사의 말을 무시하지도 않는 드문 승객인 걸리는 귀 기울여 응답하고 솔직하게 반응하며 기사의 호감을 산다.

그리고 기사는 제 방식대로 그녀에게 저의 호감 또한 내보이는 것이다. 그로부터 관객은 서로에게 익숙지 않은 각자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다른 사람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일이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드물게 일어나는지를 확인하게 되니, 이 영화 <대디오>의 진짜 가치가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대디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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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한 구분을 넘어 인간을 대하면

불편함 많고 예민한 이들이 <대디오>에 대해 가혹한 평을 쏟아내는 것도, 다코타 존슨이며 숀 펜과 같은 이들이 이 작품으로부터 그 너머에 담긴 가치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나는 모두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여긴다. 그러나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어디까지나 후자가 말하는 가치이니, 그건 앞의 것은 쉽고 흔한 자세이며 뒤의 것은 드물고 귀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절되고 갈라진 오늘의 세상에서 보다 필요한 태도가 다가서 상대와 마주하고 자세를 고쳐 앉는 것임을 아는 때문이다.

<대디오>는 그저 그런 불편한 궤변이 아니다. 경계를 넘어 관계를 맺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건 서로에게서 진실을 발견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에야 가능하다. 나는 이 영화가 그와 같은 태도를 갖추었다고 본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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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